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방문한 한 커플에 대한 오해.
그 두 사람이 처음 서점에 방문한 건 비가 많이 오는 공휴일이었다. 아마도 석가탄신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을 시작한 지 약 두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비는 퍼붓듯이 쏟아지는데, 비 때문에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다 서점으로 몰려든 듯이 서점에 앉을자리 없이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내가 일하는 서점은 대관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6,000원을 내면 음료 한잔을 서비스로 제공해 주고 서점에 있는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다.)
들어오고 빠지고를 반복하는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일을 시작한 이래로 제일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빗속을 뚫고 온 튜닝한 벤츠 한 대가 서점 앞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그 차에서 두 사람이 내려 서점으로 들어왔다. 두 손님은 마치 운동하다가 온 듯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남자손님은 나시에 반바지, 여자손님은 레깅스와 기능성티셔츠. 남자의 민소매 옷 사이로 드러나는 우람한 근육들과 그 위에 그려진 문신들. 여자의 팔뚝과 발목에 새침하게 보일 듯 말듯한 문신들. 나는 속으로 ‘뭔가 책과 정말 안 어울리는 커플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손님을 맞이했다. (이 얼마나 편협한 시선인가, 하지만 난 근육이 엄청 많은 몸에 문신까지 많으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차 두 잔을 시키고 자리를 잡은 뒤 두 사람은 서가를 서성이며 읽을 책을 고르는 듯했다. 책을 한 권씩 고르더니 자리에 앉는 커플을 보며 ‘그냥 이 서점이 예쁘다고 소문나있어서 한번 와본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커플을 주시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은 이용시간인 두 시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책에 빠져있었다. 어떠한 대화도 없고 흐트러짐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이 고른 책은 두권 다 철학에 관련된 책들이었는데, 가방에서 꺼낸 노트에 필사까지 하며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향한 나의 오해를 속으로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을 꼬박 책에만 몰두하던 두 사람은 서점 내부를 구경하다가 필사릴레이를 했다. (서점의 한 공간에 필사코너가 있는데, 필사릴레이를 하고 인증을 하면 작은 선물을 준다) 내 글씨가 예쁘네, 네 글씨가 예쁘네, 이문장이 좋네, 저 문장이 좋네 애정 넘치는 대화를 이어가며 필사를 하는 커플을 보며 내가 예상했던 두 사람의 이미지와 점점 더 멀어지는 모습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더 지났을까, 두 사람은 각자가 읽던 책과 다른 책 한 권씩을 골라 총 4권의 책을 구매해서 돌아갔다. 두 사람의 배웅을 마지막으로 나의 책방에서의 하루도 끝이 났다. 그날은 반성의 마음을 품고 집으로 돌아갔다. 안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나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겉모습, 내가 예상했던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반성.
그날 이후로 그 커플은 우리 서점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두 사람을 처음 본 그 주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책을 읽으러 서점에 갔는데 두 사람이 책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주말 직원에게 "어? 저분들 또 왔네요~?" 하고 물으니, "아는 분이에요? 책도 엄청 샀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회성 방문일줄 알았는데, 그것 또한 내 착각이었다. 심지어 평일에는 남자손님 혼자서도 자주 온다. 주에 2회는 방문하는 것 같다. "또 오셨네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나에게 "저 여기 정말 좋아요. 여기 있으면 힐링돼요~"라고 말하며 책을 읽으러 들어가던 남자손님. 올 때마다 늘 로즈메리 차를 주문하고 앉아 움직임 없이 2시간을 꼬박 책만 읽다 가는 손님. 어쩌면 우리 서점에 방문하는 손님들 중 가장 오랜 시간 집중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자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손님들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고 늘 다짐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람의 겉모습, 첫인상 등 내 눈에 보이는 것들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버리곤 한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이 두 사람은 내가 처음 심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데 얼마 안 걸렸지만 그건 내 예상과 너무도 다른 반전의 매력들을 발견했기 때문이고, 대부분은 타인에 대한 첫 이미지가 바뀌기까지 많은 시간과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내가 나 자신을 알고 이해하기도 힘든데,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떠한 색안경도 끼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이 편협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오해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
내 안에 잔재하는 '사고의 틀'로는 '헬스트레이너인가?' 싶을 정도로 큰 근육질의 몸과 몸 곳곳의 많은 문신 그리고 튜닝한 벤츠차와 서점(그것도 산속에 조용히 존재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서점)과 독서는 한 카테고리로 묶이지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커플을 보며 '반전의 매력'이란 게 얼마나 흥미롭고 멋진 것인지 깨달았다. 아마 어디 길거리에서 마주쳤거나, 헬스장에서 마주쳤다면 이 커플에 대해 이 정도까지 호기심이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서점에서 만난 이 커플의 반전의 매력들을 발견하고 난 이 두 사람에게 묘한 호기심과 흥미로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한큐에 드러나는 매력들보다 어쩌면 반전의 매력이 더 사람을 매료하는 힘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사람을 겉모습, 첫인상으로 판단하려는 편협한 시선을 거두고, 그 사람의 '반전매력'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해보는 게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