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 육아>
‘탈칵’
또 까고 말았다. 아침마다 다시는 마시지 말자고 다짐하고 밤마다 무너지는 맥주와 나의 시지푸스 같은 관계를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까?
아이를 낳기 전에도 술은 마셔왔지만 그저 유흥의 한 수단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하루종일 긴장한 나를 위한 피로회복제가 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마시는 술은 아이를 향해 폭음처럼 터지는 잔소리를 방지하기 위한 입막음약이 되기도 하고, 나의 허용의 한계선을 넓혀주는 마법의 약이 되기도 한다.
술은 어쩌다 내 삶에서 ‘약’같은 존재가 되어버린걸까?
나에게 지금까지의 육아중 어느시기가 가장 힘들었냐고 물으면 나는 바로 영유아기 시절이였다고 대답한다. 그 당시의 육아는 매번 나를 실패자로 만들었다.
많은 육아서에서 영유아기 시절의 육아에는 많은 허용과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라고 한다. 당시에는 허용적인 양육이 트렌드처럼 자리잡힌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엄격한 부모에게 그렇다할 공감과 배려를 받지 못하며 생존육아로 자란 나에게 그러한 덕목들이 갖춰져 있을리 없었다. 아무리 노력한들 자동으로 툭하고 나오는 마음이나 태도가 아니였다. 그러니 나의 육아는 매번 힘들고 실패로 이어지기 쉬었다. 해주고 싶은 건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어느 것 하나 그냥 쉽게 되는 것이 없었다. 참아야 하는 순간에 매번 욱하고 소리쳤다. 어린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춰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든 아이의 그 고집을 꺾겠다며 매일 작은 아이와 싸우는 엄마였다. 허용하고 공감하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나의 육아는 “YES” 보다 “NO”가 많았다.
육아로 지칠 대로 지쳐있던 어느날, 뭐 하나라도 방아쇠가 되면 온 집안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릴것만 같던 그때 남편이 술 한잔을 제안했다. 아이들이 어려 술을 멀리하던 시기였지만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랜만의 술이라 그런지 캔맥주를 딸 때의 청량한 소리만으로도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온몸으로 쭉 퍼지는 알콜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술을 꽤나 안마신탓인지 맥주 한캔에도 금방 알딸딸한 기분이 전해졌다. 그때부터였다. 뾰족했던 나의 마음이 둥글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이런 저런 요구를 들어주는게 힘들지가 않았다. 평소엔 유치하다고 생각한 아이들의 장난이나 말이 재밌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평소 긴장되어 있던 나의 정신이 무언가에 의해 누그러진 기분이였다. 날카로웠던 시선이 풀어지며 아이들의 저지레건 장난이건 다 ‘yes’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술이라는 수단으로 조금 더 느슨하고 여유로운 엄마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해야만 하는 일 혹은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의 속박에서 벗어나 조금 자유로운 해방감을 맛보았다. 꽉 잡고만 있던 긴장의 끈을 조금 놓으니 힘들게만 느껴지던 아이들과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3년 넘게 취중육아를 이어오고 있다. 취중육아라고 매일 술에 기대어 육아를 하는건 절대 아니다. 그저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날카로워진 날, 독박육아로 시간이 너무 안가서 너희도 나도 흐트러진 시간속에 흘러가보자 싶은날,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긴장을 풀어내고 여유로워지고 싶은 날은 술의 힘을 빌려본다.
술의 기운을 빌려 아이들이 쌀을 쏟으며 놀아도 “하하하 그게 그렇게 재밌어?” 하며 같이 웃을 수 있었고, 평소엔 아이들이 절대 맛보지 못할 음식들을 맛볼 기회도 주었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을 웃겨주기도 했고, 맨정신엔 절대 보여주지 못할 춤사위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쏟은 모진 말들을 반성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내일부터 좋은엄마가 되겠다며 이상한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것을 맨정신에도 해 줄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좀 더 풀어진 마음으로 여유로운 육아를 했다면 육아가 덜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런 사람인걸. 그저 술의 기운이라도 빌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며칠전 밤, 늦은 시간인데도 아이가 색칠놀이도 하고싶고 아이스크림도 먹고싶다며 투덜거렸다. "안돼. 자야 할 시간이잖아. 내일이 토요일이여도 너무 늦었어." 라며 단호히 말하는 나에게 아들이 말했다. "엄마~ 맥주 한 잔 마시면 안돼?"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내가 취중육아를 할때는 안되던것도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알고 있었나보다. 뭔가 조금 웃기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에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잘 수 있게 해 준 허용의 밤이 되었다.
텀블러에 맥주를 따라 몰래 마시며 아이들을 보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육아가 수월해지기도 했고 한없이 늘어나는 뱃살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며 다른 방면의 문제들에 직면하듯이 나 또한 다른 이유로 술의 기운이 필요한 날들이 있을 것 같다.
술의 기운이라도 빌려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보낸 시간들을 떠올려보니 취중육아라도 가능한 엄마여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