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 한 번의 새해가 남아 있습니다

Ep.2

by 해림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 50초.

모두가 웃는 얼굴로 십, 구, 팔, 칠을 외칠 때 혼자 죽상으로 우울해하는 사람이 있다. 한 살 더 먹었다고 슬픈 게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새해가 두려운 거다. 지난 일 년 동안 기다려온 새해가 사실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도 겪고 싶지도 않은 거다.






나에게는 새해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새해가 되면 뭔가 달라질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인생 리셋 버튼이 있는 것처럼 그날만 되면 다시 새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달라져 있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1월 1일은 2월 1일, 11월 1일처럼 똑같은 첫날일 텐데. 해가 바뀐다는 점 때문에 괜히 특별해진다. 이런 착각으로 지독한 1월 1일 증후군을 겪어왔다. 12월 31일까지 행복했다가 1월 1일만 되면 우울하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온 설렘이 무색하게 1월 1일은 어제와 똑같은 하루다. 그 충격으로 1월 한 달이 무기력해지고, 꽃샘추위 마냥 우울감이 4월까지도 잔잔하게 이어졌다.



사실 새해는 변화의 계기일 뿐 변화 자체가 아니다. 새해가 되었으니 당신은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이랬으면 참 좋겠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변화란 하루아침 마법처럼 짠 나타나지 않고 반드시 과정이란 절차 후에 이루어진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를 쓰고 최종 면접까지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변할 거란 내 기대에는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었다. '변화 = 결과'라는 잘못된 등식을 학습한 거다. 한 발 더 나아가 '새해 = 변화 = 결과'를 믿고 살았으니 변하지 않는 (실은 결과가 없는) 내 모습에 좌절하는 건 당연했다. 이래서 등호를 잘 써야 한다. 앞으론 새해에는 달라질 거란 결심 대신 새해부터는 달라지려고 노력할 거라고 말해야겠다.



이제 노력을 시작해야 하는데... 익숙한 걸 좋아하는 내 몸에 변화를 주입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와 수고가 드는 일이다. 변화를 다짐만 해봤자 관성에 따라 어제와 똑같이 살게 된다. 그렇기에 대비를 해야 한다. 내 몸은 미련이 많아 언제든 예전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X를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찾으려면 계획을 짜야한다. 어떤 새로움을 원하는지, 그걸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리를 해둬야 새해를 계기 삼아 달라질 수 있다. 그 준비를 미리 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고, 2025년 첫날을 어영부영 보냈다. 그렇다면 내년 1월 1일을 기약해야 할까? 다행인 것은 우리에겐 매년 두 번의 새해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양력 1월 1일인 신정과 음력 1월 1일인 설날. 해와 달의 서로 다른 기준으로 우리는 새롭게 살아갈 두 번의 기회를 가졌다. 이번엔 달과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고 싶어 지난 3주 동안 변화를 준비해 왔다. 꽤 철저히 준비해 왔으니 변화는 내일부터 찐으로 시작될 것이다.



꼭 새해가 아니어도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가능하다. 다만 변화의 대가를 흐린 눈 하기 위해 그럴듯한 계기가 필요할 뿐.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면 올해 언제든 만들면 그만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말 한마디 하고 싶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계기를 만드는 것처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아무 핑계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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