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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 Sep 09. 2024

순금이의 물 마시는 방법

그리고 큰아버지의 장례식

아마 처음부터였을 거다. 750g의 고양이는 물을 마실 때 꼭 앞발로 물을 찍어서 그걸 춥춥 마셨다. 나중에 유튜브로 알게 된 사실은 물의 깊이를 알기 위해 앞발을 담그는 거란다. 아무튼 이 버릇은 두 살이 다 되어 가는 순금이에게 아직도 남아 있다.


정수기와 내 물컵도 언젠가부터 순금이의 물그릇이 되었다. 다행히 정수기 꼭지는 날카롭지 않고, 컵에 물이 아닌 커피나 술이 담겨 있으면 마실 생각도 안 하니 그냥 놔두었다. 고양이들은 물을 너무 안 마셔서 탈이라던데, 어떻게든 마셔 주니 예쁘기만 하다.

지난주 금요일에 치매와 질병으로 입원 중이시던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상하게도 돌아가시기 전날인 목요일 출근길에, 나는 번뜩 ‘이번 추석에는 큰아버지 한 번 뵈러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다음 날 비보를 듣게 되었다.


새벽 6시쯤 엄마의 전화를 받고 회사에 출근했다가 반차를 쓰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 선 웬 백발의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나는 “아빠!” 하고 어느새 할아버지가 된 아빠를 불렀다. 무정한 딸이라 아빠를 한 1년 만에 본 거였다. 잠시 후 엄마와 고모, 고모부 들이 나왔다.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거라고 했다. 친척들은 수년 전 사촌의 결혼식 때나 본 듯했다.


장례식장은 낮시간이라 그런지 한적했다. 절을 두 번 올리고 상제인 친척 오빠와 언니, 조카와 인사를 나눴다. 나는 “이번 추석엔 큰아버지 한 번 뵈려고 했는데...”라는 하나마나 한 소리를 했다.


점심을 거르고 간 터라 육개장에 밥을 먹었다. 엄마 아빠는 이미 식사를 했다며 그냥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상주인 친척 오빠가 밥 먹는 내 앞에 와서 앉았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경조사 있을 때만 보던 사이라 데면데면했다. 다른 손님이 오는 바람에 오빠가 금방 자리를 떴다. 엄마가 말했다.


“그래도 너 왔다고 여기 앉았다 가네.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랬어.”


나는 후회를 잘 안 하는 편이다. 어차피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앞으로 그러지 말자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큰아버지가 떠나고 나니 입원해 계실 때 한 번이라도 찾아뵐 걸 그랬다라는 미련이 남았다.

“나한테 항상 잘하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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