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 열리는 그림책 수업
우리 책방에 매주 방문하는 팀이 있다. 그림책수업을 하는 선생님과 회원들이다. 매주 함께하는 회원분 두 분과 선정 책에 따라 들쑥날쑥한 회원들이 한주에 한번 모인다. 나도 아이들 그림책을 읽어주며 그림책이 주는 치유의 힘과 그림책만이 갖고 있는 따뜻함을 느낀 뒤 좋은 그림책들을 모으고 있는지라 이 수업에 늘 관심이 간다. 선생님이 수업하는 책들 중에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책은 꼭 한번 들춰보거나 구매해서 집에 갖다 놓게 된다.
나는 감수성이 심각하게 풍부하다. 아이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꺼이꺼이 우는 건 다반사, 서점에서 일을 하며 새로 온 그림책을 훑어보다가 운 적도 많다. 그림책 정리하다가 우는 서점 아르바이트생이라니, 좀 꼴이 우스울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원래 감수성이 풍부하고 잘 우는 편이긴 했으나 아이들을 키우며 유난히 심해진 것 같다. 아마 육아를 하며 내가 알게 된 세상이 너무도 넓어져서 그런 것이겠지. 하나의 문장에도 나를 대입하고, 부모님을 대입하고, 아이를 대입하고, 사랑이 필요한 누군가를 대입하며 자꾸 울게 된다.
서점에서 그림책수업을 하는 선생님과 회원님들도 다르진 않은가 보다. 그림책 수업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육아 중인 엄마인데, 수업을 할 때마다 최소 한분은 꼭 우시는 것 같다. 수업은 책 한두 권을 읽고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며 글을 써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된다. 선생님은 목소리와 톤을 바꿔가며 그림책을 재미나게 읽어주신다. 개구진 아이의 목소리, 앙칼진 엄마의 목소리, 슬픈 목소리 등등 연극을 하듯이 그림책을 읽어준다. 종종 나는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그렇게 슬프게 읽으면 울 것 같잖아요ㅠㅠ'라고 혼자 생각하곤 한다. 역시나 책을 읽고 나면 종종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까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만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내밀한 스토리를 품고 살아간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에 남들은 알지 못하지만, 나와 늘 함께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다. 그리고 각자의 스토리는 사소한 것에서 위로를 받곤 한다. 책에서 만난 한 문장에서, 영화의 한 장면에서, 누군가가 건넨 따듯한 위로의 말에서, 아이에게 읽어주고 있던 그림책에서...
그림책 수업을 하는 회원들은 하나의 그림책을 읽고 각자 느끼는 감정, 자신의 사정, 육아의 고충, 내면아이 등등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조심스러운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서가를 정리하며 이야기에게서 멀어지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겉으로 꺼내고 그러면서 스스로 더 깊이 파고들어 치유하려고 하는 그녀들의 용기와 노력은 대단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한 리액션 없이 조용히 공감해 주는 태도 또한 품격 있다. 가끔 나는 이 그림책 모임을 보며 '이런 모임은 여자만 가능한 걸까? 아니면 남자들도 이렇게 그림책을 읽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서로 공감과 위로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시콜콜한 농담을 안줏거리 삼아 늘 거하게 취하는 남편의 술자리를 떠올리며..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수업을 하며 눈물로 마음을 정화시키고 나오는 말간 얼굴의 손님을 바라보며 오늘의 수업으로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셨길, 마음의 위로를 듬뿍 받고 돌아가시는 길 가벼워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한다. (나는 그림책 수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도 자꾸 이런 마음을 담아 손님들들 대하게 된다.)
수업이 끝나고 나가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나도 시간만 맞으면 이 수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아마 내가 매 수업마다 울며 모든 이야기에 공감하는 '눈물의 여왕'자리에 등극하게 될 텐데. 아무래도 책방 알바생이 책방에서 열리는 수업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좀..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