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의 삶
지난 1987년의 시간은 억겁과 같이 느껴졌다. 아니, 이후로도 고3인 1998년까지 그리고 군복무 시절 2년 2개월은 내 인생에서 매우 더디게 흘렀다. 결국 삶을 주도적으로 사느냐에 따라 느끼는 차이인 것 같다.
AM 뢔디오로 지겹게 탐구생활 방송을 듣던 1학년 겨울방학을 마치고 봄방학까지 잠깐 등교할 무렵 ‘민속의 날’이 다가왔다. 요즘의 구정(설 연휴)을 이때에는 민속의 날로 불렀는데 단 하루만 휴일이었다. 구정에 큰 집에 모여 만두를 빚고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야 하는 우리 가족에게 하루 만에 청주와 진천까지 모두 다녀오는 것은 무리였다. 엄마는 박필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곤 하루의 수업을 열외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다행히 이듬해부터 민속의 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앞니의 영구치가 유치대비 많이 커서 어긋난 바람에 가뜩이나 웃지 않는 아이는 점점 못난이가 되어간다. 그래서 더욱 무표정하다 못해 시무룩하고 의기소침해진 나는 백승희 선생님의 2학년 1반으로 배정받았다. 뭘 잘못했는지 첫날부터 호명이 된다.
“탁정호, 김두성(개명 전 내 이름...), 장혜원!”
근심하며 교탁 앞에 섰다. 선생님은 갑자기 인사하고 말을 하라고 주문하신다. 꾸벅하고 인사는 했는데 갑자기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지 어리둥절하여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반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선생님은 답답했던지 나를 뒤로 빼고 탁정호를 교탁 앞에 서게 했다. 이 아이는 인사를 꾸벅하더니 웅변학원에 다녀본 아이처럼 막힘없이 학급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노라며 연설했다. 준비된 인재였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는데 다부진 녀석이다.
반장 선거인줄도 모르고 나가서 우물쭈물 댔으니 결과도 뻔하다. 탁정호가 반장이 되었고 이어서 부반장 선출을 위한 연설도 시키길래 그의 연설을 거의 복붙하여 따라 했더니 부반장이 되었다. 키가 크고 성숙해 보이는 장혜원이도 나와 같은 부반장이 되었다. 그저 1학년 성적이 ‘수’여서 호명되고 후보로 거론됐나 보다.
리더십이 전무하고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나는 부반장 타이틀로 뭘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서서 뭔가를 하거나 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주로 반장 탁정호가 알아서 했다. 반장과 부반장에게는 밤색 이름표 외에 하트 모양의 표식이 더 붙는다. 커다랗고 노란 ‘회장’과 ‘부회장’ 배지. 반장, 부반장으로 표기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뭔가 쓸데없이 거창해 보인다. 딱히 하는 일도 없는 만큼 가끔 선생님의 꾸중을 듣는 일도 반장의 몫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학기마다 반장과 부반장을 책상으로 불러 은밀하게 참고서를 주셨다. 고관대작들에게 수고했다는 뜻으로 작게나마 보상을 하신듯하다. 반장은 뭘 받았는지는 모르나 나는 표준전과를 받았다. 겉표지에는 ‘교사용’이라고 써 있었다. 이미 집에도 동아전과가 있었으나 표준전과까지 있으니 매우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부반장 자리... 정말 꿀이었다.
정기적으로 보는 시험에서 전 과목 평균 90점 이상을 득하면 학교에서 ‘모범’ 배지가 지급된다. 부회장 표식에 명찰 그리고 누적된 모범 배지까지 패용한 표찰만 가슴에서 허리춤까지 내려온다. 오늘날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 깃발까지 들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군복 차림을 한 할아버지들의 훈장처럼 나날이 나의 왼쪽 가슴은 화려해졌다.
부회장과 모범 표찰의 위엄 때문인지 나에게 쉽게 헤드락을 거는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짝꿍인 김명화에게는 학급 2인자의 지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매일같이 싸우게 되었다. 나도 전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상대와 대등한 위치에서 호각을 다퉜다.
사소한 말싸움부터 주먹다짐까지 다양한 행태를 보였는데 한 번은 그녀가 뾰족한 연필을 쥐고 나를 가격하려 해서 손바닥으로 막았다. 연필은 손바닥에 꽂혀 피를 흘렸는데 상처는 아물어도 오른손 검지 아래 부분에 흑연 자국은 사라지지 않고 대학 시절까지 선명하게 유지됐다. 많이 옅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흔적은 남아있다.
그녀는 2인용 책상 가운데를 남북 분단선처럼 그어놓고 절대 선을 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냉전모드는 아니었다. 올림픽 정신으로 서로 지우개 따먹기를 하며 노는 시간도 있었다. 엄마는 지우개가 쉽게 닳고 잃어버리는 물건이라 생각했는지 당시로선 엄청나게 큰 500원짜리 점보 지우개를 사 주셨다. 이 지우개(크고 단단하긴 한데 더럽게 안 지워진다.) 하나로 급우들의 부러움과 동시에 시기 질투를 샀다. 하루는 명화도 내 지우개가 탐이 났는지 지우개 따먹기를 하자며 덤볐다. 그러나 결과는 거의 학살 수준으로 나의 압승이었다.
그녀는 승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은 불이 날 것처럼 이글거리다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맺혔다. 백승희 선생님은 "쟤네 또또또" 하며 내 앞으로 오셨다. 자초지종을 물으시고는 그녀에게 획득한 지우개들을 다 돌려주라고 했다. 소유한 지우개를 몽땅 책상 위로 꺼내다가 그 점보 지우개가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 선생님은 무슨 지우개가 이렇게 크냐며 그것을 집어 들어 수차례 내 머리를 내리쳤다. 그 지우개를 학용품이 아닌 지우개 따먹기와 같은 놀이 용도로 구입했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지만 꽤나 억울했다.
이래서 아무런 직책도 없고 모범 표찰도 없는 평범한 학생과는 못 놀겠다. 분수에 맞게 같은 아파트 C동에 사는 반장 탁정호와 어울려야겠다. 어느 달에는 그가 시험에서 전 과목 만점을 받았다. 그는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나를 그의 집에 초대했다. 그의 어머니는 희소식을 듣더니 감탄을 숨지기 못하며 흔쾌히 우리에게 토마토 주스를 제조해 주셨다.
1인자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우리 집도 전축과 TV 두 대 그리고 VTR을 보유했는데 이 친구네 집엔 무려 8비트 콤퓨타가 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부팅을 하곤 DIG DUG를 실행시켰다. 화면에 꽉 찬 땅을 파해치며 괴물을 제거해야 클리어되는 게임이다. 내가 조이스틱을 잡으면 몇 초 버티지 못하고 종료되는데 그 친구는 오랜 시간 죽지 않고 게임을 이어간다. 역시 반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집에 있는 VTR로는 구입 시 샘플 테잎으로 지급된 ‘미래소년 코난’ 한 편, 아빠가 시험 삼아 녹화해 본 주말 외화 ‘맥가이버’ 한 편 이렇게 두 테잎만 반복적으로 재생했다. 아직 동네에 비디오 테잎 대여점이 들어서기 전이라 동생과 내내 본 거 또 보는 측은한 상황이 지속됐다.
어느 날 동생이 안방 옷장 안에서 찾았다며 비디오 테잎 두 개를 들고와 슬롯에 넣으려 했다. 시야 밖에 계시던 엄마가 어디선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와 안된다고 가로막는다. 이 테잎을 VTR에 넣으면 기계가 망가진다고 겁을 준다.
‘코난’하고 외관상 전혀 다를 바 없는 테잎인데 고장이 날 수도 있구나’ 하고 잊고 지냈는데 부모님이 나와 동생만 집에 두고 외출한 날, 동생이 다시 그 테잎을 어디선가 찾아들고 온다. 쬐그만 녀석이 새로운 작품에 꽤 목말랐었나 보다. 나는 겁이 나서 그 테잎들을 VTR에 삽입하지 못하고 있는데 녀석은 과감하게 투입한다.
VTR은 재생 후 문제없이 녹색불이 들어오고 처음 보는 영화가 시작된다. 금발의 서양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형제는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 숨죽여 보는데 실내가 이상하리만치 덥게 느껴졌다. 다 큰 어른들이 기괴한 자세를 취하는 걸 보고 있자니 괜한 죄책감이 든다. 문제의 테잎을 VTR에 넣은 사실이 발각되면 엄마에게 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동생에게 원위치시키게 했다. 이날 일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더 큰 재앙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 판도라의 상자를 현명하게 수습한 것 같다.
엄마는 종종 이렇게 어린 형제들에게 집을 맡기고 외출을 하셨는데 딱히 간식거리를 사두지는 않아서 입이 심심했던 우리는 주방을 뒤져 살짝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내는 프리마를 퍼먹거나 다시다를 사이좋게 한 입씩 털어 넣곤 했다. 쇠고기 다시다는 라면 스프와 같이 짭짤하고 감칠맛이 뛰어났는데, 그 맛을 고향의 맛이라고 하나보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나는 화려한 개막식이고 뭐고 크게 관심이 없었다. 종목마다 룰을 모르니 보는 재미가 있을 리가 없다. 여자 육상 달리기에 출전한 소련, 서독과 같은 유럽 선수들의 다리가 왜 이렇게 기냐며 징그럽다던 외할머니의 감상평이 기억에 남는다. 그 선수들은 우리 아빠보다도 키가 커 보였는데 정말 방아깨비 뒷다리마냥 주체할 수 없는 긴 하체로 붉은 트랙을 돌던 모습이 인상 깊다.
학교에서는 좀 더 애슬릿한 급우들이 밴 존슨이 빠르다 아니다 칼 루이스가 더 빠르다며 입씨름이 한창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행사인데 나는 ‘손에 손잡고’ 노래만 흥얼대며 매일같이 엄마에게 한국이 몇 위인지 정도만 물었다. 개최국 어드밴티지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이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는 ‘우리나라 왜 이렇게 못 해. 나라 망했네’ 하며 경기를 감상하곤 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추석 연휴가 왔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설렜지만 다른 모든 과정은 매년 반복되었기에 그다지 특별할 일은 잘 없다. 연휴 첫날 청주 큰 집 밖에서 사촌들과 어울려 놀며 한껏 흥이 나 있을 때 마침 큰 어머니가 옆을 지나셨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대뜸 나는 그분께 “야이 할망구야!” 하며 외쳤다. 몇 년 전 잠깐 청주 큰 집에 내가 맡겨졌던 적이 있는데 할머니뻘인 큰 어머니와 그동안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해서 농담조로 던졌지만 실언을 해 버렸다. 현장에 함께 있던 두 살 많은 사촌형이 “야아~ 왜 그래” 했을 정도니 저지르고 나서야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느꼈다.
집으로 들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가 다르다. 큰 집의 막내딸인 사촌누나(나보다 열 살 많으심)가 나무로 된 방 빗자루를 들고 와서 화난 눈으로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냐며 묻는다. 처음 보는 누나의 노여움으로 가득한 모습에 그만 눈물을 터뜨렸다. 그렇게 마무리되었으면 좋았을 걸 엄마가 나섰다. 애가 실수할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따지냐며 처음엔 좋게 타이르던 말투가 점점 격해져 언성이 높아졌다.
이어서 습관적으로 버럭 하는 삼촌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아빠가 못 참고 엄마와 사촌 누나의 머리끄덩이를 양손으로 잡고 나온다. 수습이 안된다. 화 한 번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큰 아버지까지 사촌 누나의 뺨을 두 대 후려치고 나서야 상황은 종료됐다.
매년 잔잔하고 루틴하게 돌아가던 명절이 나로 인해 크게 들썩였다. 9살이란 나이 뒤에 숨어 표현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지만 큰 어머니께 무례를 범해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다음날 진천으로 성묘를 다녀와서는 인근 아저씨댁에서 식사를 하며 동네에 머물렀다. 믿기지 않겠지만 초가집이 주를 이루던 당시의 진천에도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타고 온 승용차들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들어 차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삼촌들은 의례히 차를 잠그지 않은 채 주차를 해 뒀는데 나와 또래의 사촌들은 그런 차 안에서 노닥거리는 걸 즐겼다. 이 날도 하늘색 현대 프레스토 안에서 창문을 연 채 쉬고 있는데 시골 아이들이 차로 다가와 여기저기 둘러본다.
우리끼리 쉬고 있는 공간에 그 아이들이 와서 이 차가 빠르네 저 차가 더 빠르네 하고 있으니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는데 다소 거슬렸다. 아까 그 두 살 많은 사촌 형에게 쟤네들 좀 어떻게 해보라고 얘기하니 “냅 둬~” 하며 무심하게 레버를 돌리며 창문(당시의 전동 윈도우 스위치는 매우 희귀한 옵션이다.)을 닫으라고 한다.
그 시골 아이들 무리에서 가장 큰 남자가 갑작스럽게 올라가고 있는 창에 손을 댄다. 무슨 농기구에 사고를 당했는지 손가락 하나가 없는 자다. 우리의 불쾌함을 느꼈는지 유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고 시비를 건다. 무리 중 가장 어린애를 선동하여 욕설을 퍼붓기까지 한다.
‘이래도 참을 거야?’라는 식으로 나는 사촌형의 분노를 부추겼다. 기어이 사촌 형이 차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손가락 하나가 없는 자와 붙었는데 나이에 비해 키가 훤칠했던 사촌 형이 쉽게 이길 줄 알았지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친척 어른들이 나타나서야 정리가 되었다.
KT 주가처럼 큰 파도 없이 평온하기만 했던 명절이 나로 인해 두 번 튀었다. 이후 나는 더욱 말을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어른들이 계신 자리에서는 과묵한 아이로 언행을 조심하니 점잖다는 평도 종종 들었다.
또래의 사촌 중에서는 두 살 많은 사촌형에 이어 내가 둘째다. 이 날도 1인자의 뒤에 숨어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은 2인자의 위치에 잠시 있어봤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장남이기에 그 왕관의 무거움을 잘 안다. 2인자의 삶도 썩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