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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정묘년

궁민학생

by 김동의

어느 날 A5 사이즈의 통지서를 받았다. 알록달록한 유치원 가방과 깜찍한 모자는 이제 안녕. 어엿한 의무교육 대상자가 되었다. 인천직할시 북구 십정동 소재 신촌국민학교. 훗날 많은 지인들로부터 서울의 그 ‘신촌’ 이냐 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오해를 사기 쉬운 이름이다.


입학을 앞두고 첫째 작은어머니로부터 흰색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받았다. 타이거, 아티스, 월드컵과는 다른 어른스러움과 단정한 벨크로 타입의 신발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검은색 사각 아가방 백팩을 선물해 주셨다. 아가방이란 회사명의 포인트가 ‘아가’인지 ‘가방’인지 혼란스러웠지만 작은 체구인 내가 짊어지기엔 다소 무거운 감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선물 받은 가방 외에도 푸른색 사선 스트라잎 패턴의 ‘탁틴가방’과 무광 초록빛 죠다쉬 신발가방을 사줬다. 탁틴가방은 각이 잡혀있는 독특한 외형을 갖췄음에도 중량이 매우 가벼웠다. 쓰리세븐 가방을 메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내 가방끈엔 쿠션이 달려 어깨에 무리가 덜 갔다. 통통한 가방이 당시에는 혁신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요즘은 일본의 소학생들이 죄다 이런 스타일의 백팩을 이용하고 있다.


3월 초 엄마와 신촌국민학교의 입학식에 참여했다. 새롭고 설레는 마음 대비 그렇지 못한 기온으로 운동장에 열 맞춰 서서 의식을 치르는 것이 참 힘겨웠다. 야외 행사를 마치고 배정받은 1학년 4반 교실에 들어갔다. 따로 공지가 없었는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실내화 없이 양말만 신은 채 들어와 박필재 선생님과 첫인사를 나눴다. 바깥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차디찬 암회색의 테라조 돌바닥까지 밟으니 손발이 너무도 시리다. 일제 치하의 뤼순감옥의 바닥도 이렇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 109호에 사는 임우춘이도 우리 반, 인접한 다른 아파트 상가에서 슈퍼마케트를 운영하는 집의 딸인 최혜진이는 내 짝이 되어 삼분단 네 번째 줄에 함께 앉았다. 우춘이네 부모님은 이 작은 아파트에서 조부모와 큰아들, 딸 그리고 막내 우춘이와 나름 대가족을 형성하며 살고 있었다.


여전히 호구 재질인 나는 1987년 한 해 동안 거의 우춘이에게 헤드락을 걸린 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심 가득한 부모님과 점잖은 형, 누나들과는 달리 이 친구는 매우 짓궂었다. 그는 어른들이 목격했다면 절대 용납되지 않을 행동만 골라서 했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나까지 그 행위에 동참할 것을 강요했다.


5m가량의 옹벽을 아슬아슬하게 내려와 1호선 철로에 다가간다든지,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버젓이 계신데 딸기를 잽싸게 집어 도망친다거나 아파트 옥상에서 위험하게 뛰노는 것은 물론 잠자리와 사마귀와 같은 곤충을 잡아 은박지로 봉한 후 라이터로 가열해 먹어보라고 강권하는 식으로 나의 삶을 힘들게 하였다.


어느 날 그는 내게 콘크리트 담장 너머 옆 단지 아파트에 돌을 던지라고 했다. 이유는 없다.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조여진 헤드락의 완력은 더 강해질 것이기에 시키는 대로 돌을 주워 던졌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돌을 던지다 보니 어느덧 분비된 아드레날린을 주체하지 못하겠다. 주변의 돌이란 돌은 다 주워 던지다가 바닥에서 박리된 넓적하고 커다란 시멘트 덩이를 양손으로 간신히 주워 들곤 힘껏 던져봤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린 죽는다던데, 너무 무거웠던 시멘트 덩어리는 의도치 않게 담벼락 위가 아닌 우춘이의 뒤통수로 정확하게 날아갔다. 이 무렵으로 기억한다. 링컨도 해방시키지 못한 우춘이로부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문교부에서 제작하고 지급한 교과서는 딱 세 권으로 기억한다.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새 교과서의 수량이 부족한지 담임 선생님은 즐거운 생활 중고 교과서를 수령해 갈 사람을 거수하라고 한다. 일부 친구들이 손을 들길래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도 이해도 하지 못한 나는 얼결에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착한 친구들이라며 중고 책을 쥐어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청력은 정상인데 관공서, 은행, 병원 등의 장소에 가면 유난히 사람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상대가 묻는 말에 되묻는 건 기본이고 도에 지나치게 어리바리하여 엉뚱한 행동을 곧잘 한다. 이러한 연유로 등교 첫날 중고 교과서를 들고 집에 오게 됐다. 일종의 병적 증상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방법이 있다면 꼭 고쳐보고 싶다.


접착제의 차이인지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과는 달리 새 교과서 만의 독특한 에 코를 대본다. 엠보 처리된 겉표지를 넘기니 땅콩 껍질을 반만 깐 것 같은 대머리 아저씨가 대통령이라며 큰 사진으로 인쇄되어 있다. 엄마는 매 학기 정성스럽게 투명한 PVC 비닐로 교과서들을 포장해 주셨다. 일부 아이들은 지난 달력 뒷면으로 교과서를 감싼 후 매직으로 ‘바른생활 1-1’을 표기해서 오는가 하면 아무 포장도 없이 본질에 충실한 급우들도 있었다.


다섯 살에 한글을 읽을 줄 알았기에 1학년의 시험은 정말 껌이었다. 받아쓰기도 잘했고 나머지 과목은 동아에서 출판한 월간 학습지인 ‘이달학습’만 파면 게임은 끝이다. 과밀 학급으로 오전 반과 오후 반으로 나뉘긴 했지만 하루 서너 시간의 스케줄은 유치원의 일과보다 일찍 마쳐서 삶의 질은 소폭 상승했다. 방과 후 주산 학원이나 태권도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내게 그런 사교육 과정이 없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학교에서는 매일 정문에서 지각생은 물론 이름표를 패용하지 않은 학생을 잡아내 얼차려를 주었다. 1학년의 이름표는 밤색, 2학년은 빨간색 그 위로는 녹색, 파란색 등 학년별로 색이 구분된다. 그러나 이름표도 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입해야 하는 관계로 학교 측은 학부모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올해 밤색 이름표를 착용한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같은 색 이름표를 패용할 수 있게 학년 연동을 해줬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2학년 용 빨간색 명찰을 주웠는데 그날부터 밤색은 떼어놓고 빨간색 명찰에 내 이름을 넣어 패용하고 다녔다. 적어도 이름 모를 동급생들에게 치이지 않았으면 하는 방어기제가 사용된듯한데 누가 봐도 내 왜소한 체구는 의심할 나위 없는 1학년이었다.


결핵 예방을 위해 학교에서 접종을 하는 날이 있었다. 전부터 잔병치레로 병원의 주사쯤은 자신 있었는데 이건 달랐다. 주삿바늘 자체의 통증뿐만 아니라 접종 부위가 왕릉처럼 부풀어 올라 꽤 오랜 기간 툭하면 진물이 나고 딱지가 졌다. 아직도 왼쪽 삼두근 부위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아빠가 사 온 RC카를 조작해 보며. 붉은 불주사 자국이 선명하다.


부모님이 주안에서 간석동으로 이사를 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인근 원스톱 복합 쇼핑몰인 희망백화점에 갔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빠는 이렇게 외식을 하거나 외조부모께 미도파 백화점에서 뭔가를 선물로 구입해주시곤 했다. 백화점 1층의 실외 공간에 형형색색의 자전거가 여러 대 전시되어 있다. 내가 딱히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는데 외할아버지께서 흔쾌히 6만 5천 원의 거금을 지급하셨다. 옐로우 키칼라의 보조바퀴 달린 두 발 자전거로 선경 스마트에서 제조했다. 2년여간 열심히 타고 동생에게 물려줬는데 그때 새로 산 내 자전거와 함께 한날한시에 도난당했다. 그 뒤로 부모님은 더 이상 우리 집에 자전거를 들이지 않았다.


가을 운동회를 앞둔 때였다. 여느 때와 같이 오후반 일정으로 등교를 했는데 학교 운동장이 시끌벅적하다. 전교생이 소리 높여 응원을 하고 학년마다 예정된 율동 연습을 하느라 분주하다. ‘무슨 일이지?’ 하며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뿌연 마사토 분진 속에서 박필재 선생님이 튀어나와 흰 면장갑을 낀 손으로 나의 아구통을 사정없이 갈긴다. 아마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전, 오후반 구분 없이 연습하기로 한 주인데 내가 통신문을 깜빡하고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았나 보다. 가방도 제대로 벗어두지 못하고 대열에 합류해 한참을 고생했다.


운동회 시즌이 지나자 학교 운동장 한편에 거대한 천막이 설치되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차례로 천막 안으로 들어섰는데 실내는 매우 어두웠고 전교생이 모여 앉아있었다. 암흑을 뚫고 한 줄기 빔이 솟아 나오더니 천막의 한쪽 벽면은 스크린이 되었고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화면에서는 황토색 군복을 입은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이 한 농가를 침입해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는 아이의 입을 찢고 온 식솔들을 돌로 무참히 내리쳐 목숨을 앗아갔다. 영상의 말미에는 국군들이 그 침입자들을 쫓아 저격하는데 무장괴한이 한 명씩 사살될 때마다 6학년 형과 누나들부터 기립하여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반공 교육은 받아왔으나 이 영상은 충격 그 잡채였다. 북한은 곧 공산당이며 공산당은 곧 극도의 공포 대상으로 이어졌다. 2022년에도 멸공을 외치는 모 대기업 회장님도 어린 시절 이 영상을 감명 깊게 시청했나 보다.


피 묻은 돌의 잔상이 흐릿해질 무렵 우리 집에도 VTR이 생겼다. 일본과 기술제휴를 한 전자회사(지금은 거의 사라진 아남전자)에 다니는 아빠 덕분에 비교적 일찍 고출력 써라운드 입체음향의 전축을 갖추고 두 대 이상의 TV를 집에 두는 등 남부럽지 않게 전자기기들을 보유했다. VTR은 ‘금성’ 제품이었는데 아버지께서 그냥 구입하셨는지 경쟁사 제품 분석용 샘플을 가져오신 것인지 모르지만 샘플 테잎으로 딸려 들어온 ‘미래소년 코난’ 시리즈의 한 편을 수십 번 돌려보며 미래를 꿈꿔 나갔다.


해외여행이 거의 없을 무렵에도 아빠는 일본, 대만, 필리핀 등 해외 출장이 잦았다. 어린 마음에 아빠의 해외 출장은 곧 선물 받을 기회로 여겼다. 당시 남대문 시장 리어카에서 개당 천 원에 팔던 귀한 캐번디시 버네너를 필리핀에서 박스째 가져오셨다. (농산물을 어떻게 반입을 하셨을까... 모르겠다)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메이드 인 죄팬 장난감들도 출장 기회마다 조금씩 가져오셨다.

해외 선진 문물을 접하며


작년 키메라에 이어 또 한 여가수의 곡에 매료되었다. ‘개똥벌레’라는 곡인데 엄마가 어디선가 이 곡이 녹음된 복제 테잎을 사다 주셨다. 잠에 들기 전에 테잎을 전축에 넣고 수차례 되감기 하며 개똥벌레를 들었다.


이제 여섯 살 된 우리 아들 앞에서 집안일을 하며 이 곡을 흥얼거렸다.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무슨 노래냐고 묻는다. 아이의 곡에 대한 호기심은 곧 호감의 표시다. 개똥벌레는 아이들의 취향을 저격한 곡이 분명하다. 시대를 불문하고 명곡은 빛을 발한다.


겨울에 접어들자 우리 집으로 할머니께서 또 방문하셨다. 함께 뉴스를 보는데 우리나라의 국적기가 폭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마유미라는 여자가 체포된 사진은 TV뿐만 아니라 모든 신문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할머니는 나직이 말씀하셨다.


“여자는 불쌍하다...”


학교 친구들은 북한에서 혹 달린 괴물이 마유미에게 시켜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한다. 북한이란 단어만 들어도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엄마는 교과서를 장식한 땅콩 대가리 아저씨 말고 다른 아저씨를 대통령으로 뽑을 차례라고 한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그리고 기호는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자유분방하게 뻗친 머리를 하고 화보를 찍은 백기완 어르신도 벽보를 통해 자주 봤다.


투표권이 없던 나는 개중에서 가장 인물이 낫다고 판단한 노태우를 응원했다. 개표 방송을 보며 운동회 때와 같이 연신 노태우를 외쳤다. 사실여부는 확인이 어려우나 아빠와 엄마는 김영삼 씨를 선택했다고 전해 다소 실망스러웠다.


간절하면 이뤄진다더니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제 9시 종이 울리며 뉴스에 나오 반짝 머리는 사라지고 보통사람인 그가 나오기 시작했다. ‘보통사람’이라는 워딩에 집착을 했는지 정치인 답지 않게 정장을 벗어던지고 캐주얼한 옷을 입은 채 이름 모를 아저씨들 서너 명과 어깨동무를 한 채 걷던 장면이 인상 깊다. 그렇게 추운 겨울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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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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