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잘 산다는건 어떤것일까?
'삶을 잘 산다는건 어떤것일까?'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는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내 머릿속에 남아 맴돌며 이 질문을 던졌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이다. 그는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같은 루틴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자신의 작은 차를 몰고 시부야의 공중화장실로 떠난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매일 비슷하고 일정하다. 들뜬 것 하나 없이 늘 평온하게 느껴진다. 노동도, 기쁨도, 작은 행복들도 매일 균등하게 나누어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옷을 갈아입고,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직접 청소 도구까지 만들어 깨끗하게 화장실을 청소하고, 점심엔 공원의 나무 아래에서 샌드위치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과 햇살을 찍는다. 퇴근하고 나서는 단골 식당에 들러 맥주 한 잔을 하고 집에 돌아와 소설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또 아침이 시작된다.
히라야마의 하루하루는 늘 똑같고 어쩌면 따분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세를 보면 지루함은커녕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를 향한 걱정 따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그저 지금이 중요하고 현재를 살아가면 된다는 메시지가 히라야마의 루틴을 통해 나에게 전해졌다.
가출한 조카 니코를 데리러 온 여동생과의 대화에서 히라야마는 부유한 집안 출신임을 알 수 있었지만, 그가 왜 청소부 일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그 모호함이 나에게 더 큰 메시지를 전해 준 것 같다. 자신의 자유의지로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히라야마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는 삶을 잘 살아가는 우아한 태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장소나 환경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스스로의 마음과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쿠키영상에는 "코모레비" 라는 단어가 나온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하는 일본어인데, 이 단어를 보고 나서야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다. 바로 지금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들에 주인공은 집중한다.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매 순간 의미가 가득한 인생이다.
체득된 자유의 표식은 무엇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니체,<즐거운 학문>
나는 매일 똑같은 루틴으로 사는 히라야마의 일상에서 '자유'를 맛보았다.
오랜 시간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내린 나의 답은, '진실된 삶' 이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자유의 표식이라는 니체의 말처럼 나의 하루를 24시간 카메라로 보고 있다 해도 하나의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리고 뭉뚱그려져 있던 나의 생각이 히라야마의 일상을 엿보며 확실해졌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24시간 카메라로 돌려본다 해도 하나의 거리낌 없이 당당할 것이다. 매일 같은 루틴으로 살며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 '대충'이란 없는 태도, 침묵이 습관인 그에게는 말실수할 일도 없고, 타인에게 쉽게 동조하지 않으니 꺼림칙할 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나는 그의 루틴한 하루를 보며 '자유'를 느꼈다. 또한 촘촘히 직조된 일상은 어떤 사건이 비집고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조금 더 고차원적인 자유를 슬쩍 맛본듯하다.
매 순간이 감사로 가득했던 주인공의 태도에서 내 삶의 가치를 찾아본다. 대단한 삶이 아니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도처에 깔린 아름다움을 주워 담으며 살고 싶어진다. 너무도 평범하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상에서도 빛을 찾아내고,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하루하루를 통해 나의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 클로즈업 되는 주인공의 표정연기는 감히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새로운 새벽이에요. 새로운 날이에요. 새로운 삶이 시작됐어요." 'Feeling good'이라는 노래와 함께 보여지는 히라야마의 충혈된 눈동자는 기쁨의 눈물인지, 아픔의 눈물인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 있던 수많은 감정들을 자극했다. "알지..? 그런 거지? 그렇지..?"라고 주인공과 눈으로 대화하는 듯한 시간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도 있고, 그 안에서 느끼는 것들은 각자의 나름이구나를 느끼며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나의 협소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히 대단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