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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하숙집 고양이
Nov 20. 2024
겁 많은 고양이, 말하다
불안해도 괜찮아.
어때 큰 고양이들 세상 살만해?
나 누구냐고. 나 회색 줄무늬 고양이 제리야.
반갑다고. 뭐가 반가워. 쳇
오늘 난 내 삶에 대해 얘기하러 나왔어.
짧게 할 거야. 왜냐고? 난 낮에 많이 자거든.
지금 자야 할 시간 쪼개서 큰 고양이들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
영광으로 생각하고 잘 따라오라 옹.
난 요즘 털갈이 중이라 짜증 나 죽겠어.
이게 풀풀 날아서 자꾸 눈에 들어가거든.
그래서 발로 착착 긁는데도 잘 안 나와. 늘 눈 옆에 상처가 나곤 해.
뭐 털이 빠져야 따뜻한 털이 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내가 앉은자리마다 털을 남기고 떠나니까
집사들은 좀 싫어하는 것 같아. 쳇
내가 요즘 푹 빠진 놀이가 있거든. 팽이놀이인데 이게 중독성이 엄청나.
원래는 내가 팽이를 따라 뛰어야 하거든. 다들 알겠지만 이건 식빵자세로 앉아서
직관해야 제 맛이거든. 집사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이걸 바닥에 쏘는데
뛰는 척 냅다 달려가서 먼저 앉아서 딱 보면 팽그르르 굴러오는 게
너무 신기해서. 자꾸 쏘아달라고 하는데
집사는 어찌 그런지 계속 날 뛰게만 할 생각으로 이리저리 걷다가 알아서
지쳐 떨어져 나가는 모양이야.
집사 체력이 약해서 금방 이 재미난 놀이가 끝나는 것이 너무 슬퍼.
며칠 전부터 생쥐 인형이 안 보이는데 통 기억이 안 나.
근데 말이야. 이건 집에 있어. 그니까 언젠가는 나오게 되어 있거든.
큰 고양이들도 뭔가 잃어버리면 미친 듯이 찾지 마. 그게 다 시간이 필요해.
결국 언젠가는 나온다고.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 대해 큰 고양이들에게 알려줄게.
난 의자를 좋아해. 작은 집사 책상 의자가 얼마나 포근하지 알아?
모를 거야. 알면 책상 의자에 앉겠지. 그리 비워둘 리 없잖아.
작은 집사 공부 안 해. 신기한데 맨날 이불 뒤집어쓰고 폰 하는데.
뭔가 일이 터진 게 분명해. 세상이 망한 건 아니겠지. 집사가 저리 두는 게 이상해.
포기한 건가?
내가 비밀하나 알려줄까?
난 진짜 겁이 많아. 그래서 잠이 들어도 귀는 열어둔다고. 언제 누가 올지 모르거든.
띵동 하잖아. 그럼 난 소파 뒤에 공간으로 숨어. 왜냐하면 띵동과 함께 낯선 고양이가 방문하거든.
가끔 띵동과 함께 아무도 안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
신기하게도 이건 이상한 냄새 가득한 물건을 문 앞에서 들고 들어와.
그리고 집사는 뭔가 신나 있어. 작은 집사들을 불러 모으지.
배신자들 지들만 먹는다니깐.
큰 고양이들 음식은 어떻게 문 앞에 온 걸까?
그리고 대문 옆에 어딘가 개가 사는 것 같아. 가끔 이 녀석 풀려서 나오는 데 세상 떠나라
짖어대는데 무서워 죽겠어. 생명의 위협을 느껴. 얘 때문에 대문밖에 나가는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중문 밖에도 조심조심 나 가거든. 가끔 남 집사 꽁무니가 길어 열려 있을 때 나가는데.
집사가 내가 거기에 나가기만 해도 고음을 내서 짜증 나서 안 나가는 거야.
절대 겁이 나서만은 아니야.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을 알려줄까?
창밖을 보는 일이야. 진짜 얼마나 재밌는지 알아. 벌레들이 창에 붙어서 막 짝짓기 하고 난리를 치는 것도
신나고 가끔 깍깍대는 새들 날아오지 그럼 나는 새소리 성대모사를 하며 그 녀석들을 불러
언젠가는 한 마리 낚이지 않을까.
오후에는 놀이터에 애들 재잘대고 저녁에는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오는 게
보이는데 얼마나 재밌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너네들 큰 고양이들 이게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 모를 거야.
인생 뭐 있어. 다 재밌게 사는 거지. 그러다 보면 저절로 알게 돼.
이 작은 것이 모여 행복이 되는 거라는 거.
큰 고양이들도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작은 재미를 찾는 삶을 살길 바라.
나 제리처럼 말이야.
혹시 지금 불안해? 미래가 불안하냐고?
우리 집사도 늘 불안하거든.
근데 그거 알아?
많이 가진 고양이가 불안하다.
가진 게 없는 고양이는 자유로워.
나처럼 많이 가진 고양이가 불안한 거야.
(내가 생쥐 인형이 몇
갠 줄 알아? 낚싯대는 한 20개쯤 되나? 그리고
나
서울에 자가 있어. 종이로 된 집 있어.)
왜냐고. 잃을 것이 많으니까 불안한 거야.
반대로 말하면 뭐다.
불안한 자가 많이 가진 자라는 거지.
그니까 가진 것에 만족하라고.
그리고 세상 태어날 때 아무것도 안 가지고 태어났지. 그때 어땠어?
안 불안했지. 거봐. 다 알고 있잖아. 죽을 때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간다는 것쯤 알고 있잖아.
나는 오늘만 사는 고양이야. 난 오늘 행복만 생각해. 오늘 밥만 생각하고 오늘 놀이에 집중하고
오늘 츄르에 올인하고 오늘 창 밖에만 집중해.
큰 고양이들 내일 불안을 오늘 끌어다 대출하지 말고
오늘에 충실하길 바라. 모두 모두 행복하라 옹.
이상 제리의 묘똥철학이었다.
고양이는 겁이 많다.
고양이는 작은 동물이기에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다.
그러기에 겁이 많은 것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부분이 짙다.
고양이는 작은 소리도 잘 듣기에 조그만 소리의 기척에도 빠르게 반응한다.
그러기에 다소
불안
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반응 속도는 고양이라는 종족을 지금껏 유지시켜 온 비결 중 하나다.
이런
불안
은 집사와의 유대관계에도 깊은 영향을 준다.
집사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집사의 부재에 불안을 심하게 느낀다면
이것은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에게서 빨리 떨어지지 않았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미와 함께
하면서 형제자매 고양이들과 어울리며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을 배우지 못한 데서
오는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3
주에서
9
주 사이에 어미를 떠난 새끼 고양이의 경우
불안의 정도가 다른 고양이에 비해 클 수 있다.
그들은
어미와 기족들로부터
불안을 낮추는 비결을 배우지 못한 채 애착관계의 결손을 경험한 것이기에
집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즉 독립적인 개체로서 나아가는 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얼마든지 사회화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겁 많고 불안한 고양이도 얼마든지 사회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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