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가 좋아하신 음식 중에는 추어탕이 있다.
음식 솜씨가 좋으신 엄마는 재래시장에서 미꾸라지를 사다 직접 만드셨다.
미꾸라지를 사 오신 날에는 다른 재료를 준비하시는 동안 살아 있는 미꾸라지를 스테인리스 대야에 잠시 부어 놓으셨는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미꾸라지들을 마치 어항 속 금붕어 보듯이 우리는 구경하고 있었다.
추어탕 끓일 준비가 되시면 미꾸라지를 플라스틱 소쿠리에 부어서 물을 제거하시고는 소금을 한주먹 뿌리신다.
직격탄으로 소금을 맞은 미꾸라지들은 요동을 치고 우리는 차마 미꾸라지의 마지막을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아 자리를 뜬다.
미꾸라지의 움직임이 잦아들고 나면 엄마는 장갑 낀 손으로 박박 치대어 뻘과 진액을 씻어내고 뼈가 물러질 때까지 푹 삶으신 다음 체에 붓고 식혀서 다시 여러 번 치대고 문질러서 미꾸라지의 고운 살만 걸러 내신다.
걸러낸 즙과 고운 살들로만 해서 육수를 부으시고 된장을 살짝 풀어내신 다음 얼갈이배추나 단배추를 넣어 푹 끓이면 맑고 시원한 경상도식 추어탕이 된다.
여기에 방아잎이나 제피 가루를 더하면 살짝 남아있을지도 모를 미꾸라지의 비린내도 없애주고, 향을 더 올려준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끝나갈 때쯤 더위에 지친 몸을 위해 엄마가 끓여 주셨던 추어탕 한 그릇은 온 가족의 기운을 끌어올려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추어탕과의 절연을 선언하셨다.
아빠가 좋아하셔서 매번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사다가 조리하셨지만 이제 더는 못하시겠다고 하셨다.
조리 과정도 번거롭거니와 소금을 뿌려 미꾸라지의 숨을 끊어 놓는 것도 죄책감에 못하시겠다고.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서운함이 살짝 들기도 했다.
이제 다시 엄마의 시원한 추어탕은 맛보지 못하겠구나.
그래도 부산에 살 때엔 추어탕이 생각나면 어디든 가면 맑고 시원한 경상도식 추어탕을 먹을 수 있었다.
서울에 실면서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가 마주한 추어탕은 경상도식 추어탕과는 사뭇 달랐다.
걸쭉하고 진한 국물에 들깻가루도 넣어서 먹는 추어탕을 처음 본 나는 살짝 당황스럽고 실망스럽긴 했지만 지역마다 다른 음식 문화의 영향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였기에 나름 테이블 위의 제피 가루를 첨가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향신료를 질색하는 남편은 내가 추어탕에 뿌리는 제피가루의 향에 놀라 자리에서 몸을 뒤로 한 뼘 뺀다.
나는 그 모습이 재밌어서 더 뿌려 댄다.
제피 향으로 경상도식 추억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이.
언젠가 한여름의 무더위가 가시고 서늘 서늘한 바람이 머리끝을 스치고 지나갈 때 부산을 가게 된다면 그땐 추어탕을 꼭 한 그릇 먹고 오리라.
* 제피 : 초피나무의 열매껍질을 갈아서 만든 향신료를 일컫는 지역방언이다.
주로 경상도, 제주도 지역. 다른 지역에서는 초피, 젠피(전라도), 조피(북한)라고도 한다.
초피나무는 운향과에 속하는 식물이며, 익은 열매의 껍질을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사용한다.
톡 쏘는 매운맛과 알싸하고 강한 향이 특징이다.
주로 음식의 비린내를 제거하거나 독특한 풍미를 더하는 향신료로 사용된다.
* 방아잎 : 정식 명칭은 배초향(排草香)이며 이는 다른 풀의 향기를 밀어낼 만큼 향이 강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방아잎, 방아풀, 곽향(한약재)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어린잎은 깻잎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깻잎보다 갸름하고 잎자루나 줄기 끝부분이 연한 보랏빛을 띠는 경우가 있다.
식용으로는 주로 어린잎을 사용하며 경상도나 전라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추어탕, 매운탕, 어탕국수 등의 생선 요리에 향신료로 사용해 비린내를 잡고 풍미를 더한다.
전을 해 먹기도 하며, 말려서 차로 마시거나 한약재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