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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장어의 기적

입덧을 이겨낸

by 라이블리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는 시장이 있었다.

동래 시장 그리고 온천 시장.

그중에서도 온천 시장은 특색이 있다.

온천이라는 단어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온천수를 사용하는 목욕탕들이 밀집해 있었다.

그 지역에는 전통적으로 온천이 나는 지역이라 목욕탕이 발달했는데, 어느 목욕탕이 온천수 100%라는 설과 함께 각 목욕탕들의 장단점과 특징들을 어른들은 늘 공유하고 계셨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목욕탕에서 피로를 푸시는 게 일상의 루틴 중의 하나였다.

아이들은 100% 온천수 그런 건 모르겠고 그저 덜 뜨거운 물이 있는 곳이 좋았고, 새로 생긴 목욕탕의 시설이 어떻다더라가 가끔씩 이야기되곤 했었다.


엄마 손을 잡고 목욕탕을 갈 때면 지나다니는 길에 작은 식당들이 있었는데, 뭔지 모르겠지만 식당 밖으로 수조가 있고 뱀 같은 형상을 한 생물체들이 잔뜩 얽혀 있었다.

외계에서 왔다고 해도 될 것 같은 형채를 한 그 생물들은 어린 마음에 다른 길을 찾아다니고 싶을 정도로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 식당들 앞에는 항상 아주머니들이 한분씩 연탄화로를 앞에 놓고 앉으셔서 석쇠에 빨간 양념의 음식을 올려놓으시곤 연신 뒤집어 가며 구우셨다.

"한 사라 하고 가이소~" 지나가는 행인 있을 때마다 목청을 높이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석쇠 위의 음식 뭔지는 모르겠지만, 연탄의 불향이 입혀진 양념의 냄새가 목욕을 마치고 출출해진 어린 나에게도 꽤나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연탄불 위의 그 음식이 곰장어라는 것은 그 뒤로도 한참이 흘러 청소년기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수조 안의 그 이름 모를 생물체가 먹장어(곰장어)라 불리는 해양생물이라는 것도.

그러나 정작 부산 살면서는 곰장어를 먹어본 적이 없다.

곰장어를 좋아하시지 않는 부모님 덕에 지나다니면서 냄새만 맡고 다녔을 뿐.

내 기억 속에서 곰장어는 맛보다는 냄새로만 기억되어 있는 음식이었다.


시간은 무심히 흘려 첫째를 임신하고는 입덧으로 고생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속은 울렁거리고 음식이라곤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파와서 누울 자리만 찾게 돠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힘없이 누워 있는데 콧 끝을 맴도는 냄새가 있었다.

연탄불 위에 불향이 입혀진 빨간 양념이 익어가는 냄새가 코를 간질간질하며 기억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곰장어 냄새!!

입안에 침이 돌며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싶다 아니 꼭 먹어야겠다는 의지로 남편에게 얘기하고는 검색하기 시작했다.

17년 정도 전이니 지금처럼 배달문화가 자리 잡기 전이기에 검색으로만 조건에 맞는 곰장어 집을 찾기 시작했다.

조건은 연탄불이나 숯불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구워 먹는 곰장어야 했다.

곰장어도 조리법이 몇 가지가 있어서 철판에 채소와 볶아내듯이 조리하는 식당들도 있기에 잘 알아봐야 했다.

수차례의 검색 끝에 조건아이 맞는 한 곳을 찾아냈고 주저할 거 없이 가서 주문을 했다. 처음 마주한 곰장어.

석쇠 위에 익어가는 냄새가 어릴 적 기억 속의 그 냄새다.

다시금 맡게 된 곰장어 냄새는 엄마 손 잡고 목욕탕을 따라다니던 그 시절의 꼬맹이로 돌아가게 했다.

한 점을 집어 먹어 봤는데 오독오독한 식감이 특색 있었다.

불향은 매운 양념의 맛을 한층 올려 주었다.

생각보다 식감과 풍미가 좋은 음식이었다.

참 신기하게 생겼는데 이걸 어떻게 먹을 생각을 했을까.

그날은 인생 처음 먹어본 곰장어를 무려 3인분이나 먹게 되었고, 입덧 중이었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 뒤로도 한 번씩 곰장어 익어 가는 향이 코끝을 간지럽힐 때면 나는 먹으러 간다.

입덧도 이겨 내는 곰장어를.



*곰장어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은 곰장어의 껍질로 나막신의 끈이나 모자의 테두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고, 몸통은 버려졌는데 이룰 배고픈 우리 조상들이 ㅜ가져다 구워 먹었다는 게 곰장어 구이의 시초라고 전해 내려져 오고 있다. 그러다 아예 껍질째 짚불에 던져 구워 먹었던 게 지금의 기장 짚불 곰장어의 시작이 되었다. 알고 보면 가슴 아픈 역사와 함께 시간을 지나온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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