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時差)
대리급 연구원으로 진급을 하게 됐다. 팀 공조회칙에 명기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진급자들은 연초 팀 회식 때 현금을 납부해야 했고 그 금액은 책임급은 30만 원, 그 이하는 연구직, 기술직 모두 20만 원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비자발적 회식 비용 지불이었지만 나 혼자 잘나서라기보다는 팀 전체의 도움 덕에 이룬 성과라고 애써 생각해 봤다.
입사해서 주어진 업무 그대로 5년여간 맡아왔는데 소신 있는 정시퇴근주의자가 한가해 보였는지 파트 내 주요 보고서 작성을 맡던 책임연구원의 업무로 편성된 아이템을 어느 날 파트 내 누군가가 아무런 상의 없이 스리슬쩍 내 업무로 넣어놨다. 변경된 업무분장표를 보면 책임연구원은 그 아이템의 정(正)으로 나는 부(副)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사실상 그 아이템에 대한 실무는 내가 다 맡게 되었다. 이 팀에서 특정 아이템을 동시에 담당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고 업무를 정/부로 나누기도 불가능에 가까운 이 상황은 마치 바지 하나를 두 명이 동시에 입은 듯한 불쾌함이 들게 해 앞으로는 내가 그 아이템을 단독으로 맡겠다고 공언했다. 진급을 하기도 했고 까짓 거 다 해버리고 더욱 당당히 정시 퇴근을 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임기 1년 단위로 무작위 선정되는 파트 총무도 내가 맡게 됐다. 이 팀처럼 회식과 워크샵을 빙자한 야유회가 많은 조직에서 그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매월 회식비로 공제되는 3만 원으로는 잦은 회식에 대한 비용을 충당하는데 부족함이 있어 스무 명이 넘는 파트원에게 추가 거출하여 예산을 관리하고 장부를 작성하는 것은 물론 까탈스러운 이들의 구미에 맞게 회식 장소를 고르고 예약하는 일까지 문제없이 처리해야 하는 만큼 모두가 총무 맡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런 총무에 선정돼서 조금 막막했는데 한 책임연구원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개성 있게 운영해 봐~”
하신다.
그 격려에 힘입어 「회식 총무에 관한 규약」 초안을 제정하여 파트원 전체에게 메일로 발송해 그 의견을 물었다. 합리적이고 절제된 회식 문화 정착을 위한 첫 총무의 열정으로 시작한 첫 일이었고 건전한 피드백을 기대했는데, 파트장이 홋카이도 원숭이처럼 얼굴에 잔뜩 홍조를 띤 채 전체 파트 회의를 긴급하게 소집했다. 파트장은 회의석상에서 얼마간의 침묵으로 주변을 긴장하게 한 후 입을 열었다.
“여러분. 회식하기가 그래 싫습니까?!”
그렇게 나 혼자 들었어도 충분했을 질타와 유사 잔소리 및 신세 한탄은 모두가 나의 돌발 행동을 비난하길 원하는 듯 꽤 기나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몹시도 고분고분했던 팀원들로 구성되어서인지 업무시간과 개인 시간을 구분 짓는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는 듯하다. 명절에도 대뜸 전화를 걸어와서 A 아이템의 A-1 스위치는 어떤 기능인지를 묻고 답을 달라고 하거나 주말에는 나더러 알아서 처리하라는 듯 아무런 코멘트 없이 카톡으로 덩그러니 B 아이템 사진을 보내곤 했다. 허물없이 가깝고 친근해서 이러는 것 같지는 않고 무지와 무례 사이 어디쯤에 서있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여겨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 프로젝트가 시작될 예정이므로 그곳에 사용될 내 담당 아이템에 대한 개발 현황 확인차 3박 4일 일정으로 출장 점검 계획을 수립하고 보고했다. 첫 협력사 사업장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파트 선임인 한 책임연구원이 새삼스럽게도 출장 기간 내내 오전과 오후 각 한 차례씩 하루 두 차례 출장 점검 현황 보고를 파트장께 올리라고 전했다.
해외 출장자의 경우에도 한차례의 일일보고만 있었을 뿐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중요하거나 급한 사안도 아닌데 이렇게 오전과 오후를 나누어 보고하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누가 이런 것을 지시했건 3박 4일간 경기도를 시작으로 대구, 경주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겠다는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소신 있는 정시퇴근주의자로 미운털이 박혔지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그래도 팀에서 그렇게 해주길 원한다는데 그다지 반박할 만한 논거는 내게 없었고 귀찮더라도 협력사의 LAN선을 빌려 하루 두 차례 현황 보고서를 작성했다. 수백 벌의 금형 제작 현황을 점검했고 협력사가 공유한 서류 대비 제작되지 않은 금형에 대한 약 8천만 원의 비용은 절감 실적으로 잡았더니 팀장이 흡족해했다는 파트장의 짤막한 회신이 기억에 남는다.
온갖 정나미가 떨어진 팀이었지만 금융기관에 저당 잡힌 삶이기에 꾹 참고 조직에서 필요 최소한의 것들만 대응해 주다가도 파트 간 연구원급 축구 대항전 같은 깜짝 이벤트에는 곧잘 참석하기도 했다. 요즘 학생들이 반티나 과티를 맞추듯 소속감 고양을 위한 축구 유니폼으로 파트 티셔츠를 제작해 시합을 뛰거나 워크샵에 참여했다.
평균적인 초혼 연령에 비해 나와 동갑인 지인이나 친구들은 이른 시점부터 결혼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 들어서 나를 포함한 한두 명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친구가 혼인식을 올렸다. 반포동 아펠가모 웨딩홀에서 친구의 결혼식에 참여해 도가니탕을 맛있게 섭취했음에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착잡함으로 가득했다.
동교동에 거주하는 그녀를 만나 염원해 마지않던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애매한 말들로 에두를 뿐이고 나는 보통 사람과 다른 독특한 삶을 사니까 그들의 속도에 맞출 필요는 없다고 말을 했다. 그녀가 말하는 남들과 다른 부분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듣지 못했지만 한번 생각한 바는 절대 꺾지 않는 고집스러움과 와인글라스 잔과 같은 예민함을 살피느라 강하게 내 뜻을 전달하거나 설득하는 행위는 하지 못했다.
그녀와의 데이트는 굉장히 단조로웠다. 프리랜서 특성상 고정적으로 일을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고 매우 야행성을 지녀 오전부터 오후 2시까지는 수면상태이기에 항상 오후 늦게 홍대 앞을 거닐거나 ALAND로 옷을 보러 다녔고 영화관도 야간 표를 끊었으며 몸에 이롭지 않은 먹거리를 거침없이 섭취했다. 그녀가 깨어 있는 시간에는 실제 시청 여부를 떠나 배경음악처럼 항상 TV가 켜져 있었고 입이 짧아 대부분은 버려진 야식이 담겼던 플라스틱 그릇들이 반지하 방구석에 켜켜이 쌓여있었다.
금요일 퇴근 후 그녀를 만나러 가면 중환자실도 아닌데 십중팔구 전등을 환하게 켜둔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모습을 마주했다. 늦은 기상 후 나에게는 왜 이렇게 데이트 코스를 생각해오지 않아 자신이 여기저기 찾게 만드냐며 불만을 터뜨리다가 설탕으로 범벅된 아이스 녹차라떼를 마심으로 진정되기도 했다. 항상 손발이 차고 저혈압인 그녀가 걱정돼 함께 헬스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 있던 관장님은 몇 가지 테스트를 해보더니 다음과 같은 진단과 처방을 내렸다.
“살면서 전혀 운동을 해 본 사람이 아니야. 어디 해외 좋은 데 가서 놀고 싶어도 놀 체력이 없는 그런 몸이야. 이곳에서 뭘 할 욕심을 버리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뭘 안 하려고 노력을 해야 돼. 이런 데서 뭘 안 하기도 참 힘든 것이라구~”
이렇게 홍대 인근을 데이트 거점으로 삼다 보니 주차도 불가능한 당산동 원룸으로 독립한 것이 딱히 메리트가 없었다. 모아놓은 자산도 없는데 매달 40만 원씩 월세로 지출되는 것이 아까워 계약을 해지하고 다시 부천 상동 리파인빌 전셋집에 돌아왔다.
이 시기 즈음 LOL(League Of Legend) 게임을 손대기 시작해 빠르게 중독됐다. 그녀의 반지하 방에 내 랩탑을 새로 구입하여 PC방에 준하는 환경을 구축해 두고 그녀도 LOL 소환사의 세계로 끌어들여 많은 시간을 칼바람 나락에서 함께 보냈다. 게임 실력이 향상될수록 나의 복부 지방과 흰머리만 늘고 거북목으로 화면을 들여다보던 습성은 자세를 빠르게 망가뜨려 정말 인생이 나락 갈 것 같았다. 여유롭지 않고 스트레스 가득한 평일 직장 생활을 이런 값싼 도파민 중독으로 보상받으려 한 것 같다.
파트 총무이지만 2013년을 돌아보면 참 많은 회식에 불참했다. 대신 총무 역할을 하고 회식 사회를 본 후배와 동료에게 작게나마 마음의 빚이 남아있다. 그래서 연말 파트 워크샵만큼은 소중한 내 연차를 소진해 가며 먼저 숙소에 도착해 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누군가가 준비해 온 특급 소고기라고 하여 신나게 구워 먹었는데 평소에 즐겨 먹지 않던 것을 먹어서 그런지 다음날 그 좋은 먹거리는 조금도 몸에 흡수되지 않은 것처럼 심한 복통을 가져다주며 빠져나갔다. 같은 방에서 누워 자려던 후배 D 연구원이 말했다.
“선배님한테는 믿고 말씀드릴게요. 내년 대규모 조직개편으로 우리 팀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워크샵의 피로감으로 가득했던 나는 그런 말을 듣고도 궁금한 것들을 더 묻지 못하고 그저 그렇구나 하며 쓰러져 잠에 들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