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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 Jul 26. 2024

우연한 시작

어쩌다 책방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책이 좋았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이 많은 곳을 자주 찾았다. 주말이면 서점 바닥에 앉아 몇 시간이고 책을 읽었고, 주중엔 날마다 도서관에 들려 책을 빌려 읽곤 했다. 그럼 책을 엄청 많이 읽겠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진 않다. 일 년에 100권 겨우 읽는 정도라 독서 깨나한다는 사람들에게는 견줄 수준도 못된다. 그래도 늘 읽고 싶은 책이 넘쳐흐르고, 신간이 나오면 읽을 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사고 보고, 여행을 가서도 꼭 그 지역의 서점에 들르는 걸 보면 활자중독은 아니어도  '책' 중독은 확실해 보인다.


나는 종종 책이 많은 공간으로 도망친다.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 사람들에게 치여 에너지가 없을 때, 화가 날 때, 외로울 때, 혼자 있고 싶을 때면 책으로 둘러싸인 곳을 찾아가 그 공간의 위로를 받는다.  

말없이 서가를 서성이며 지금 내 마음의 상태와 어울리는 책을 골라 그곳에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고 나면, 무언의 위로를 받고 난 나의 마음은 다시 풍성해지고 여유로워진다.

그래서인가, 언젠가부터 난 책방주인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에서 누구라도 쉼을 얻을 수 있고, 책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언젠가 그런 책방을 꼭 차리고 말겠다는 작지만 큰 꿈을 갖고 살고 있다. (덧붙이자면 어서 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와 메리골드마음세탁소를 합쳐놓은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어느 날 우연히 책방 구인 공고를 보았다. 그곳은 내가 단골로 드나드는 서점이다. 그곳에 처음 방문한 건 대략 3년 전. 남편이 새로 생긴 책방이라며 나를 데려갔는데, 내가 만들고자 하는 책방의 이미지와 너무도 비슷해서 "안돼~~ 이건 내가 하려고 했던 컨셉인데~~~" 하며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좌절은 잠시, 나는 오프라인에서 책을 살 때면 늘 이곳으로, 독서모임을 할 때도 이곳으로, 아이들과 갈 곳이 없을 때도 이곳으로 갈 정도로 이 공간을 애정하게 되었다. 갈 때마다 "아 이런 곳에서 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며 아르바이트생들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보곤 했었다. 그런데 구인공고라니! 나는 대기업 입사지원이라도 하듯 손을 부들부들 떨며 공고를 본 지 1분도 안돼서 지원을 했다. 그리고 면접을 거쳐 높! 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서점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이 지역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선망하고 있는 장소라 그런지 알바 지원률이 굉장히 높았다. 하지만 사장님 왈, 가장 스피드하고 의욕이 있던 건 나였다며...)


책방 시급은 당연히 최저시급인 9,860원. 10시부터 18시까지만 운영하는 책방이라 오전, 오후 알바로 나뉘어있다. 나는 초1, 6세 아들 둘을 키우는 주부라 시간적 제한이 있어서 주 3일 3시간-4시간씩만 일하기로 했다.

내가 이 서점에서 일하게 된 것을 알게 된 대부분이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공간에서, 아이들 케어하는데 방해되지 않을 선의 시간만 일하게 된 건 분명 행운이니까. 하지만 꼭 뒷말이 붙는다. "근데 기름값이 더 나오는 거 아니야...?" 그렇다. 우리집과 서점의 거리는 5-6km정도로 약 15분-20분정도 소요된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사람이라면 15분-10분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 여기겠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15분 거리면 '멀다'라고 느끼는 거리다. 심지어 나의 생활반경은 대부분 1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인지라 사람들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수긍하게 되었다. 하지만 멀면 어떻고~ 최저시급이면 어떻냐~ 는 마음이다. 2017년 휴직하고 복직 없이 2022년 퇴직한 나에게는 근 7년 만에 처음으로 남의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첫 스타트가 책방이라니!!


그렇게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시작한 서점 아르바이트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사실 경력이 단절된 채로 아이만 돌보며 7년이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지원하는데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 '애들이 아프거나 하는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 '집안일이나 육아에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등등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한 감정들을 무시하고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지원했었다. 아직 4개월밖에 안되긴 했지만 나는 일을 못 나가거나, 늦거나, 실수하는 일 없이 무탈히 잘 지내왔다. 그리고 5개월 차가 된 이 시점부터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서점에서 일하며 겪는 에피소드들이나 책방알바생으로서의 생각들을 글로 남기게 되었다.  

이제 슬슬 짧게 알바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던 찰나에, 우연히 피드를 내리다 발견한 서점 구인공고, 그것도 내가 너무도 애정하는 곳의 구인공고. 이것은 우연의 가면을 쓴 필연이다. 늘 생각만 하던 일이 현실로 된 순간, 나는 지금 내가 찍고 있는 이 점들이 모여 언젠가 선을 이룰 거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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