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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관하여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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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Oct 26. 2024

끝에 관하여

제24화

얼마 전에 올해의 첫 감을 먹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자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감을 통하여 전하려는지 아주 달고 맛이 있더군요.

그렇게 감을 다 먹고 나니 끝으로 남은 건 단단한 씨앗뿐이었습니다. 과일의 끝을 증거 하는 씨앗은 그 끝이 있게 해 준 시작이었기도 합니다.



"끝"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떠올리게 할까요?

인생이라는 큰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작은 과정을 겪고 또 끝이라는 개념을 여러 번 마주합니다. 학업을 마칠 때, 일을 그만둘 때, 관계가 끝날 때, 혹은 한 해를 마무리할 때처럼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순간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어딘가 닮아있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마침 뒤에 오는 아쉬움, 섭섭함, 후련함..  이 모든 감정은 끝을 향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끝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딘가로부터 확실히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서 떠나야 한다는 뜻이고, 이러한 여정은 그저 익숙했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는 하죠.


저 역시 이러한 여정을 많이도 해왔습니다.

기존 것들과 떨어져야 할 때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은 언제나 적응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죠.

저의 경우에는 새롭게 만나게 될 것들을 먼저 생각하고 바라봅니다. 새로 만나게 될 사람들, 새로 배우게 될 것들, 새로 가보아야 하는 곳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고 바라본 뒤에서야 이전 것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합니다.

과거의 것들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과거에 사무치고 물들어서 새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거 같기에 과거를 추억하기를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과거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네요.



끝은 너무나 불확실합니다. 어떻게 끝이 날지도, 어떠한 결과를 가지고 올지도 확실치 않죠..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확실함’입니다. 어떤 끝이던 불확실함이 존재함은 항상 확실하기에... 우리는 그 확실한 불확실 속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끝은 우리가 발을 딛는 땅이 흔들리는 것 마냥 우리를 지탱하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끝을 맞이하면서도 진정한 ‘끝’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면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땅이 흔들리는 것인지 내가 흔드는 것인지조차 가끔은 헷갈릴 정도이니 말이죠.

여름이 끝나고 시작된 가을은 우리의 얼굴에서 땀을 흘리게 한 것이 미안했는지 나무의 몸에서 낙엽을 흘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지독한 은행 냄새를 맡게 한 것을 사과라도 하려는지 가을을 끝내고는 겨울을 시작해 흰 눈으로 은행이 떨어졌던 땅을 덮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끝을 통해 새로움을 맞이하며 이전의 실수를 덮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실수가 나올 수도  있겠죠.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실수와는 끝을 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실수가 따라온다고 너무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놓아주는 법'이었습니다. 앞에서 실컷 끝에 관하여 구구절절 이야기 하였지만 실상은 저 역시 끝을 두려워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동안 끝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는 것이 결국 나 자신에게 자유를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것을 놓아주는 것이 '나'에게도 '나의 과거'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끝은 우리의 인생에서 불필요해진 짐을 덜어내게 하여,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냥 더 멀리 가기 위한 중간점검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떠나보내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이죠..

이렇게 길게 주구장창 이야기하였지만 결국, 끝을 맞이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이 말하고 싶은 바입니다. 너무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에..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다.> 끝이 있음으로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할 기회를 갖으며 각 끝이 주는 아쉬움과 불안 속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찾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저도 이만 끝을 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연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곧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금 찾아뵙겠습니다. 그때에는 조금 더 좋아진 글을 여러분들께 선물하길 소망하며 감사함으로 <관하여> 연재를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하여 pt.2도 조만간 다시 시작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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