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를 채우기엔 너무 비싼
부산에서 손꼽는 음식 중에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남녀노소 누구든지 즐겨 먹을 수 있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코 해운대암소갈비가 있다.
꽤 역사가 있는 식당이기도 하고, 방송에도 몇 번 나오곤 했던 곳이라 부산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진 갈빗집이다.
부산으로 여행을 오면 코스로 들렀다 가는 타지인들도 많다.
한우 암소만을 취급하며 직접 고기 손질을 하는 곳이라 고기의 퀄리티는 보장하는 곳이며 자체 개발한 특제 소스에 찍어 먹었을 때 갈비양념과의 조화가 뛰어나고, 곁들임 구성으로 나오는 상추 겉절이도 갈비와 함께 먹으면 개운하게 갈비를 계속 먹을 수 있는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고기를 먹고 나서 불판 가장자리로 둥글게 감싸고 있는 홈에 감자사리와 달짝지근한 소스를 붓고 자글자글 끓여 먹으면 그 또한 이곳만의 별미이다.
불판에 눌어붙은 감자사리를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먹을 때쯤이면 이곳의 만찬이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만 한우이다 보니 가격대가 꽤 높다는 게 식당 방문의 빈도수를 낮추게 한다.
우리 가족도 이곳의 갈비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역시나 같은 이유로 자주 방문 하지는 못했다.
오빠가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집을 떠나 살게 되었던 때였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고, 용돈 더하기 생활비를 받아 쓰다 보니 자연히 집밥이 그립고 20살 한참 나이에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질 텐데 객지 생활을 하니 정서적 허기까지 더해진 나날들의 연속이었으리라.
1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온 오빠에게 아빠가 먹고 싶은 음식을 물으셨다.
오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해운대암소갈비를 얘기했고, 아빠도 오랜만에 집에 내려왔으니 그쯤이야 흔쾌히 수락하셨다.
덕분에 우리도 갈비 먹을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첫 시작은 5인분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오빠는 그동안 비워져 가던 식(食)의 곳간을 오늘 다 채우려는 듯 무서운 속도와 집중력으로 먹기 시작했다.
추가 또 추가.... 이제 슬슬 감자사리를 먹겠냐는 부모님의 제안에도 오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했다.
갈비 더 추가.
오랜만에 아들을 만나서 반갑고 좋아하시던 아빠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가고, 이미 부모님과 나 그리고 여동생은 배가 불러 물러나 앉았고 언제 이 추가 주문이 끝이 나려나 기다리던 중 드디어 오빠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얼마나 먹었을까, 얼마나 나왔을까 궁금했던 우리도 영수증을 받아 드신 아빠의 어깨너머로 넘겨다 보았다.
25인분!! 무려 25인분. 5명이서 25인분을 무슨 운동선수들 회식도 아니고...
그중에서 엄마, 아빠, 나, 여동생, 이렇게 4명이 많이 먹었다 해도 3인분씩 12인분을 빼고 나면 거의 13인분을 혼자서 먹었단 얘긴데.
아빠는 지갑에 항상 비상금 목적의 현금을 꽤 가지고 다니신 편이었는데, 계산하려고 현금을 세시다가 도로 집어넣으시더니 카드를 꺼내셨다.
90년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은 지금처럼 카드 결제가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카드 나왔다. 카드 나왔어' 우리 삼 남매는 쿡쿡 서로를 한 번씩 찔러대며 신발을 찾아 신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행여 불편해지셨을지도 모르는 아빠의 심기를 피하고자 하는 생각과 함께.
물론 우리는 맛있는 갈비를 배불리 먹었다는 만족감에 기분은 좋았지만, 그 뒤로 한동안은 해운대암소갈비에 발길을 끊었었다.
나의 성장기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아이들과 다시 한번 꼭 찾게 된다.
음식의 맛은 물론이고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행복감과 추억을, 그 시절 내가 가졌던 느낌들을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궁금하기도 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또 다른 추억들을 만들고 싶기도 해서이다.
해운대 암소갈비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흐름이 끊기지 않게 열심히 고기를 구워주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와 함께 25인분을 먹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풀어주며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겼다.
다시 한번 느꼈다.
갈비는 모든 세대를 아울러 통합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러나 역시 가격이라는 변수가 있어서 진입장벽이 높은 음식이라는 점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해운대 암소갈비는 1964년에 방 3개의 작은 가게로 시작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끌었으며 현재는 후손들이 가업을 이어받아 2대, 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다. 갈비에 다이아몬드 칼집을 넣는 기술을 처음 선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운데가 볼록한 철판에 갈비를 굽고 가장자리에 갈비양념과 사리를 끓여 내는 조리법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