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적당한 거리는
“서아(가명)는 주말에 뭐 하고 놀았어?”
“놀이터에도 가고 키즈카페에도 갔다 왔어요. 다음에 또 갈 거예요.”
“진짜 재밌었겠다.”
“근데 너무 시끄럽게 논다고 저랑 준영이랑 엄마한테 혼났어요.”
“에고, 그랬구나. 근데 서아는 동생이 있었니?”
“없는데요.”
“그럼 준영이라는 친구는 누구야?”
“우리 아빤데요.”
“아... 아빠도 많이 혼나신 거구나.”
“원래 많이 혼나요.”
“아.. 근데 왜 서아는 아빠 이름을 불러? 외국에서 살다가 왔니?”
“외국이 뭐예요?”
‘넌 대체 뭘까....’
웃어야 할지, 혼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웃어버렸다. 요새는 친구 같은 엄마와 아빠를 지향하는 부모도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좀 보수적인 사람이라 아빠를 준영이라고 부르는 아이가 낯설고 당황스럽다.
우리 집에 있는 아빠는 비록 아이들에게 본명으로 불리지는 않지만, 꽤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퇴근하고 도어록을 여는 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하던 일을 제치고 갑자기 등 꺼진 방의 바퀴벌레들처럼 음습한 구석으로 숨어버린다. 베란다라든지, 불 꺼진 화장실이라든지.
“여보, 애들이 사춘기라 밖으로 뛰쳐나갔어.”
“아, 이거 안 되겠네. 이참에 문을 다 잠가버리자.”
깊숙한 곳까지 들릴 수 있게 소리 높여 크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게 아이들과 아빠가 소통하는 방식이다. 일하고 돌아온 아빠에게 “고생하셨어요.”라고 말하는 대신, 아빠가 아이들을 찾았을 때 비명을 지르며 그제야 '다녀오셨어요.'라며 인사를 한다.
아빠와 아이가 ‘친구처럼’ 가까웠음 하지만 ‘진짜 동갑처럼’ 격과 범절 없이 지내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는다. 마땅히 어른은 어른의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고, 아이는 차근차근 예의를 배워가는 과정에 서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