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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림 Jul 30. 2024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좀 조심하자...

나는 오래전부터 아티스트의 앨범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A&R이 되고 싶었다. 원래 음악을 좋아했지만 열성적인 리스너일 뿐이었다. 하지만 2018년 버스에서 무심코 들은 수록곡 하나로 음악 종사자를 꿈꾸게 되었다. 그 곡은 타이틀도 가사가 있는 수록곡도 아닌, 앨범의 중간을 알리는 interlude였다. 그러나 그 곡이 끝나고, 다음 트랙이 시작되는 순간 서사를 가진 앨범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충격을 여러 번 곱씹으며 앨범에 다양한 연출과 장치를 설계하는 A&R이 되어야겠다는 것과 그 음반을 만든 회사로 취업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꿈의 기회는 몇 번씩 찾아왔다. 그러나 스스로가 준비되지 않은 지원자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매번 지원을 포기했다. 이 회사에서 떨어지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다음을 핑계로 지원을 회피한 것이다.


비전공생에 직무 경험 부족. 진단의 근거였다. 비전공생은 어쩔 수 없으니 직무 경험이라도 보완하자며 최근 일경험 사업에 지원했다. 다행히 서류를 합격하였고, 면접을 앞두게 되었다. 


면접 당일 당연히 떨렸다. 처음이자 마지막 인턴 면접에서 큰 고배를 마시고 일종의 면접 트라우마를 얻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면접이 다가올수록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아니, 어떤 사건으로 인해 불안을 느낄 새가 없었다.


사건은 이러하다. 


몇 달 전부터 한약을 복용했는데 이상하게 한 번에 특정 양 이상을 마시면 꼭 배탈이 심하게 났다. 몇 번의 경험 이후로 중요한 날에는 한약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다른 약을 복용하느라 한약 복용을 잠시 중단했더니 이 일을 까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원샷해버린 한약은 당연히 큰 고통을 가져왔다. 긴장을 느낄 만하면 배를 쥐어짜는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이대로는 면접장에 도착도 하지 못하고 끝날 것 같아 최대한 진정시키고 출발했다. 버스에서는 괜찮았다. 그러나 면접을 15분 남기고 또다시 고통이 찾아왔다. 찰나의 순간.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본능이 앞섰다. 면접에 늦든 말든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면접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큰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 2분을 남기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준비했던 메모를 볼 경황도 없이 그저 면접을 본다는 안도감만 들었다. 다행히 그렇게 힘든 면접은 아니었다. 중간에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나왔지만 이미 큰 고난을 겪고 와서인지 그럭저럭 잘 대처했다. 후회 없는 면접을 마치고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면접 당일 아침에 느낀 불안과 걱정은 생리적 고통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애타게 바랐다. 생각해 보면 내가 느끼는 불안과 긴장의 근원은 실체가 없다. 지레 겁을 먹고, 나쁜 결과를 상상했을 뿐이다.


내가 그 회사에 지원하지 않았던 이유 역시 나쁜 결과를 마주하기 싫어서였다. 나는 분명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지원자일 텐데, 너무나 원하고 바라던 회사에 불합격 통보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그 충격은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탄탄히 마셔온 탈락의 고배로 그 정도는 거뜬히 이겨낼 수도 있다. 또 결과를 알아야 이후에 다른 대책을 세울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어떤 준비를 하더라도 완벽히 준비될 수 없을 텐데, 일단 부딪쳐 봐야 튕겨나가든 간신히 붙들리든 미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그 어떤 결과도 생리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나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야 인마. 너는 참을 수 없는 고통도 이겨낸 사람이야. 그걸 겪은 너는 어떤 것이든 견딜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너를 믿어봐. 꼭 붙을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어떤 결과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역시 아프니까 청춘이고, 아파봐야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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