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젠장.
이십 대 중반이 여섯 달도 남지 않았다.
벌써 2024년이냐며 친구들과 놀랐던 게 엊그제 같은데 눈 깜짝할 새 2025년이 진행 중이다. 해가 달라졌지만 정작 달라진 건 노화가 진행된 장기밖에 없다. 2025년을 한 시간 앞두고 갑작스럽게 시작된 복통으로 새해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고민은 사치일 뿐. 난생처음 겪는 복통에 식은땀까지 흘리며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었다. 그 여파인지 추운 겨울에도 얼음을 씹으며 얼죽아를 다짐했던 나는 카페에 앉아 따뜻한 페퍼민트 티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아플 때는 올 한 해 건강하기만 하자 싶었는데, 다 나으니 뒤늦게 올해 걱정이 밀려드는 건 왜일까. 그래서 올해 첫 곡으로 무얼 들었더라..? 묻어두는 게 좋을 듯하다. 그나마 만 나이가 도입되면서 아직 한 살 더 먹지 않았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만 26세 백수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세상 불편하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나와 비슷하게 진로를 찾는다는 이유로 쉬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어느새 다들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밸런스 게임으로 몇 시간 떠들던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지 이야기한다. 벌써 3년 차 직장인이 된 한 친구는 이직을 고민하고 있고, 첫 직장에서 막 6개월을 보낸 다른 친구는 이직 준비에 돌입했다고 한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막막함을 겪고 있는 셈이다. 막막함이란 공통분모에 공감하면서도 나와는 다른 차원의 막막함이라 큰 벽을 느끼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들 사회로 가는 다른 여정을 거친다. 손쉽게 사회인으로 전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사회로 곧바로 진입하지 않고 경로를 이탈하여 자신만의 길을 찾기도 한다. 나는 이년 째 길을 찾는 중이다. 이를 방황이라 생각했지만 누군가 여정이라는 멋진 말을 붙여주어 그 말을 빌려 본다. 아무튼 이년 째 나는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여정에 있다.
'왜 나는 쉽게 길을 찾지 못할까?' 하는 짜증이 들면서도 막상 취업 공고를 보면 숨이 턱- 하고 막힌다. 적당히 타협하며 시작하는 것이 지혜이거늘. 인생의 지혜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에게 또 실망한다. 한 번은 변화를 다짐하며 뭐든 시작해 보는 마음으로 취업 공고를 살폈다. 그러나 취업 공고가 원하는 사람이 커 보였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사이트 도출? 최신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사람? 나에겐 너무 거창한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뭘까. 좋은 학생이 되는 방법, 시험에 붙는 방법은 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도합 16년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했고, 준비한 시험들에서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또 대외활동을 하면서 해외도 갔다 오고, 최우수 활동자로 뽑히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사회에 나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의문이 들었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전문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학과는 졸업 후 정해진 길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막막함 속에서 마주한 몇 번의 서류 낙방은 나를 한층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막막한 이 마음은 알고리즘에게 쉽게 간파당했다.
인스타 추천 탭은 이십 대 중후반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로 가득 찼고, 유튜브를 틀면 재능과 적성을 찾는 여러 방법론이 나를 기다렸다. 여러 영상을 시청한 결과 해답은 간단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행동 혹은 남들보다 유난히 더 하게 되는 행동, 그것을 발견하면 된다는 것. 노력 없이 하게 되는 행동이라… 틈틈이 생각하며 세 가지로 답을 내렸다.
생각하고, 탐구하고, 글 쓰기.
삶을 돌아보았을 때 이 세 가지는 기쁠 때나 슬플 때 그 어떤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던 행위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왕의 왕관이 순금인지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생각하다 목욕탕에서 그 답을 알아냈다. 나는 그런 유레카적인 순간을 갖기 위해 생각한다. 살아가다 보면 갑작스럽게 어떤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의미의 원석'이라고 표현한다. 의미의 원석을 발견할 때면 서둘러 생각 모드로 도입한다. 원석을 의미로 가공하기 위해 쉴 틈 없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한다. 쉽게 해결되지 않을 때 책을 읽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한다. 결론을 내지 못해 원석을 포기할 때도 있지만 노력 끝에 유레카를 얻을 때면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아마 그 희열로 계속해서 의미를 찾는 걸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새로운 경험이 원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것을 탐구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몰톡을 시도하고,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낯선 분야를 디깅 한다. 마지막으로 원석에서 뿌리내린 의미가 휘발되지 않게 글로써 의미를 남긴다.
사실 생각, 탐구, 글 쓰기를 내 재능이라 할 수 있는지 의심의 여지가 있다. 우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지 않은가. 그래도 (다행히) 내 주변 사람들은 나만큼 이 세 가지에 열정적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나에게 자연스러운 이 세 가지가 어떤 쓸모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의미의 원석이 스쳐간다. 바로 쓸모는 사용해야 생긴다는 것. 지금 내가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그 결심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세상에 내 의미를 전달하면서 내 존재를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스물여섯 먹고 할 줄 아는 건?
앞으로 지금까지 원석에서 찾아낸 의미를 써보려 한다. 새롭게 쓰는 글도 있을 거고, 이미 있던 것을 다듬은 글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끝맺지 못한 원석을 다시 끄집어내어 의미를 완성하고 싶기도 하다. 한 마디로 스물여섯까지 살면서 모아 온 의미를 정리해서 의미 모음집을 완성하려는 시도이다.
올해 생일을 기점으로 만 스물일곱이 되면 이십 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변화하게 된다. 늘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무언가 매듭을 지을 때면 마음 한편이 섭섭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할 때가 다가오면 후련함보다 매일 걷던 하굣길이 그렇게 애틋했다. 여전히 2024년 마지막 날과 동일하게 스물여섯이지만 마지막으로 누리는 이십 대 중반이라고 생각하니 남은 하루하루가 애틋하다. 매 화요일마다 그런 애틋함을 담은 글을 올려 보려 한다. 새롭게 펼쳐질 스물일곱을 기다리며, 스물여섯과 아쉬움보다 아름다운 안녕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