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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 Aug 09. 2024

"시집 좀 추천해 주세요"

힘들어하는 지인에게 선물할 책을 추천해 달라던 손님

며칠 전 날씨가 엄청 맑은 날이었다.

입추를 앞에 두고 있어 그런가, 아침의 기온이 조금 떨어져 아침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하늘이 너무 맑고 예뻐서 하늘 사진만 몇 장을 찍었는지 모른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이유 없이 기분이 좋은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서점의 상황은 달랐다.

방학기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는 손님이 많아 서점이 좀 북적거리는 편인데, 그날따라 서점이 너무도 휑- 했다. 나는 묵묵히 책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책을 읽으며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딸랑"

손님이 들어왔다.

물론 책을 구매하려는 손님이 두 명 왔다가긴 했지만, 손님을 알리는 종소리가 그냥 무조건적으로 반가운 날이었다.

빨간 테두리가 둘러진 사원증을 메고 있던 남자손님이다. 아마도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서점에 들른 듯했다. 손님은 서가를 계속 두리번거리며 이 책, 저책 펼쳐보고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듯했다.

책을 못 고르는 듯한 모습에 도움이 필요하다 느껴 다가갔다.

"혹시 찾으시는 책 있으세요?? 도와드릴까요?" 

남자는 흔쾌히 도움을 요청했다.



(나- 빨강, 손님-파랑)

"시집을 좀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좋아하시는 시인 있으세요?"

"제가 시를 정말 모르거든요. 아니 책을 안 읽어서 잘 몰라요. 선물하려고 하는데.. 모르겠어서…“

"누구에게 선물하실 거예요?"

"아 지금 좀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한테 선물할 거예요.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한테."


시집이 꽂혀있는 서가로 손님을 이끌어 시집 몇 권을 보여드렸다.

"저는 힘들 때 오히려 더 슬픈 글을 읽고 힘을 낼 때도 있고요. 아니면 정말 다정한 말을 건네는 책을 읽으며 힘을 낼 때도 있어요."

"좀 다정하고 따뜻한 걸로 추천해 주세요"

나는 나태주시인님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꺼내드렸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따뜻해지더라고요. 그 감성이 좋아서 종종 읽는데 한번 보세요"라고 하며 옆으로 살짝 피해드렸다.

"이걸로 할게요. 좋네요~" 라며 계산을 하러 오는 손님.


"선물 받으시는 분이 정말 좋아하겠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제가 책을 진짜 안 읽어서 책에 대해 전혀 몰라서.. 어렵더라고요. 감사해요"

재차 자신은 책을 안 읽어서 책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말하던 손님.

책이나 시에 대해 잘 모르지만,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시집을 선물하는 그 마음이 나는 왜 이리도 따뜻하고 예뻐 보이던지.

책을 선물 받게 될 힘들어한다는 그 사람이 직장 상사일지 동료일지  부모님 일지 여자친구나 와이프일지 모르지만, 이 시집을 받고 나서 기뻐해주면 좋겠다는 오지랖 같은 마음을 품어본다. 슬쩍 건네본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그 사람의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길 바라본다.



++

나는 책 선물을 자주 하는 편이다. 좋은 책이 있으면 여러 권 사서 주변에 선물하기도 하고, 축하할 일이 있거나 위로할 일이 있어도 책을 선물하는 편이다. 같이 서점에 간 사람에게 이유 없이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대략 10년 전쯤, 회사에서 한창 힘들어하던 시기에 후배가 나에게 책을 선물해 준 적이 있다. 김창옥교수의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라는 책이었다.  책을 선물 받는 일이 드물었던 나인데, 그때 그 후배가 나를 고민하며 골라준 책은 많은 사람들의 위로나 격려보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때 책 선물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선물을 하고 싶은 상황이 생기면 무조건 책을 선물하곤 한다. (물론 책을 정말 안 좋아하다 못해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책선물은 안 하지만)

마음을 표현하고 싶거나, 마음을 담은 선물을 하고 싶을 때는 책선물만큼 값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밥이나 커피를 사주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도 좋지만,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신중히 고르고 골라 선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위로 그 자체가 된다고 생각한다.

서점에서 종종 선물할 책을 추천해 달라는 손님들이 있는데, 그런 손님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서점 알바생으로써 더 많이 읽고, 많은 책을 알고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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