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 열린 영어스터디 모임,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오전의 책방 알바 시작시간은 열시이다. 오픈도 10시이기 때문에 손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나는 항상 적어도 9시 50분 전에는 도착해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 15분 정도 일찍 오시는 분들도 있다. 대체적으로는 사장님이 서점에 계시거나 옆건물 출판사 직원분이 미리 오픈은 해주시기 때문에 서점 안에서 기다리시는데 문제가 없긴 하지만, 나는 어쩐지 나보다 손님이 먼지 와서 날 기다리고 있을 때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날도 그랬다. 9시 50분 조금 안된 시간에 서점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손님 두 분이 서서 책을 보고 계셨다. '아이고 나보다 일찍 오셨구나. 얼른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허둥지둥 커피머신을 켜고 물을 끓이고 간식류를 꺼내놓으며 음료대 준비를 했다. 두 분은 조용히 서서 책만 읽고 계셨다. 일행인지 아닌지 헷갈릴 만큼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주문을 하러 오셔서 말씀하셨다.
“10:30에 6명 영어스터디 예약되어 있을 거예요~"
오전에 하나뿐인 예약 손님이셨다. 서점에서 가장 큰 방을 이용하시도록 도와드리고 주문을 받았다.
음료를 준비하고 있는데 4명의 여성분들이 우르르 들어오셨다. 6명 한 팀이 모두 모이자 화기애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음료를 가져다 드리며 살짝 보니, 손님들 나이는 50대 - 60대 정도로 되어 보인다. 모두 EBS영어책을 하나씩 앞에 꺼내놓고 있었다. 미국으로 휴가를 다녀오셨다는 한 여성분이 미국 여행 중 그동안의 영어공부의 효과를 보고 왔다며 간증을 하고 계셨다. 음료를 가져다 드린 뒤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있느라 그 손님들에게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그런데 몇 분 뒤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하고 진지하게 바뀌더니 6명 모두 영어로만 대화를 하기 시작하셨다. 부끄러워하거나 머뭇거림 없이 당당하게 영어를 구사하시는 6명의 손님의 말소리가 들려오는데 나도 모르게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대화를 할 때 어려운 단어를 구사한다거나 발음이 정말 좋아서 못 알아듣겠다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막힘없이 술술 영어로 말할 수 있다는 점, 버벅거리지 않고 자신감 있게 영어로 말한다는 점 (특히 감탄사를 계속 영어로 하는게!)이 이분들의 영어 공부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해 줬다. (나도 영어 스터디를 꽤 해봤지만 사실 한국사람들끼리 모여서 영어로만 대화한다는 게 조금 부끄러운 점이 있었기에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최근에 나도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던 참이었다. 호텔리어로 근무할 당시는 늘 어학원을 다니며 영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영어라고는 아이들 동화책 읽어주는 게 고작이다. 그동안 공부해 온 게 아깝기도 하고 영어는 어차피 평생 공부해도 만족이 안 될 언어인지라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데 그 타이밍을 못 잡고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모여서 다 같이 영어 공부를 하고, 영어회화를 막힘없이 하는 모습을 보니 그 열정과 노력이 얼마나 부럽던지.
어느 정도 공부가 끝난 후에는 미국 여행을 다녀오셨다는 분에게 다른 분들이 "미국에서 들은 말들 중에 뭐 좋은 거 우리한테 알려주고 싶은 거 없었어~~?" 라며 질문을 이어가는 걸 보며 '학습'이라는 건 정말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에게 활기와 열정을 불어넣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가서 뭐 봤어~? 어디 어디 갔다 왔어~~? 뭐가 재밌었어~?라는 질문이 아니라, 미국에서 영어를 해봤을 때 어땠어? 먹혔어? 뭐 들은것중에 우리랑 공부했던 표현 있어? 알려주고 싶은 거 있어?라는 질문이 나로선 놀라웠다.)
내 주변에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60대 어른들이 많다. 서양미술사와 역사를 공부하러 매주 30분씩 운전해서 다니시는 분, 일본인과 회화공부를 하며 늘 일본어 실력을 갈고닦으시는 분, 꾸준히 pt를 받으며 몸에 대해 공부하고 운동하는 법을 배우는 분, 피아노를 매일 1시간씩 연습하시는 분, 인문학을 공부하시는 분...
꾸준히 무언가를 공부하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잘 알고 잘하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주변의 어른들을 보면서 열정적인 모습들에 큰 존경심을 갖게 된다. 나도 더 나이가 들어도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고 항상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심기도 한다.
3시간 가까이 '영어'라는 주제로 한마음이 되어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이 공부한 걸 나누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는 6명의 중년의 여성분들을 보며 나도 지금부터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면 당당하고 자신 있게 영어로 나의 모든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마음으로 <빨모쌤의 라이브 영어회화> 책을 한 권 사서 퇴근했다.
영어스터디를 하러 책방에 방문한 6명의 여성 손님들께 "늦지 않았어! 지금 당장 영어공부 시작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은 기분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