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자갈치 시장 곱창타운
우리 아빠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에 가부장적 아버지시다.
80년대 그 시절에는 다 그랬겠지만 무뚝뚝하고 일만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흔히들 회자되는 퇴근길 치킨 봉지를 손에 들고 오신다는 아버지의 모습은 드라마 속에서만 볼 법하고 현실의 우리 아버지는 생전 과자 한 봉 지도 사들고 오시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퇴근길에 은박지 도시락 한통을 손에 들고 들어오셨다.
인사를 드리러 나갔던 우리 삼 남매는 아버지 손에 시선이 멈췄고 동시에 코를 자극하는 갈비 냄새에 기분이 들떴다.
'우리 먹으라고 갈비를 사 오셨나?' 눈짓을 주고받던 우리를 지나쳐 엄마에게 전해진 도시락은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에게 주시려고 싸 오신 갈비뼈다귀였다.
회사일로 한우갈빗집에서 식사를 하시고 살점들이 붙어 있는 뼈다귀를 모아 진돗개에게 주시려고 싸 오신 것이었다.
뼈다귀이긴 하지만 강아지에게도 서열이 밀린 우리 삼 남매.
잠시 스쳐갔던 우리의 서운함도 아버지에겐 대수롭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주말,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에게 진짜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나가자고 하셨다. 진짜 진짜 맛있는 거라고 몇 번을 강조하시며.
맛있는 음식이라고 너무 강조를 하시니 우리는 또 호텔레스토랑에라도 데리고 가주시려나 내심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골목골목을 굽이굽이 지나가는데 느낌이 썩 좋지가 않다.
그러다가 판자로 마감된 벽에 슬레이트 지붕이 얹혀있는 5~60년대에나 지어졌을 법한 건물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게 아닌가.
'여기가 어디지? 어디길래 이런델 데리고 오시나?' 감춰지지 않는 표정의 당혹감과 함께 우리는 따라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2~3평 남짓 구역이 나뉜 크기로 작은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시멘트로 조리대며 테이블이 투박하게 둘러져 있고 그 테이블 가운데에는 연탄화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탄화로 위에는 석쇠들이 올려져 있고 하얀 조각들, 붉게 양념된 조각들이 저마다 연기를 내뿜으며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다소 예상치 못한 장면과 함께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의 정체는 연탄불에 익혀지는 고기의 향과 양념된 고기의 매콤 달콤한 향이었다.
아버지는 이곳이 익숙하신지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고 드시던 대로 주문을 하셨다.
부모님을 따라 쭈뼛쭈뼛 자리를 잡은 우리는 착착 순서대로 석쇠가 올려지고 철판 위에 올려진 하얀 고기들이
고소한 냄새와 함께 익어갔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된 식당의 분위기와 철판 위의 구워지는 고기의 익숙지 않은 비주얼에 조용히 앉아 있던 우리는 드디어 다 익은 고기 한 점을 단지 마늘이 듬뿍 들어간 기름장에 톡톡톡 찍어 맛을 보았다.
살캉.... 육질을 가르기 이 헤 이가 들어가는 소리가 요즘 같으면 ASMR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탄력이 있었다
'뭐지? 이 맛은? 너무 맛있는데?'
아버지를 따라 들어오며 아직 성숙지 못한 시각으로 느꼈던 식당의 외관과 내부에 대한 실망감을 한순간에 다 날릴 수 있을 정도의 맛이었다.
기름장과 어우러진 고소한 맛, 묵직한 육향과 함께 씹는 맛이 계속 치고 들어오는 이 부위는 소의 양부 위였고, 이곳은 그 유명한 자갈치곱창타운이었다.
아버지가 죽마고우들과 가끔씩 찾으시던 자갈치곱창타운의 끝내주는 한우양곱창 맛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이었다.
자갈치곱창타운이 많이 알려진 곳이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된 지는 그 뒤로도 한참 시간이 흘러서였다.
하긴 아직 십 대인 우리가 노포의 역사와 긴 세월 동안 쌓아온 맛과 가치를 알기엔 살아온 시간이 너무 짧으니...
1차로 소금구이를 먹고 나면 2차로 양념구이 , 3차로는 양이 들어간 철판볶음밥이나 가락국수사리를 양념에 자글자글 볶아 먹는데 이 또한 이곳만의 별미였다.
그 뒤로도 자갈치 곱창타운의 맛은 한 번씩 생각이 난다.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부산에서의 생활이 거의 저물어 깄고, 부모님마저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시고 난 뒤로는 더 그곳을 찾을 수 있는 물리적 이유들이 희박해졌다.
아주 가끔 몇 년에 한 번씩 가족여행으로 부산을 찾아도 그곳을 찾아가기가 여러모로 매끄럽지가 않다.
나의 취향과 추억을 찾기엔 아직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 위주의 장소와 메뉴들이 우선시되다 보니 좀 더 나이를 먹어서야 자유롭게 그곳을 찾아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들려오는 소식으로만 이제는 리노베이션을 해서 옛날 같은 정취는 없지만 좀 더 깔끔해진 실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꼭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추억을 떠올리며 가볍게라도 소주잔을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 자갈치 곱창타운(양곱창골목) - 초기에는 자갈치 시장 뒷골목이 '마도로스 골목'이라 불릴 정도로 원양어선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술과 안주로 피로를 풀던 곳이었다.
밤새 조업한 어민들이 육고기를 맛보며 지친 속을 달래던 공간이기도 했다.
곱창은 그때 당시 비교적 저렴하게 육고기를 맛볼 수 있는 서민 음식이기도 했다.
1950년대 발생한 대화재 영향으로 화구를 사용하는 곰장어구이집, 생선구이집 등이 바다와 인접한 자갈치 시장 쪽으로 이주하면서 식당가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대 서너 곳으로 시작한 양곱창집이 1990년대 들어 인근 선술집들이 문을 닫으면서 그 빈자리에 양곱창집들이 들어서며 '양곱창골목'의 형태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전통적으로 연탄불에 양곱창을 구워 먹는 방식을 고수해 왔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 골목의 상징적인 특징으로 남아 있다.
1990년대 엔고(円高) 시대를 맞아 일본인 관광객이 부산을 많이 찾았는데 이때 양곱창집이 필수 코스였다고 한다.
현재는 양곱창 골목은 350여 미터의 세 블록에 걸쳐 300여 곳의 양곱창집이 밀집한 국내 최대규모의 양곱창 식당가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백화양곱창'처럼 한 건물에 10여 개 이상의 점포가 함께 영업하는 독특한 형태를 유지하며, 오랜 전통의 맛과 분위기를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