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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림 Jul 16. 2024

취업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천재인데?


작년 여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학과 교수님을 찾아갔다. 이런저런 이야기에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답에 갑자기 교수님께서 종교를 물어보셨다.


"해림 학생 혹시 교회 다녀요?"

"네? 네, 교수님."


갑작스러운 종교 조사에 당황스러웠다. 내 표정에서 당황스러움이 드러났는지 교수님께서 서둘러 말씀을 이어가셨다.

"아, 왜 물어봤냐면 제가 예전에 명리학을 조금 공부했거든요. 그래서 사주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해림 학생에게 조금 더 맞는 진로를 찾게 도와주고 싶어서요. 해림 학생만 괜찮다면 사주를 좀 봐주려 했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죄인을 용서하소서. 그러나 교수님이 봐주시는 사주라 하면 왠지 모르게 양심이 덜 찔리는 듯했다. 그래서 덥석 수락해 버렸다.


생년월일시를 알려드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솔직히 어떤 내용을 말씀해 주셨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딱 하나. 또렷이 기억나는 말이 있다.


"해림 학생은 조직 생활이든 프리랜서든 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당시에 나는 무조건 회사에 취업한다는 생각이었기에 이 말을 그렇게 의미 있게 듣진 않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사람이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 D를 만났다. D는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지만 취업에 관한 내 모든 과정을 아는 친구이다. D는 나와 달리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였고, 작년에 이직을 한 후 아주 만족스럽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D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포기하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흥미롭게 쳐다보곤 했다. 이야기 끝에 D는 길을 찾아가는 나를 응원하면서도 부럽다고 말해주었다. 반대로 나는 안정된 삶을 일구어 가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D의 모습이 부럽고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D에게 최근 취업이 싫다는 마음을 인정하게 된 일을 고백하였다. 한참 내 이야기를 듣던 D는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해림아 나는 왜 이렇게 네가 평범한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지?"


워낙 나를 특별하게 봐주는 친구이기 때문에 좋은 위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친구의 표정은 묘하게 진지했다.


"아니 진짜 진심이야. 지금 너는 취업이 하기 싫은 거잖아. 그러면 취업 말고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면 되잖아?"

"오... 오...! 그러네! 너 정말 천재구나!"



취업하기 싫다는 마음을 인정하고, 나는 계속해서 이 마음을 교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취업을 하기 싫은 마음을 잘못된 것으로 여겼고, 이 마음을 옳은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고민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요즘 같은 시대에 꼭 취직만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났다.



"해림 학생은 조직 생활이든 프리랜서든 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많은 이야기 중 유일하게 기억나는 딱 한 마디. 어쩌면 지금 이 시기를 위한 말이었나 보다. 물론 취업이 아닌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게 쉽지 않음을 안다. 실제로 주변 프리랜서들 중 회사원보다 더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인생이, 생존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러나 취직이 그렇게나 싫다면 그 마음을 바꾸는 대신 아예 다른 길을 고르는 게 대안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 나는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취업이 하기 싫은 거였다. 이 사실 자체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취업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함으로 지게 되는 책임을 피할 수는 없겠지. 그러나 취업하기 싫다는 마음을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책했던 시간이 떠올라 스스로에게 좀 미안해졌다.


잠깐! 취업을 아예 포기한 건 아니다. 여러 지원사업을 보면서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도하고 있다. 그래도 취업이 하기 싫다면, 안 하면 되지! 미래의 나에게 미리 양해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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