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나는 나를 사랑한다. 아니 사랑하는 편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삶이 너무 슬플 것 같다. 스스로를 사랑함으로써 세상 살이 견디기. 이것은 생존을 위한 나만의 전략이다. 꽤나 건강한 모습 아닌가? 그러나 요즘은 나를 적당히 사랑하면 안 될 것 같다. 나를 이루는 모든 요소를 사랑해야만 할 것 같다. 내 부족함, 못남, 단점을 사랑할 수 없다? 삐빅- 자기 사랑 레벨이 3 감소되었습니다. 온갖 곳에서 접하게 되는 자기 사랑 메시지로 무조건적인 자기 사랑을 요구받는 기분이다. 게임 캐릭터처럼 끝없이 자기 사랑 레벨을 높이기 위해 애써야 한달까?
아니 가끔은 나를 좀 미워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뭐든 과한 건 좋지 않은 것처럼 나를 적당히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사실 내가 나를 얼마큼 사랑하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사실 나를 사랑하는지 묻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랑이란 뚜렷한 실체가 없는 믿음, 주관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나를 사랑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건 잘못된 게 아니고 당연한 일이다. 매 순간 변하는 게 우리 마음인데 한결같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게 대단한 일이다. 늘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자기 사랑 강박의 결과라면 이 사랑을 건강하다 할 수 있을까?
물론,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 제목처럼 말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이끄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자기 사랑을 지향하고 외치다 보면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외친 자기 사랑이라면 마음 한구석 석연치 않은 불안이 존재하게 된다. 오히려 완벽한 사랑이란 집착을 놓을 때, 설사 나를 덜 사랑하더라도 마음이 편할 수 있다.
나에게도 자기 사랑을 검열하던 시절이 있었다. 왜 그렇게 자기 사랑에 집착했을까 생각해 보면 남들의 시선 때문에 그랬다. '부족함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일 때 사람들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보았다. 어쩜 그렇게 자기를 사랑할 수 있냐며 부러워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인식을 나 자신의 가치로 여겼고, 반대의 모습을 보일 때면 불안해졌다.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감 없는 나를 발견할 때면 그 모습을 감추기 위해 자기 사랑을 되뇌었다.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자기 사랑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변절되었다. 한 마디로 자기 사랑을 의식하고부터 그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는가’란 질문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까? World Self-Love Organization이라도 만들어 확실한 자기 사랑 기준을 만들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당분간 그럴 일은 없어 보여 나는 사랑에 대한 추상적인 질문을 멈추고 실용적인 접근을 시작했다. 때로 우리는 행동을 통해 사랑을 확인한다. 굳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나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만드는 상대를 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고 선물해 주는 상대를 보며 이 사람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구나 알게 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지 헷갈린다면, 또 아무리 봐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나를 얼마큼 사랑하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냥 나를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면 어떨까? 이런 행동은 실제적이고 경험적이라 <사랑하기>라는 애매모호한 목표의 증거(?)가 된다. 즉, '나는 나를 사랑해서 이런 행동을 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그리 똑똑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나를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다 보면 저절로 나를 사랑한다고 믿게 되지 않을까? 굳이 날을 정해서 좋은 걸 보고,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기.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다.
나를 적당히 사랑하자고 했지만 나를 사랑하는 노력을 멈추라는 말은 아니다. 각박하고 벅찬 세상에서 살고 있는 만큼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닳지 않도록 소중히 대해야 한다. 그러나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어도 자신을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그런 마음이 다른 쿨 타임으로 들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괴로워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그런 그들에게 "너 자신을 사랑해야지"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결핍을 채우라는 무책임한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게 쉬우면 결핍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존감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팽창한 이 시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검열하게 된다. 나 정도면 나를 사랑하는 거라고 자기 암시를 되뇌며, 끊임없이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실체 없는 그 질문에 벗어나 진짜 사랑을 실천 중이다. 나를 위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못되고 고약한 세상 때문에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적당히 나를 속이며 살아가주길 바란다. 여담이지만 성공한 많은 사람들도 자기혐오의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미워 죽겠는 당신, 어쩌면 누구보다 성공에 가까운 사람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