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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Sep 29. 2024

아줌마를 허락한다.

아줌마를 아줌마라 부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쟎아..

내가 다니는 수영장에는 탈수기가 2대이다. 탈수기 앞에서 줄 서는 게 싫어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나와 정리를 하는데 그날따라 시간이 끝날때까지 수영을 했다.


탈수기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고 내 차례를 기다려 수영복을 탈수기에 넣으려는 찰나 어떤 할머니께서 같이 넣었으면 하는 표정으로 서 계시길래 함께 넣고 탈수기를 돌렸다. 돌리기 전에 누군가 흘리고 간 모자가 남아있길래 잠시 빼 두었다가 우리 것을 돌리고 난 후 그 자리에 다시 넣어 두었다.


한참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던 도중 어디선가..언니야~~(정확히는 은니야~~) 부르는 소리가 설핏 들렸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호칭이기에 계속 드라이에 전념하는데 어디서 아줌마!! 아줌마!!! 두어번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홱 돌아보니(아줌마 소리에 일단 몸이 먼저 반응하는..) 아까 그 할머니께서 물으신다.

"아까 그 모자 아줌마 거 아니에요?"

"그거 제 꺼 아니에요..원래부터 있었습니다..."

대답을 한 후 '아줌마'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아줌마라고??)


'내가 아줌마인거야...' 그리 충격적일 일도 아니다. 결혼도 했고 40대 중반의 나이를 갖추었으며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런 여자이니 나는 아줌마로서의 아주 제격인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그런 호칭을 잘 들어보지 못해서인지 아주 생경하게 느껴진다.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는 나의 정체성을 오랜만에 알아차린 느낌이랄까?

'맞다..나 아줌마구나..'


어느 드라마에선가 이런 대사를 들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70대 할머니가 되었어도 마음은 예전과 똑같아서 힘들다는 말..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아서...

수영장에서 '아줌마' 소리를 듣고 나니 절로 그 대사가 이해가 된다. 나는 예전과 똑같은 마음이어서 아줌마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줌마'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약간의 살집이 있는 통통한 체형에 보글보글 파마머리, 시장에서 거침없이 물건값을 깍는 능력, 어지간한 일에는 부끄러워 하지 않는, 어찌보면 당당한듯하고 어찌보면 뻔뻔한듯한 태도를 장착한 40-50대의 중년 여자를 이르는 호칭.

나는 아마도 '아줌마'라는 단어에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고 아줌마이지만 아줌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했기에 그 단어가 부담스러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티에이징에 따로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동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이제 그 어떤 칭찬보다도 반갑고 늙어보이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40대 중반에 이르고 나니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늘상 나이들어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왔기에..다시 돌아갈 수 있데도 그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20대의 시절로 돌아갈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자부했기에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얼른 나이들어서 진정한 자유를 맛보기를 기다리는 축에 속한다고 해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는 들지만 젊게 보이고 싶은 모순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었던 듯 하다.


아무리 외형을 가꾸고 관리한다고 해도 누구에게나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우리는 늙어가면서 어찌보면 죽음이라는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존재들이기에 세월을 이기려는 마음은 없다. 그저 가을 단풍처럼, 저녁 노을처럼 아름답고 우아하게 늙어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라고 생각할 뿐.

알고리즘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고 '훌륭하게 나이 드는 법' '노년을 대하는 자세' '노후준비 이렇게 해야한다'등의 영상을 마구 보여준다. 제 나이만큼의 속도로 흐른다는 세월의 법칙에 따라 앞으로의  시간들이 점점 더 빨리 지나가 버릴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알고리즘이 나에게 준비시켜 주는 은퇴후의 삷에 대한 것이라던가 노후준비에 관한 영상이라던가 이런 것들을 아주 주의 깊게 시청하고 있다. 그런 영상을 보면 볼수록

'일단 경제적으로 준비를 탄탄히 해야지..'

'건강관리를 지금부터 제대로 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엄청 고생할거야...'

'애들은 알아서 잘 자립할 수 있으려나..'

여러가지 걱정의 문장들이 한꺼번에 솟아오른다.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또 그렇다. 우리가 언제 우리의 미래를 미리 명확하게 알고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던가.. 그저 현재를 잘 보내면 그 현재가 조금 괜찮은 미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뿐.

그리하여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걱정하기 보다는 준비하는 태도로 현재를 살아가자고 생각한다.


"국어사전의 뜻과 별개로 사회 통념상 결혼하거나 아이가 있는 여성을 ‘아줌마’로 불렀다. “만혼이나 미혼인 30~40대 여성이 늘다 보니 아줌마라는 호칭은 이들에게 상당히 공격적”으로 들린다는 분석. 그러자 여성들 사이에서 아줌마라는 말을 상호 호혜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했고, 이제 아이가 있는 엄마들도 아줌마라는 호칭을 피하게 됐다. "는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래서 모두가 이모가 되고 삼촌이 되는것인가.

실제 가족이 아닌데 가족관계를 맺을 순 없는 노릇이고, 전 국민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오 아닌데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그리 저항감을 가질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에게 '아줌마'로 불릴 것을 허락한다. '젊어 보이기 위한 삶'보다는 스스로 '젊게 사는 삶'을 살고 싶다.

'호기심을 갖는 것', '건강을 위하여 운동하는 것','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

외형보다 생각이나 행동이 젊은 중년이 나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매력적인 아줌마'가 되어보기로 한다. 


그렇다고 해도 정녕 '아줌마'라는 호칭 말고는 마땅한 게 없단 말인가..적어도 '아저씨'란 호칭은 원빈이나 공유덕분에 좀더 괜찮은 느낌이 드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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