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이태원로 (24. 9. 7.)
용산미군기지는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주한미군과 대한민국 국군의 주둔지 가운데 하나이다. 현존하는 한국 내 미군 부대 기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고, 서울 도심에 있는 유일한 군사기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평택으로 대부분 이전하게 되어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쇄된 상태이다. 향후 용산미군기지 부지는 용산가족공원으로 조성되어 곧 역사 속으로 모습을 감출 것이다. 사라질 역사의 흔적을 눈에 담고, 해설사가 전해주는 용산미군기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6호선 녹사평역으로 향했다.
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인 계절, ‘2024년 하반기 용산기지 둘레길 산책’이 시작되었다. 용산기지 둘레길 산책은 녹사평역에서 이태원로를 거쳐 전쟁기념관까지 흥미로운 미군기지의 역사를 들으며 걷는 여정이다. 과거 미군들의 생활을 간접 경험하고 향후 새롭게 태어날 용산공원을 상상해 보고자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녹사평역 용산공원 플랫폼에서 오늘의 산책 해설사를 만날 수 있었다. 용산기지의 어떤 이야기가 쏟아질지 호기심 가득한 참여자들의 눈이 해설사를 향했다.
녹사평역을 나와 걷다 보면 ‘GATE3’이라는 표시판이 붙은 붉은 담벼락이 나온다. 3번 게이트 부근에는 주한미군과 유엔사에 배속된 미 해병대를 지휘하는 주한미해병대 사령부가 자리하고 있다. 3번 게이트와 맞닿은 도로가 바로 이태원로이다. 이태원로는 미군기지의 메인포스트와 사우트 포스트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여러분, 올여름은 유난히 기온이 높아서인지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았네요. 이태원로는 봄엔 벚꽃으로, 가을엔 단풍으로 장관을 이룬답니다.”
수많은 미군의 발자국을 담은 이태원로를 걷다가 해설사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여러분 빨간 담장 너머로 미군기지 안을 한번 자세히 보실래요? 뭔가 좀 이상한 게 있지 않나요?”
담벼락 위 철조망, 높은 가을 하늘과 벚꽃 나무.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걸까?
“전봇대를 자세히 보시면 우리가 알던 전봇대의 모습과 좀 다를 거예요. 전나무로 만든 나무 전봇대거든요. 일본과 미국의 경우 110V 전압을 사용했기 때문에 나무 전봇대 설치가 가능했답니다.”
1904년부터 일제의 군용지로 강제 수용되었고, 이후 일본군과 미군 등의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서 일반인의 접근이 힘들었던 땅.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곳은 이질적인 문화가 남아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철조망 너머를 향했고, 그곳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 일대는 조선군의 병참기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보급기지, 구한말에는 청나라군이 주둔했던 때도 있었어요. 러일전쟁 이후에는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터이기도 하지요. 뒤를 이어 주한미군이 이곳에 가장 오래 머물렀어요. 여러분, 유독 이곳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참가자들이 답을 찾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아마 지리적으로 한강과 접해 있어 배를 이용해 물자를 이동하기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해설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원로 해설이 끝날 즈음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까 메인포스트 클럽 너무 웃기지 않아요? 내가 생각했던 엄숙하고 차가운 군인의 이미지와 다르게 미군들도 게임을 즐기고, 팝에 맞춰 춤을 췄다는 게 상상이 안 돼요.”
아이는 마치 몰랐던 비밀을 캐낸 것처럼 즐거워했다.
용산 미군기지를 반환받아 서울 중심에 큰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은 복잡한 도심에 여유를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와 냉전 시대를 지나 ‘대한민국’을 공고히 하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과정이다. 용산가족공원이 조성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이 우리의 몫인 이유이다.
과거 ‘서울 속의 작은 미국’이었던 공간, 용산기지 둘레길 산책 일정은 9월 4일부터 10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오는 가을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 (https://yeyak.seoul.go.kr) 홈페이지를 통해 이태원로를 제대로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