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듯한 한 끼
수능 시험을 치고 실기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하루 종일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친구가 저녁을 사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스트레스받는데 매운 음식이 먹고 싶다면서.
매운 거 뭘 먹으려나 떡볶이라도 먹으려나... 친구를 따라간 곳은 식당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한식을 파는 노포는 부모님 하고 같이 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곳이라 쭈뼛쭈뼛 어색하게 따라 들어갔더니 낙지볶음을 파는 곳이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조방낙지라고 불리는 전골형태의 낙지볶음이었다.
신을 벗고 따듯한 온돌로 올라가 앉으니 휴대용 가스버너에 불이 켜지고 전골냄비가 얹어졌다.
그리고 약간의 밑반찬과 함께 넓적한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긴 밥이 나왔다.
이곳은 메뉴가 한 가지였고 따로 주문할 필요도 없이 그냥 앉으면 인원수대로 바로 상차림이 준비되었다.
낙지볶음이 어느 정도 익으면 밥에 낙지, 삶은 콩나물, 김가루 참기름을 더해서 비벼 먹는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었지만 19살 어른 입맛을 가졌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기에 매콤하면서도 입 안에서 낙지, 콩나물, 김가루가 밥과 어우러지고 서로의 존재감을 튀지 않게 드러내는 그 맛이 참 매력적이었다.
뜨끈한 온돌방의 온기도 더해 주니 한겨울의 추위가 가시는 듯 땀도 살짝 나고 하루 종일 그림 그리며 느끼고 있었던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도 날려 주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함께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 이런 노포에서 밥을 사 먹었다는 것이 막 어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내가 먹었던 음식이 조방낙지라는 잘 알려진 메뉴이고 우리가 갔던 그 노포는 시간이 흐른 뒤 더 유명해진 '소문난 원조조방낙지본점'이라는 것도.
지금은 조방낙지의 유래와 본래의 형태보다는 낙지볶음전골에 곱창, 새우, 당면 등을 더해서 낙곱새라는 메뉴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젊은 친구들도 좋아하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원한다면 밀키트로 또 얼마든지 구매해서 먹을 수 있어서 세상 참 편리해지고 좋아졌다는 생각이 새삼 들게 하는 음식이다.
약간의 변형이 되더라도 발전이라 생각하며 꾸준히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서 명맥을 이어 갔으면 좋겠다는 음식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 부산 조방낙지란? : '조방'은 부산에 있었던 조선방직주식회사를 줄여 부르던 명칭이다. 조선방직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설립되어 1960년대까지 리 지역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공장 앞의 식당에서 이 낙지볶음이 시작되면서 '조방낙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조방낙지는 일에 지친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에서 시작하여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