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간 취업 여행의 마무리

참 길었구나

by 해림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며칠 사이에 잠잠해졌다. 진정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의미이다. 더위가 지난 것은 반갑지만, 2024년이 저물어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진다. 어제로 2025년까지 100일이 남았단다. 올해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니. 아직 결실이 없는데, 한 해 농사가 아쉽게 끝나면 어쩌지 싶다.



얼마 전, '뭐라도 생산적인 걸 해야 한다'는 강박에 팟캐스트에 들어갔다. 한창 무얼 들을까 살피다 'How to live a meaningful life'란 제목의 에피소드를 발견했다. 워낙 '의미'에 환장하는 사람이라, 망설임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탠퍼드 교수 Brian S. Lowery는 의미 있는 삶과 개인적 성취를 다르다고 설명했다. 흔히 그 두 가지를 동일시하지만, 두 가지는 별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무얼 해야 할까? 그는 'Relation(관계)'이라 답했다. 단순히 관계를 맺음을 넘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취를 의미로 보는 것은 쉽다. 성취는 눈에 보이고, 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 성취가 없었다. 한 달 안에 취업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아르바이트를 관뒀으나 여전히 아르바이트 인생이다. 십만 유튜버, 책 출판의 부푼 기대와 함께 시작한 유튜브와 브런치마저 아직 조용하다. 기대한 목표치의 근삿값도 채우지 못한 채, 지난 9개월 동안 여러 장소만 전전했을 뿐 그곳에 앉아하는 것은 고만고만했다.


올해 농사는 진짜 망한 건가?



생각해 보면, 나는 올해 여러 곳에서 다른 사람의 농사를 거들었다. 영어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이에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자신의 장점을 모르는 친구에게 '너는 이걸 잘해'라는 응원을 건넸다. 덕분에 몇몇 아이들의 변화에 작은 역할로 참여할 수 있었다. 유튜브와 브런치를 통해서도 누군가의 삶에 잠시 참여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잠깐 나오고 마는 엑스트라로 그쳤지만, 몇몇 댓글을 보니 누군가에게는 좀 더 비중 있는 역할로 참여했던 것 같다.


나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이야기에 참여하고 싶다. 우리가 갔던 식당을 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자꾸 생각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람들의 이야기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그걸 계속 느끼고 싶다. 물론 이야기에 더 큰 역할로 참여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영감 없이 창작하는 연습을 해야 하고, 창작의 고통과 친해져야 한다. 그리고 당장 보이지 않는 결과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삶은 과정이다. 결과로 주어지는 개인적 성취와 다르다. 과정에서 의미를 빚어내는 건 쉽지 않다. 작은 씨앗 열매를 맺는 경험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없는 흙에 물을 주며 기다렸고, 작은 싹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기뻤다. 물 주는 것을 깜빡해 시든 잎을 볼 때는 자책도 했지만, 결국 수확할 때가 되니 뿌듯했다. 나는 왜 뿌듯했을까? 씨앗을 심고 그것을 어엿한 생명의 존재로 기르는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과정은 무엇일까? 그 답은 너무나도 심오하지만 매 순간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모순이지만 취준생이 되기 싫어 '취준 여행 기록'이라는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글을 연재하면서 적어도 작가라는 이름을 빌릴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더 이상 '취준 여행 작가'라는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딘가에 취업한 것도 아니고 취업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고자 하는 길이 달라졌다. 그래서 이 여행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런 마무리를 계획하진 않았지만 이 또한 우리의 인생다운 마무리이다.



취준 여행 기록, The End.


새로운 여정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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