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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Oct 20. 2024

인생은 동그라미

그래서 둥글게 둥글게 살으라는 것인가..

가을이 한창 진행중이다. 뜨거웠던 햇살은 사라지고 고운 햇살이 산책하는 마음을 더욱 환하게 하는 그런 날..

휠체어를 밀고 가는 어느 아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늙은 아버지 만큼이나 아들도 제법 나이가 든 40중반 쯤으로 보였다. 휠체어에 앉아 계시던 늙은 아버지는 걷기 연습이라도 하시려는 듯 휠체어에서 힘겹게 일어나 힘겨운 한 발자국을 내 딛으며 걸어보려 하셨다. 아들은 빈 휠체어를 끄는 채로 조용히 아버지의 뒤를 따른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일면식도 없는 그 부자의 과거가 상상이 되었다. 수십 년전 반대로 아버지는 아들의 유모차를 끌고 있었을 테고 아들의 첫 걸음마를 아버지는 응원했었겠지...이제 그 반대가 되어 아들은 아버지의 걸음을 지켜보고 응원해야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생을 도형으로 그린다면 동그라미 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있었던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잠시 세상으로 여행을 왔다가 처음에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예민할 것 없이 둥글게 둥글게 살라고 하는 말이 나온 것일까..

"둥글게 둥글게..짝.. 둥글게 둥글게 짝..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어릴 때 무심코 불렀던 이 동요에는 인생의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었던 게 아닐까..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만 아이와 노인의 걸음이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가 처음 걸을 때는 여러 사람의 응원과 축하를 받는다. 모두가 아이 앞에서 웃는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며 잘 걸을 수 있기를 기다려 준다. 

하지만 노인에게 걸음마라는 말은 응원과 축복의 의미보다는 질병과 간병의 걱정과 우려가 섞여 있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의 공기와는 사뭇 다르다 . 다시 돌아가는 길이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까닭이다. 


가끔 기억속의 지금 내 나이였던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먹고 사는 것에 바빴던 아빠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정마다의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부모님은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가정을 지키는 데 열심이었지만 대개로 힘든 날도 많았다. 무심히 때론 아슬아슬하게 흘러가던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편안하고 따뜻한 순간순간이 있었는데 엄마가 카스테라를 만들어 주던 날이었다.

엄마가 카스테라를 만들어주는 날에는 온 집안에 따뜻한 공기와 달콤한 냄새가 가득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카스테라를 자르는 엄마 옆에 앉아 흰 우유와 함께 먹었던 카스테라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내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을 뽑으라 하면 그 순간이 단연 1위가 될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인 걸 알지만 그때의 냄새와 맛은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잠시였지만 작은 반짝이는 순간들을 모아모아 그 힘으로 힘든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이제 그 때 부모님의 나이를 통과하며 지친 얼굴보다는 자주 웃는 얼굴을 보여주자고 생각해 본다. 사는 것은 어차피 힘들터이니 반짝이는 순간을 자주 만들어 추억을 모으자고 다짐해 본다. 

어차피 원래 있었던 내 자리로 돌아가려고 지금 여행중이니 여행길에서 남는 것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여행을 잘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수칙을 잘 지키는 것도 필수일 것이다. 


1. 여행을 같이 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고 다정해야 한다. 

여행길에서 동행자와 싸우고 나면 여행 하는 내내 풍경도 맛집도 다 느낄 수 없다. 혼자 돌아갈 수 없으니 여행 하는 내내 불편하고 더 고생스러워지기 마련. 그러니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는 내 인생속에서 함께 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친근하게 대할 것.

2. 도전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 더 추억이 많다.

그냥 무작적 여행지에 따라가서 버스타고 내리고, 식당가고 쇼핑하다 보면 여행에서 뭘 했는지 도통 추억이 없을 때가 있다. 내 두 발로 걸어다니고,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그러던 와중에 만난 풍경이나 맛집은 두고두고 좋은 추억이 된다. 인생도 그러할터이니 도전하고 찾아다녀 보는 것이 좋겠다. 

3. 할 땐 하고 쉴 땐 쉬어야 한다. 

꽉꽉 찬 스케줄표롤 만들어 떠난 여행은 쉼은 커녕 도리어 숙제가 되기 십상이다. 하루에 한 군데만 보자는 심정으로 여행길은 자고로 느릿느릿..인생길에서도 슬로우 슬로우 퀵,퀵 쉬는 것과 일하는 것의 조율이 잘 되어야 행복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수학 시간에 원을 그리는 공부를 했다. 아직 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았는지 컴퍼스 다루기가 너무나도 어려워 원은 자꾸 찌그러지고, 반절만 완성되고, 희미하고 그걸 또 다시 지우기를 반복하다 노트가 찢어져서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서야 원을 잘 그리는 방법을 찾았는데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가운데 콕 중심을 잘 잡고 거기에 힘을 줘서 컴퍼스를 돌리면 깨끗하고 예쁜 원이 만들어졌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중심을 잘 잡고 있다면 동그라미가 크든, 작든 깨끗하고 선명한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다.


그러니 컴퍼스가 조금 후져도, 손에 조금 힘이 없어도 중심을 잘 잡는 연습을 하자.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점점 손에 힘이 생길테고 컴퍼스를 다루는 기술도 나아질테니 어렵지 않게 반듯하고 예쁜 원을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애써서 그린 그 동그라미 안에는 반짝이고 따뜻했던 순간을 많이 가진 사람이 진정한 인생의 승자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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