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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림 Jul 09. 2024

사실 나는 취업 하기 싫어요

그래도 후련하다

나는 취업이 하기 싫은 취준생이다. 

이 마음을 인정하기까지 용기가 없었다. 


실 그동안에는 이 마음에 주목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학기를 마치고는 '갭이어'라는 설득력 있는 핑계가 있었다. 그동안 정신없이 학과 공부를 했으니 일 년 정도 부족한 경험을 채우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도 되지 않을까? 그럴듯한 주장이지 않은가? 그런데 올해 4월, 본격적인 취준의 길로 들어서고부터는 취준 하기 싫은 마음을 감출 핑계가 사라졌다. 


돌아보지 않아도 취업을 미루고 싶은 마음은 자꾸만 의식 위로 올랐다. 공고를 보고 숨이 턱 막혔고, 유독 자기소개서를 쓸 때만 글이 안 써졌고, 취업 준비 이외의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취준 빼고 다한다는 나의 답에서, 요즘 준비하는 것이 있냐는 부모님의 말씀에 없다고 답하는 나의 대답 속에서 생선 가시를 삼킨듯한 불편함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취업이 하기 싫다.


왜 하기 싫을까? 솔직히 괴롭고 지루한 취업 준비 과정이 두렵다. 그리고 취준을 하게 되면 잃게 되는 삶의 자유가 두렵다. 그렇다면 이 마음을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 그건 스스로와 주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인정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늘 기대를 받는 것에 익숙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주위 사람들은 늘 나를 대단한 사람, 앞으로가 기대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나 역시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있다. 목표가 생기면 어떻게든 이뤄냈었고,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막연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져 있었다. 분명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도 많았을 텐데, 그런 모습은 잊고 기대에 부응했던 일들만 모아 '나'를 만들었다.


하지만 취업 시장은 냉정하다. 이곳에서 나는 삶의 맥락이 생략된 채 오로지 수치와 결과로 평가당한다. 여기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 사이에 어느 정도의 괴리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늘 기대를 받는 사람이었는데, 이곳에선 특별할 거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계속해서 아직은 취업할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했던 것 아닐까 싶다. 


그래도 후련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 모습이지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조차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던 마음을 세상에 공개하니 시원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떡할 거냐는 물음에 뭐라 답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도 솔직한 게 더 매력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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