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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먹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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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Nov 27. 2016

눈이 내렸다, 나는 홀로 커피를 마셨다.

혼자 겨울을 나야만 하는 많은 우리들에게

겨울이 되면 나는 자꾸 혼자 훌쩍 떠나고 싶어 진다.

다른 계절보다도 유독 겨울이 외롭고 고독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본 내용은 모바일보다 pc에서 보기 좋습니다.)


유독 추운 겨울이다. 날씨뿐만이 아니고 우리에게 닥친 현실 또한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눈이 오건 비가 오건 매주 집회를 참여하며 가까스로 나라를 덥히고 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따듯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민들 덕이다. 실로 집회를 참가해보면 그 열기를 강하게 느낄 수 있듯이.



어제는 눈이 내렸다. 이번 겨울의 첫눈이었다. 아무도 눈이 내린다고 말해주지 않아서 눈이 내리는지도 모르고 밖을 나섰다가 허망한 기분을 잔뜩 느꼈다. 내 첫눈이 이렇게 무방비하게 찾아오다니. 그런 마음이었다. 집 앞에서 우산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후드에 달려있는 모자 하나만을 믿고 우산을 들지 않았다. 나는 그 날 하루 종일 매서운 바람과 흩날리는 눈과 싸우며 보내야 했다. 괜스레 야속한 마음만 커져갔다.


아직도 나는 겨울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나 보다. 날씨가 추워져만 가도 본격적으로 겨울, 같지는 않았으니까. 눈이 올 거라곤 상상조차 안 해봤던 나의 탓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젠 패딩을 입지 않는 사람이 더 드물었다. 나는 어째서 남들보다 더 느리게 계절을 받아들이는 걸까.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데에는 책 만한 것이 없다. 어제보다 포근했음에도 나는 마치 겨울을 준비하듯이 가방 안에 먹을 것과 잡다한 것들을 잔뜩 챙겨 들고 평소에 좋아하던 도서관으로 향했다.


항상 가는 그 도서관은 겨울이 되어서도 나무 냄새가 났다. 그래서 나는 이 곳을 좋아한다. 계절을 타지 않기 때문에. 항상 그랬다. 봄이건 여름이건 꼭 종이들의 숲에 와 있는 것처럼 똑같은 풍경에 똑같은 냄새. 그것이 겨울이라고 해서 바뀌지 않았다.


이 곳에 오면 원래는 분야 별로 책을 한 권씩 꺼내 들곤 했다. 그 날의 마음에 드는 것으로. 그러나 오늘만은 몸도 마음도 모두 간절히 바랬던 책들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이전에 언젠가 한 번은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다양한 책들 중 총 다섯 권의 책을 빼어 들었다. 소설로는「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과「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를, 시로는「희지의 세계」와「꽃의 좌표」그리고「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라는 책이었다.


따듯한 온풍기 아래에서 고요한 히터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고 있자니 갑자기 커피가 간절해졌다. 평소에는 무난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쳤던 난데, 오늘따라 크림이 잔뜩 올라간 커피를 먹고 싶었다. 어제 눈이 내려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했다. 얼마 읽지 않은 한 권의 시집과 내가 찜 해둔 나머지 네 권의 책을 가방에 짊어 메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좋은 카페가 없을까.


그러다 발견한 곳이 도서관으로부터 약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물론 버스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완전 랜덤이다.) 독특한 카페를 발견했다. 비엔나커피를 주 메뉴로 팔고 있는 곳이었는데, 마침 마시고 싶었던 게 바로 그런 커피였던 터라 주저앉고 그곳으로 향했다.



대중교통을 통해 온 사람은 아마도 나뿐이 없었던 것 같았다. 카페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자리에 카페가 있었다. 주변 건물이 공장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상한 데에 있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자리였다. 아주 구석에 있음에도 인테리어와 커피 덕에 사람이 많다고 했다. 질끈 가방을 멘 나와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몰라, 하며 들어섰다.



내부는 독특하고 고요했지만 시끌벅적했다. 사실 들어오기 전 까지만 해도 이렇게 구석에 있는데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싶었던 게 아차 했던 거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인테리어는 훌륭했고 그 덕에 사람도 북적북적했다. 저번 주 저저번 주 시위 때문에 내리 갔던 종로 3가의 분위기가 설핏 날 정도였다. (익선동, 그 동네도 예전엔 유니크하지만 조용한 동네였는데 요즈음 입소문이 탄 뒤로 사람이 많아진 곳이다.) 그래도 앉을자리는 꽤 있어 벽면에 붙어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메뉴는 많지 않았으나 어떤 것을 팔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카페 메뉴판의 맨 윗줄은 아메리카노가 차지하고 있지만, 이 곳에선 비엔나커피가 맨 윗줄을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 주문은 비엔나커피.



바로 그 비엔나커피는 역시, 하게 만드는 모양새였다. 직접 만든 생크림을 올려 만든 비엔나커피. 그냥 보기에도 꽤 예쁜, 그런 커피. 눈이 쌓이다 못해 뒤덮인듯한 포근함이 매력적인 커피다. 겨울날에 입 안을 달콤하고 쌉쌀하게 감싸 줄 것 같은.


 커피가 나오고, 나는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주섬 주섬, 아침에 들고 나온 식량을 티 푸드로 함께 하기로 하며 쟁반에 조금 쏟아 놓고도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토록 허망했던 첫눈을 지금에서야 다시 보듯이

 조용히 눈이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그렇게 커피를 보았다.


 숟가락으로 생크림을 직접 떠 넣으며 정성을 들인 비엔나커피 한 잔. 내 마음을 달래주듯이 달콤한 생크림과 내 기분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씁쓸한 커피가 조화롭다.


가장 다급해 보이던, 읽어야만 할 것 같던 시집도 한 권 빼어 들고선 나는 시를 읽으며 커피를 마셨다.



지금의 나와 아무런 관련 없는 단어들, 또 아무런 관련 없는 문장들. 이해는커녕 받아들이지도 못할 것 같은 그런 말들도 읽다 보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마치 커피처럼. 한 잔에도 그런 정성이 담겨 있는 것처럼, 한 문장을 위해 수 없이 생각하고 고쳐 썼을 문장을 읽으면 마음이 꼭 죄어온다.



내친김에 마음을 다독이며 필사도 했다. 필사는 단편 소설을. 필사를 하고 있으면 꼭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어와 단어를 이으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 자신을 다잡아간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명확해진다.



그렇게 읽고 곱씹고 쓰고 마시다 보니 커피도 점점 줄어갔다. 생크림은 처음보다 부드러움이 덜 했지만, 커피는 처음보다 훨씬 더 달콤했다. 커피에 봄이 내린 것처럼. 눈이 실컷 온 다음의 땅처럼. 어느 것 하나 이상하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비엔나커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을 받아들이는 것도, 언젠간 봄이 오는 것도, 내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앉아서 어제의 첫눈을 허망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의 비엔나커피가 너무 포근했기 때문일까. 섭섭함은 커피에 생크림이 녹아내리듯 모두 녹아버린 후였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많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터지고 우리는 비참해했다. 비참한 정도를 지나쳐 처참했다.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보듬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잘 아는 것은 분명 누가 뭐래도 나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달래줘야 하는지도 분명 알 수 있을 거다. 그것이 맛있는 무언가를 먹는 것이든, 책을 읽는 것이든 상관없이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 그런 시간을 보내자.


할 수 있는 만큼 목소리 높여 소리치고 분노하다가도, 위로할 수 있을 땐 위로하면 좋겠다.

추운 만큼 한층 더 깊게, 또 따듯하고 달콤하게, 마치 비엔나커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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