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을미년

모난 돌

by 김동의

저녁 6시만 되어도 도이칠란드의 거리 상점은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일몰 후에는 대형 쇼핑몰이나 바를 제외하고는 불이 켜진 건물이 드물어 웬만한 곳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뒤덮였다. 이런 모습에 이곳 노동자들은 퇴근 후 재미없어서 어떻게 사나 했는데 며칠간 지내보니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저녁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야근이 직장 생활의 미덕이고, 포괄임금이라는 굴레에 갇혀 저녁 있는 삶을 누리려면 파렴치한이 되어야만 하는 우리나라의 흔한 일터를 떠올리자니 무척 대비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헌법에도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회사로 출입하는 순간 다른 체제에 발을 들인 것만 같다. 오로지 상위 직급에 위치한 사람의 뜻이 정도(正道)이고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처럼 여겨지며 이의를 가진 순간 건전한 토론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세상처럼 모난 돌 취급받기 십상이다. 학창 시절에도 어른 말씀에 ‘예~’ 하는 것 말고는 배워본 적이 없으니 토론 비슷한 것도 시도할 생각을 않는 게 일반적이다.


주말 당직 순번에 관리자로 분류된 책임연구원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연구원 급까지 포함되기 시작했다. 책임급끼리 그 순서가 너무 빨리 돌아서 불만이 있었던 것인지 파트 내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그렇게 운영됐다. 그렇다고 연구원 전원을 명단에 넣어 기계적으로 순서를 정하거나 예전처럼 휴일 수당을 미지급하는 야만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치 게임하듯 불편한 말들이 나오기 전에 주말 당직 특근 인원을 조사하는 순간 참여 의사를 밝힐 뿐이었다.


파트장은 종종 흡연 휴게실로 나를 불러 티타임을 가졌다. 주로 내가 더 이상 하위 직급이 아니고 실무를 왕성하게 할 중간 직급으로서 더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언으로 포장된 설교를 많이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주말 당직에 자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다고 하며 한 번이라도 좋으니 주말에 일하는 광경을 보여달라고 했다. 대체 무엇이 좋냐고 반문했더니 야근이나 주말 당직에 모습을 보여야 회사 일에 대한 열정을 입증할 수 있고 주말에 일하는 것이 현장 기술직들에게도 목격되어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고 답했다. 소신 있는 정시퇴근주의자는 무척이나 뻣뻣한 자세로 백 년도 안 되는 인생 전전긍긍 남의 눈치나 보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더니 이후로 같은 요청이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D 연구원과 거의 매일 티타임을 가졌다. 다른 친분 있는 연구원들이나 같은 사무실에서 언제나 아무 말없이 외롭게 일하고 있는 계약직 서무도 종종 함께하기도 했는데 여건이 안 되면 둘 만이라도 사내 카페에 가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자칭 D의 사수였던 S 연구원은 그렇게 자리를 비우는 D 연구원의 모습에 못마땅했나 보다. 단순히 D에게 주의를 주고자 했는지 나와 어울리는 것을 막고자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자꾸 자리를 이석해서 사내 카페를 이용하면 징계가 내려질 수 있다. 그리고 함께 간 계약직 서무는 계약 해지를 당할 수도 있으니 자제하라’는 말을 전했다.


나름 선별된 인재들이 몰려있는 이곳에서 일을 펑크 내가며 노닥거릴 정도로 어리석거나 타인의 도움을 받을 때까지 방치할 만큼 불성실한 이는 나는 본 적이 없었다. 티타임을 하다가도 급한 연락이 오면 주문한 커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대로 뛰어가 대응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내 시설을 이용하는데 징계가 웬 말인가 싶었지만 괜히 우리와 어울려 차 한잔 마셨다고 계약 해지가 언급되는 이 상황이 서무에게 참 면목 없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의 팀장이나 파트장은 S 연구원에게 그러한 지시를 한 적이 없고 징계나 계약 해지를 운운한 바 없다며 펄쩍 뛰었다.




뉴스에서는 온통 중동에 있는 낙타 녀석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겼다며 난리 법석이다. 회사에서도 수차례 ‘중동호흡기증후군’ 이란 타이틀로 손을 잘 소독하고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하자는 메일을 보내왔다. 사무실 곳곳에 에탄올 스프레이가 비치되었는데 불안한 마음에 여러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다 보니 금방 동이 났다. 한 책임연구원은 사무실 입구까지 하이얀 마스크를 잘 쓰고 들어오다가 동료들까지 바이러스 매개체로 보는 것이 조금 멋쩍었는지 고민 끝에 벗는 모습도 보였다.


MERS라고도 불렸던 몹쓸 병은 고열과 기침을 동반하고 심하면 호흡곤란까지 오는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었다. 그래서 고려 태조 왕건이 만부교 밑에 낙타를 묶어 죽였나 싶기도 했다. 뉴스에서 그 질병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에 비해 COVID-19과 같은 영업제한이나 동선 추적이 없었던 만큼 마스크 없이 그 시기를 용케 잘 버텨냈다.




팀 내 유일한 홍일점이었던 M 연구원은 담당하는 부품을 살피러 현장에 갔다가 그 부품에 불만이 많았던 기술직 조립 팀원으로부터 불편한 소란을 겪게 됐다. 그 팀원은 좋은 말로 불만을 전해도 될 일을 부품을 내동댕이 치며 거칠게 불평을 했다. 그 모습에 그녀는 눈물을 보였고 홍일점의 그런 일화는 삽시간에 팀장 귀에 들어가 이내 면담을 갖게 되었다. 여러 업무적 고충이나 부조리가 주된 내용으로 다뤄졌을 대화가 끝날 무렵에 팀장이 이렇게 물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고 했다.


“김동의가 과거에 네 사수였지?”


M 연구원은 2014년 조직개편 이후 계속 나와는 다른 파트에 소속되었는데, 며칠 뒤 팀장은 나를 불러 M 연구원이 업무적으로 힘들어하니 현장과 접점이 덜한 일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당장 내게 파트 이동할 것을 명했다. 그녀의 고충은 알겠으나 그 파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지 갑자기 나만 쏙 빼서 파트 이동을 할 필요가 있냐는 나의 의문에 팀장은 내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닌 명령하는 자리라고 못 박았다.


팀원들의 파트나 팀 이동은 간혹 있었으나 주로 연말 인사 시즌에 스리슬쩍 묻어서 진행되는 정도였는데 이처럼 7월에 갑자기 하던 일을 내려놓고 강압적으로 파트를 옮겨 그녀가 맡던 업무를 이어서 하라는 경우는 없었다. 팀장의 어떤 말도 설득력 있지 않았지만 누구 하나 간절하게 나를 잡아 세우는 이 없으니 가는 수밖에 없었다. 파트 이동을 앞두고 파트 회의 시간에 한마디 인사는 하고 가라는 파트장의 말에 담담히 인사말을 꺼내다가 나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펑펑 눈물을 흘렸다. 살면서 눈물샘이 내 통제를 벗어난 경우는 없었는데 정말 이상하게 그땐 그랬다.


바로 옆 파트로 자리를 옮기는 것인데 거창하게 송별회식을 해주며 더욱 전례 없는 순금 열쇠와 나이키 축구화를 송별 선물로 전달받았다. 지극히 정상적인 인사이동이었다면 이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자리에 있던 PC부터 자잘한 살림을 하나하나 옆 파트의 새 자리로 옮기고 있었다. 새 파트장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웃는 낯으로 내게 다가와 원래 친한 사이인 것처럼 어깨동무를 하며


“이제 느낀 바가 있을 테니 여기선 좀 달라져야지?”


했다.


살면서 골절을 겪거나 관절과 척추를 다친 적이 없었는데 옮길 자리에 놓였던 레이저 프린터기를 혼자 운반하다가 허리를 심하게 삐끗했다. 이런 내 모습에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신경질이 훅 났다. 허리를 부여잡고 PC 설치까지 마치니 파트장이 나에게 주어질 업무에 대해 설명했다. 예상했던 M 연구원이 하던 아이템들이 아닌 전혀 다뤄보지 않은 생소한 것들로 내 업무분장표를 채웠다. 경력개발이란 그럴싸한 말로 괴롭힘을 미화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입사해서 단 한 번 문제 삼지 않았던 결재 문서의 양식이나 협력사로 배포될 회의록 등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게 만들었다. ‘여태껏 그렇게 일했어?’ 하는 비아냥도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다친 사진과 이 시기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 흰머리


회사 안에서는 마냥 힘없는 토끼처럼 포식자들에게 어지럽게 물어뜯긴 채 진흙땅에 내팽개쳐진 느낌으로 가득했다. 한동안은 D 연구원을 제외하고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다. 센터 내 유일한 동기였던 I 연구원도 오랜만에 만나서 고충을 토로해 봤다. I는 일찌감치 대의원으로 선출돼 가열차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똑 부러지는 해답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무거운 마음을 비춘 것만으로도 울화가 조금은 해소되는 듯했다. 건물 로비에서 헤어지며 I 연구원 뒤로 역광이 들이치는 바람에 그의 네이비색 노동조합 조끼에서 유독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팀장은 팀 전체 회의를 소집해서 팀원들에게 공지하듯 이야기했다. 작년 안타까운 사고 발생이 있고 나서 시간이 꽤 흘렀으니 이제 슬슬 야근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했고 17시 이후로도 할 일이 없으면 차라리 책상에 앉아서 영어 공부를 해도 좋다고 했다. 현장 기술직들은 칼같이 17시 정시 퇴근을 하는데 연구직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현장 기술직들은 정당한 쟁의행위에 참석해도 연구직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똑같은 회사 직원이고 같은 노동조합의 조합원 신분인데 연구직만 그러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았다. 단체협약에도 야근이나 휴일 근무는 강요할 수 없다고 명기되어 있는데 이들이 연구직에게만 배짱 좋게 이러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었으니까.


밟힌 지렁이가 터져 죽더라도 꿈틀대고 싶었다. 그 길로 D 연구원과 함께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아갔다. 쭈욱 조합원 신분이었으나 이렇게 용건을 가지고 이 사무실 문턱을 넘는 것이 입사 7년 만이다. 게다가 다가서면 열리는 편리한 자동문까지 설치됐음에도 왜 그리 이 문턱이 높아 보였는지 모르겠다. 사무실 안에 있던 간부 한 명을 잡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아직도 이런 팀이 있냐며 회사 측에 항의하겠다고 했다.


약효는 빠르게 나타났다. 내색은 안 했지만 팀장은 몹시 분한 듯 밀고자를 색출해 내려는 것 같았다. 후배 D에게 징계 운운했던 S 연구원은 불특정 밀고자를 지칭하며 ‘너무한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너무한 팀장이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D 연구원과 나는 든든한 우군이 생긴 것만 같았다. 노동조합 활동이라도 함으로써 소속된 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들과 맞서고 싶었다. 나는 최약체 토끼니까 그들의 연대된 힘이 꼭 필요했다. 연구소 노동조합 안에서도 뜻이 맞는 사람끼리 만들어낸 정당과 같은 조직이 몇 있었다. 그중 한 곳을 찾아 당신들의 활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소정의 절차를 거쳐 정회원이 됐다.


소문은 빠르게 팀장과 파트장의 귀에 들어갔고 그들은 ‘그래서 뭐?’ 하는 양 조소와 비아냥이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런 거(조합 활동)하면 회사 생활 맘대로 하겠다는 거 아냐?”

“노조활동도 업무 시간 외에 해야 하는 거 정도는 알고 있지?”


마침 소속된 노동조합의 임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빨간색 폴로셔츠를 유니폼으로 맞춰 입어 새벽부터 밤늦도록 소속 조직 정회원들의 외침을 복창하며 박수를 쳤다. 추위와 피로가 나를 고되게 해도 소속팀의 보직자들 생각에 이를 꽉 물고 열심히 박차를 가했다.


함께 선거운동을 하던 조직 선배 활동가는 경쟁 후보 조직을 ‘겉으로는 투쟁가 속은 야합가’로 묘사했다. 각종 비리에 연루된 의혹이 짙은 사람들이 가증스럽게도 ‘조합원의 권리 쟁취’를 외치는 것이라며 일찌감치 적대감을 심어줬다. 실제로 그렇게 믿고 선거 운동을 하며 그들을 마주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열심히 운동했고 나름 선전했으나 선거는 패배했다. 가입한 조직에서 노동조합 임원을 배출했다면 보직자들이 연구직 조합원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효용성을 보일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만남을 유지하던 그녀가 갑자기 친한 친구와 단둘이 유럽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결혼을 제안했고 그녀가 큰 결정을 앞두고 복잡했던 마음을 정리하러 여행길에 오르는 것으로 알고 흔쾌히 그 뜻에 따랐다. 11월 겨울이어서 체온이 항상 낮았던 그녀의 따뜻한 여행을 위해 김포현대프리미엄아울렛 럭키슈에뜨 매장에서 거금을 들여 코트도 하나 구입해 줬다.


유럽에서 그녀의 연락은 점점 뜸해지더니 예정된 귀국일을 앞두고서는 아예 끊겼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기기라도 한 것일까 근심 가득한 나날을 보냈는데 어느 새벽 LOL 게임 화면에 그녀의 접속 소식 알림이 떴다가 바로 사라졌다. 반가운 마음에 많이 걱정했는데 왜 이렇게 연락이 없었냐고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속삭이듯 지금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있고 이따 연락할 테니 당장 끊으라고 했다. 느낌이 싸했다.


내가 가입한 조직이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날의 오후, 연락을 주겠다는 그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답답함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그녀는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냐며 젖 먹던 힘까지 모아 마이크에 온갖 고통을 토해내듯 소리쳤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태도에 헤어짐을 원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을 바로 해왔다. <터미네이터 2>의 T-1000 모델이 총알에 뚫린 모습처럼 내 가슴에 커다랗게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아빠에게 엄마에게 아무래도 그녀와 결혼할 것 같다며 식사도 한 끼 했는데 가족 사이임에도 당시엔 너무 창피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쏟은 에너지와 시간만큼 남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이 짙어 더욱 괴로웠다.


서로 다른 종류의 허망함이 혼합돼 깊은 무력감에 빠져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있을 때 인사고과 열람을 하게 됐다. 결과는 D. 너 님은 폐급 인재로 회사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당장 이의 제기를 하고자 팀장과 면담을 잡았다.


팀장은 면담에서 업무적으로 부족하거나 개선할 부분을 피드백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런 말들은 전혀 오가지 않았다. 단지 내가 야근하는 모습이 없었고 회식에 불참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낮다고 판단해 그런 평가를 했다고 전했다. 내가 야근을 하지 않음으로써 팀에 피해를 준 일이 있냐고 물으니 나 대신 야근하는 누군가가 불가피하게 내 일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 불가피했던 일의 종류와 뜻하지 않게 내 일까지 야근 중에 해준 고마운 인물은 누구냐고 반문하니 그건 모르겠다고 답했다.


몹시도 삐딱해진 소신 있는 정시퇴근주의자는 그런 면담을 마치고 노동조합 사무실로 연락을 했다.


“그... 대의원이라는 거 한 번 해보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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