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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다리집 떡볶이

떡볶이와 오징어튀김의 변주곡

by 라이블리

나의 학창 시절엔 교생 선생님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사범대 학생들이나 교직 이수를 하는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실습을 나오는 제도였는데, 그 시절 학생들에게 교생 선생님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직 대학생이라는 젊음이 가진 영향력이 교생선생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게 했고, 교생 선생님이 수업을 하면 신선함과 풋풋함에 무겁던 눈꺼풀도 끌어올리는 매직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우리 학교에 실습을 나오신 교생 선생님은 미술 담당 교생선생님이셨는데 우리 학교를 졸업하신 선배님이셨다.

미대를 가기 위해 입시미술을 준비하고 있으면서 미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던 나와 나의 절친은 미술부 선배이기도 했던 교생선생님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점심 식사 후 여유가 생기면 미술실이나 운동장에서 교생 선생님을 만나 전공, 대학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조언도 듣고, 사진도 함께 찍는 등 계시는 동안 추억을 하나씩 쌓아 나갔다.

교생 실습이 끝난 뒤에도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 나갔다.

겨울이 되어서 선생님이 졸업전시회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과 꽃다발을 사들고 광안리에 위치한 갤러리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과 그동안의 소식을 주고받다가 선생님이 '다리집떡볶이'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다리집? 다리집이 뭐지? 처음 들어 보는 명사가 잘 이해되지 않아 의아해하며 따라나섰다.

광안리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상가들이 위치한 뒷길로 들어서는데 넓은 흙바닥 공터에 나무 기둥들이 중간중간 있고 지지대 삼아 큰 천막이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 아래 큰 튀김 솥에서 튀김이 튀겨지고, 넓은 스테인리스 판에는 굵은 가래떡들이 양념에 담겨 끓여지고 있었다.

조리대 주변으로는 채도가 선명한 원색의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들이 패턴처럼 펼쳐져 있었다.

단골이신 교생 선생님이 평소 드시던 대로 주문을 하시고 황금조합의 떡볶이, 오징어 튀김, 어묵탕 3종 세트가 나왔다.

떡볶이라고는 중학교, 고등학교 학교 앞 밀가루 떡볶이가 다인줄 알았던 내게 아주 진하고 붉은 양념에 담겨 있는 굵고 긴 가래떡 떡볶이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징어 튀김은 세상 태어나 처음 보는, 거짓말 살짝 보태면 어린아이 팔뚝만 한 크기의 튀김이었다.

함께 주어진 가위로 떡볶이 떡도 쓱쓱 자르고, 오징어 튀김도 싹둑싹둑 잘라먹기 시작했는데 그 맛이 신세계였다.

가래떡은 떡국으로만 먹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떡볶이로도 먹을 수 있다니, 뭘 넣어서 이렇게 양념의 색이 진한 빨간색인지 매콤 달달하면서 걸쭉한 양념의 옷을 입은 가래떡이 입안에서 춤을 췄다.

떡볶이 먹다가 굵직한 오징어 튀김 한점 집어 먹고, 어묵 국물 한 번 떠먹고 이렇게 세 가지를 도돌이표처럼 왔다 갔다 하면 각기 다른 맛과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져 훌륭한 변주곡이 되는 듯했다.

교생 선생님이 왜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알 거 같았다.

다리집을 알고 난 뒤, 한 번씩 친구들과 교북을 입은 채로 버스를 타고 와서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서울로 대학을 오고 나서는 다리집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쉽게 먹을 수 없는 그리움 속의 음식이 되어 버렸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시간마다 쏟아지는 과제에 기운을 다 쏟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생각나는 소울 푸드 또한 다리집 떡볶이였다.

진하고 걸쭉한 양념에 묻혀 있는 가래떡 떡볶이를 찍어 먹고 겉바속촉 오징어 튀김 한점, 그리고 뜨끈한 어묵 국물 한 모금이면 기운이 나고, 정서적 허기까지도 채워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서울에서도 부산의 맛집들을 접할 수 있다.

백화점의 팝업 매장들도 소소히 열리고 프랜차이즈 매장이 생기기도 하니까.

모 백화점 식품관에 다리집 떡볶이 매장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아이들과 함께 가서 먹고 왔었다.

엄마의 학창 시절 최애 떡볶이였다고 옛날이야기를 양념으로 쳐가며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흙바닥에 천막을 친 그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나면 찾아가서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남모를 든든함에 흐뭇해하며.




* '다리집' 명칭의 유래 - 근처의 동여고 학생들 단골이 많았는데 교복을 입고 앉아서 떡볶이를 먹고 있으면 천막에 가려져 다리만 보인다고. 다리집'으로 불리게 되었다.

1981년에부터 시작해서 현재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떡볶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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