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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림 Jul 23. 2024

원래 20대 중후반 취준생은 불안하다

아직 중반이라 믿을래...

고등학교 시절, 수학 문제를 풀 때 사용했던 '절댓값'을 기억해 본다. 존재 이유는 모르겠고, 벽 사이에 숫자를 가두면 음수가 양수가 되었던 건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절댓값의 성질을 외웠지만 갑자기 이 값의 정체가 궁금하다.


절댓값을 왜 만들었을까? 찾아보니 절댓값은 "주어진 수가 0으로부터 얼마큼 떨어져 있는지 나타낸다"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주어진 수와 0 사이의 거리라고도 볼 수 있다. 거리는 음수가 될 수 없기에 양의 실수이거나 0이어야 한다. 학생이었을 때는 무작정 절댓값의 성질만 외웠는데 그 의미를 알게 되니 새롭다.



그렇다면 나는 사회적 기준의 내 나이에서 얼마큼 떨어져 있을까? 내 절대적 나잇값은 얼마나 될까?



나는 원래 나잇값에 둔감한 편이었다. 특정 나이에는 무얼 해야 한다는 사회적 관습(?)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고,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빨리 취업하고 싶다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나만의 속도로 인생을 잘살겠다는 다짐을 홀로 했다. 그래서 수료생으로 살아가던 시절에도 취준을 시작하기보다 갭이어로 정하고,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학칙만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까지도 수료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논문을 지도해 주신 교수님이 하필이면 올해 안식년에 들어가셔서 거의 강제로 올해 초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나는 취업에 대한 부담도 없었고, 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나서 내 페이스를 잃기 시작했다. 이제 취업이 될 때까지 비어진 시간은 공백기가 되고, 나는 남들에게 공백의 이유를 설명해야만 한다.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내가 설명해야 하는 시간도 길어지게 된다. 그래,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설명을 했다 치자. 근데 과연 남들도 이 시간을 나와 동일한 가치로 평가해 줄까? 나는 매주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고 있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렇기에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이 생기게 된다. 



최근에 만난 친구와 이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모든 걸 다 놓고 좀 쉬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다. 나는 일을 안 하고 있는 사람인데, 내가 쉴 자격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일을 하지 않는 것'과 '쉬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소진된 삶과 마음을 돌보는 것이 쉼이라면 나는 반대로 걱정, 불안, 생산성에 대한 강박으로 오히려 나를 소진시키고 있다. 시간적 자유는 많지만 정작 마음이 자유롭지 않고 편하지 않다.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몸도 건강하지 않다. 그럼에도 일을 하지 않으니 쉬면 안 된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걸 놓고 쉼을 추구하는 게 현실을 회피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 


시간이 흘러 어딘가 정착하게 되어 이 글을 읽으면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지금이 좋을 때다 하고 추억하게 될지 모른다. 모든 일은 시간이 흐르면 다 무뎌지기에. 그러나 오늘 이 시간이 요즘 나에게는 참 날카롭다



불행 중 다행인지 최근 SNS로 <원래 20대 중후반은 우울하다>는 콘텐츠를 접했다.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이때에 불안과 걱정이 드는 건 당연하다고 한다. 그래. 이 말을 믿어보자. 원래 지금은 한참 흔들리고, 불안할 나이라잖아. 


절대적 나잇값... 여전히 이 절대성에 대한 불신은 남아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평생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걸지도 모른다. 파도에 올라탄 것 마냥 계속해서 요동치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원래 다 그런 거라면 좀 위안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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