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표류기
숏컷을 한 할머니 선생님이 내 담임선생님이 됐다. 그러나 몇 일 지나지 않아 갑자기 건강상의 문제로 그 담임 선생님은 일을 그만두셨다. 다른 선생님들이 교대로 우리 학급까지 돌봐주며 버티다가 급하게 모셔온 분이 대학교를 갓 졸업한 조현미 선생님이다. 유치원 이후 처음 마주하는 젊은 선생님을 보니 모처럼 의욕이 샘솟아 힘차게 새학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4학년부터 어정쩡한 성적으로 반장·부반장 후보군에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전 학교에서 왼쪽 가슴을 가득 채웠던 모범 배지류의 화려한 타이틀이 사라짐과 동시에 은연중에 자리잡은 우월감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맨 앞에 앉은 김아무개로 5학년 5반을 구성하고 있다.
지난 신촌국민학교와 달리 작전국민학교는 반장·부반장의 임기가 한 학기이다. 1학기 반장은 조현빈, 2학기 반장은 육원미라는 여자아이다. 특히 2학기 남자 부반장은 급우중에서도 키가 우뚝 솟고 벌써부터 목 부분에 거뭇한 털이 보이기 시작한 남학생이 압도적으로 득표했다.
아무르 호랑이가 우리에 들어서면 알아서 배를 드러내 눕는 뱅갈호랑이처럼, 국민학교에서 ‘남자의 키’는 곧 힘이자 굳이 실전을 치르지 않아도 상위에 랭크되는 사기 능력치다. 남자아이들은 알아서 그의 앞에서 꼬리를 내렸고 간혹 거슬리는 아이들에게 그가 긴장감 하나 없이 느릿하게 따귀 한 대를 치거나 발길질을 해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마치 라이온 킹의 스카와 하이에나 추종 세력이 연상되듯, 딱히 다수와 친하게 어울리지는 않고 소수가 뭉쳐다니며 군림했다.
권력에서 한참 멀어진 나에게 1991년은 오히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친구와 교류한 시기이다. 집 앞 금보아파트 상가 2층에 있는 컴퓨터학원에도 등록해 DOS와 GW-BASIC을 배워가며 인적 네트워크는 그 어느 때보다 확장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홍콩 영화 속 '의리'의 가치에 심취하여 많은 친구들을 집에 불러들였다. 슈퍼마리오3를 비롯한 게임을 하거나 어둑해질때까지 밖에서 놀곤했다. 공부 따윈 하지 않는 것이 힙하다. 그저 삼삼오오 뭉쳐다니는 무리의 속도에 뒤쳐지지 않는데 혈안되었다.
무리를 리딩하는 김현진이란 아이는 매우 영악하고 짓궂으면서도 유머러스하여 인기가 있었다. 하루는 점심식사를 하고 그와 운동장을 배회하다가 땅에 떨어진 동전을 주웠다. 그래봐야 오백원도 안됐을텐데 그는 그 돈을 쥐어들더니 자길 따라오라고 한다. 은밀하게 교문을 빠져나갔는데 하교시간이 되기 전 학교 밖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라 유독 심장이 요동친다. 약 200m 떨어진 곳에 ‘월드 오락실’ 간판이 있다. 비좁은 입구에서 퀴퀴한 지하로 내려가 못보던 새로운 게임 앞에 섰다.
그는 “잘 봐.” 하더니 주운 동전을 넣곤 현란한 기술을 선보인다. 나도 게임이라면 빠지지 않고 유행을 좇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간 봐왔던 것들과 차원이 다르다. 국민게임 ‘스트리트 파이터II’라는 대전 액션 게임은 캐릭터의 근육부터 의상까지 섬세한 표현은 물론 동작이 매우 사실적이다. 게다가 일부 캐릭터의 손에서 발사되는 ‘장풍’의 등장은 센세이션 그 자체이다.
그 날 이후 그 게임에 빠져들었다. 엄마는 내게 꼭 필요한 참고서나 준비물을 구입할 일이 없으면 따로 용돈을 지급하지 않았다. 집안 살림은 부족하지 않았음에도 내 주머니 사정은 항상 여유롭지 않아 군것질이나 유흥에 쓸 돈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와 친구 몇은 월드 오락실 근처 삼천리 아파트 단지 안 후미진곳에 쌓여있는 플라스틱 상자에 주목했다. 그 상자는 훼미리쥬스병* 수납을 위한 전용 케이스인데 유흥비가 전무한 우리에겐 한줄기 빛과 같은 비밀 스팟이었다.
훼미리쥬스병*
썬키스트社에서 출시한 오렌지 쥬스다. 주로 1.5리터 유리병에 담아 판매했는데 나름 고급스러움이 있어 집들이나 병문안의 단골 선물이 되곤 했다. 우리 엄마는 쥬스를 다 마셔도 그 병은 버리지 않고 세척하여 식수를 담아두곤 했는데 아무리 잘 세척을 해도 그 속에 바로 담긴 보리차는 쥬스의 시큼한 뒷맛이 완전히 가시질 않았다. 실험적인 카페에서 오렌지 보리차라는 메뉴를 판매하게 된다면 딱 이런 맛일 듯하다.
일선 슈퍼마케트에다 빈 병을 팔 수 있었다. 개당 20원에서 30원 하는 소주나 맥주 공병대비 세 배 이상 쳐주는 훼미리주스병은 당시에 귀한 자원이었다.
친구 중 한 명은 망을 보고 나는 전용 상자에서 빈 쥬스병을 꺼내들어 약 2m 높이의 담벼락 아래에서 대기중인 친구에게 넘겨줬다. 병은 크고 우리들 몸은 작았으며 마땅히 병을 담을만한 도구가 없어서 품 안에 공병 서너개를 넣어 어줍은 걸음으로 인근 슈퍼마케트로 가 환전을 시도했다. 슈퍼마케트 계산대에 선 점원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내키지 않아 했다. 현금 지급이 확정될 때까지 침도 삼키지 않고 숨도 쉬지 않은 듯하다. 한동안은 그렇게 유흥비를 마련하여 월드 오락실의 수익 창출에 일조했다.
같은 아파트 102동에 살며 자연스레 친해진 1학기 반장 조현빈. 거무잡잡한 피부에 매일 같이 동일한 옷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인데 미소를 지을 때 마다 반짝이는 은빛 어금니가 인상적이다. 그는 딱히 사교육을 받거나 공부를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성적이 매우 우수하다.
함께 놀면서도 그의 성적은 왜 다를까 하며 유심히 지켜봤는데 나와는 다르게 수업시간이 되면 눈빛이 바뀌며 선생님 말씀에 무섭게 집중했고 방과 후에 여러 급우들과 어울릴 때에도 그의 한 손은 책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하다못해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이라도 꼭 함께했다. 머리만큼은 천재에 가까운 아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2학기에도 여전히 무리를 이끄는 김현진이는 남들과 차별화된 행동을 선보이며 일탈에 앞장섰다. 15층의 고층 아파트 옥상에 올라 피뢰침이 설치된 구조물에 누워있는다던지 담력테스트라도 하듯 옥상 난간을 넘어 바깥쪽으로 잠시 매달렸다가 되돌아오는 짓 따위를 함께했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아랫배가 시리고 손바닥에 땀이 맺힌다.
그렇게 옥상에서 놀다가 계단으로 내려오며 그는 집집마다 벨을 누르고 철재 현관문을 발로 차며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곤 했는데, 무리 중 가장 후미에 있는 사람에게 더욱 큰 긴장과 스릴을 선사했다. 이전에는 소위 ‘벨튀’를 재미로 몇 번 했으나 애꿎은 현관문까지 걷어찬 적은 없었다. 참 괴짜 같으면서도 왠지 멋져 보이는 특유의 병맛이 매력적이다.
나는 또 다른 친구와 단 둘이 놀 적에 현진이를 흉내 내보겠다고 우리 집 아래아래에 있는 3층 벨을 누름과 동시에 현관문을 발로 차곤 잽싸게 도망을 쳤다. 현장에 있던 친구와는 아무런 언질이 없던 돌발적 행동이었던 만큼 그 아이는 몹시 당황하여 나를 따르지 않고 위쪽으로 도망치다가 3층 집주인 아저씨에게 붙잡혔다. 결국 그 친구는 모든 것을 실토했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3층 아저씨는 나를 앞에 세워두곤 “잇 노믜 쉐키!” 하는 기합과 함께 내 뺨을 풀스윙으로 후려 갈겼다. 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아저씨에게 사과를 했다. 이래서 뱁새는 황새를 따라가면 안된다고 하나보다.
김현진이가 이끄는 5반 아이들은 우리 아파트에서 야구를 즐겨했다. 그 시기에 아파트 단지 안은 지하주차장이 없고 모든 입주민의 차량은 실외에 주차되어 있던 터라 담당 경비아저씨들에게 우리의 존재는 그분들의 워라벨을 무너뜨리는 불청객이었다. 알루미늄 배트에 테니스 공이 태앵~하고 맞는 소리가 나면 여지없이 경비아저씨가 나타나 우리를 제지한다. 그냥 그렇게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다른 놀이를 하면 될 것을... 일탈을 이끄는 김현진이는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경비! 경비야!” 하며 우리를 제지했던 경비아저씨를 조롱하며 도발한다. 그때까지는 아저씨에게도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짐짓 노여운 얼굴로 우리를 쫓아오다가 말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경비아저씨는 급기야 스쿠터를 타고 달려오신다. 김현진이는 이에 내 손에 들려있던 BB탄 총을 가져가 아저씨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작고 매서운 플라스틱 구슬은 정확히 그 분을 가격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관리사무소측은 더 이상 아이들 장난으로 치부할 수 만은 없었다. 무전기를 지닌 채 다른 동 경비아저씨들까지 합세하여 우리를 생포하려 들었다. 마침 반장인 조현빈이가 붙잡혔고 하필 그때 그가 내 BB탄 총을 잠시 맡아 들고 있었다. 그는 즉시 총기를 압수당하고 경비실로 끌려가 취조를 당할 일만 남았다. 그를 생포하는데 성공한 경비아저씨는 그를 세워두고 의자에 앉으려다 등받이와 쿠션 사이의 작은 공간에 그분의 다리 한 쪽을 잘못 넣었다. 그 바람에 다시 고쳐 앉느라 어수선해진 틈을 이용해 반장은 탈출에 성공했다.
무리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학교쪽으로 피해있었는데 마침 탈출한 반장이 어떻게 알곤 그쪽으로 왔다. 그의 신변을 걱정했던 나는 한편으론 안도하면서도 그에 손에 있었어야 할 내 총이 보이지 않아 “저기... 내 총은?”하고 물었다.
억울하면서도 조금은 겁에 질린듯한 반장은 이윽고 눈물을 보이며 총을 살필 겨를 없이 자신도 간신히 탈출했음을 호소했다. 그리곤 '앞으로 너희들과 놀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곤 집으로 돌아갔다. 그와 나는 약 28년간 친분을 유지했는데 그렇게 눈물을 보이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다.
빼앗긴 내 총은 완구임에도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 김현진이와 무리들은 별 수없이 투항함으로써 총을 돌려받기로 했다. 경비실을 찾아가자 총에 맞았던 경비아저씨는 애미애비도 없냐며 김현진이를 마구 패기 시작했다. 분이 풀릴때까지 맞던 그 역시 엉엉울며 집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내 총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우리의 카리스마 넘쳤던 리더는 그렇게 무너졌다.
‘All 수’를 자랑하던 나의 성적표는 이제 ‘우’가 더 많아졌다. 학부모 상담을 간 엄마에게 담임선생님은 ‘정말 산만하다’는 말로 나에 대한 평을 했다. 젊은 선생님이 참 예리했다. 김영란법이 없던 시절이라 엄마는 아빠가 해외출장 기회로 들여온 선진 문물로 담임선생님께 감사를 표했는데 이 분은 자신은 노조 소속임을 밝히며 한사코 거부했다고 한다.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추천해주기까지 한 독특한 일도 있다. 오로지 ‘딴 짓말고 공부해라’로 일관했던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담임 선생님은 "마이키 이야기"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나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이 영화를 빌려 수십 번 감상했다. 감수성이 예민해질 시기에 이만큼 유익하고 흥미로운 성교육 자료는 드물 것이다. 내 아들도 조금 더 성장하면 함께 보고싶은 영화이다.
12살 5학년의 친구들은 이 무렵부터 이성에 대한 눈을 뜨거나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인생 첫 짝사랑을 뒀는데 그 대상은 바로 2학기 반장인 육원미다. 쉬크한 단발 생머리에 도도한 느낌의 그녀는 마침 우리 앞 동인 103동에 거주했다. 우연히 등하굣길에 그녀를 마주치면 아무런 대화나 인사가 없었음에도 마냥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탑클라쓰의 성적을 내던 그녀는 학업 성취도도 어정쩡하고 키도 작은 나에게 눈길을 줄 리가 없다. 일부러 유치한 장난을 걸며 구애를 표하는 것 외에 다가가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웠던 나는 멀찌감치 서서 바라만 봤다. 엄마가 모처럼 생일파티를 열어준다며 친구들을 초대하게 해서 어울리던 무리는 물론 그녀를 초대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하루는 친한 친구에게 부탁하여 그녀의 의중을 물었다. 그녀는 나에 대해 '좋지도 싫지도 않다.'라고 담담하게 표현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던 나였어도 그녀의 눈에 드는 사람은 내가 아닌 비공식 리더 김현진임을 오랜 치근덕질 끝에 알 수 있었다. 오기로 포기하지 않고 들이댔던 결과는 참 초라했고 부끄러움만이 뇌리에 깊게 남음을 깨닫게 되었다.
돌아보면 내 인생이 늘 그랬다. 잘 보이고자 하는 이는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제발 아니기만을 바랐던 이성은 나에게 호감 표시를 한다. 인생을 통틀어 극히 드물었지만 이성이 나를 먼저 좋다고 한 적이 있는데 모든 상대가 그러했다. 그런 친구들에게 어필하는 포인트가 내게 있나보다.
받는 이에게 있어 누군가로부터의 호감 표시는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나에게 마음을 보인 여학생 E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보다 리플리증후군과 같은 면모를 보여서다. 그녀에게 어떤 결핍이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학기초부터 거짓말을 해댔다. 그것도 선생님께.
초기 할머니 담임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우리 반 아이들을 잠시 맡은 한 여선생님은 반장선거 후보를 추려내기가 귀찮았는지 4학년 때 공부 잘했던 사람 거수하라고 하신다. 그 때 그녀도 번쩍 손을 들었는데 그 선생님께서 어떤 서류뭉치를 들춰보며 말씀하신다.
“넌 잘했다는 애가 성적에 별의 별게 다 있네?”
그렇게 그녀는 후보군에서 광탈했다.
그녀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됐다. 읽지 않은 책도 읽어봤다는 둥 외국에 살다 왔다는 둥 도무지 무슨 말을 신뢰해야 할 지 종잡을 수 없었다. 낙제에 가까웠던 그녀의 산수 점수를 우연히 알고 나서는 더욱 멀리하고 싶어 졌다. 국민학생 시절엔 외모 외에도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예쁘고 섹시하게 느껴졌다. 육원미를 짝사랑하며 맛본 쓴맛을 계기로 난 특출난 재주도 없는 만큼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며 연말부터 다짐하게 됐다.
아들에게 한번쯤은 호감가는 이성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꼭 정답은 아니지만 이러이러한 표현법이 있다 정도로. 그리고 집착하지 말고 상대를 좋아하는 만큼 존중하며 한 걸음 떨어져서 관망하는 태도가 멋진 모습이란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서툰 시행착오를 겪으며 체득하게끔 그냥 냅둬야 하나. 어떤 방법이 좋을 지 잘 모르겠다.
우리 집의 TV에서는 AFKN(2번), KBS2(7번), KBS1(9번), MBC(11번), EBS(13번)만 시청이 가능했다.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 보니 sbs 서울방송(6번)도 나오기 시작했다. 타 방송국 대비 화질도 떨어지고 콘텐츠도 엉성하게 느껴졌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만큼은 이곳이 압도적이었다. 특히 KBS2의 가요톱텐이나 KBS1 가요무대는 다소 격식이 있다고 느껴졌지만 sbs 인기가요는 톡톡튀는 VJ의 등장으로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시절 TV는 집에 있을 때면 매일 접하는 생필품과 같아 그것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집에는 그렇게 거실 한 편을 차지하는 TV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중파를 보지 않게 된 것이 언제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내겐 유튭이 레거시 미디어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5.25인치의 DOS 플로피 디스켓에서 SSD에 설치한 Windows 11까지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에 새삼 감탄하고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품은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나는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