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시 (예비)신혼부부의 일상 3편
이번 이야기는 우리의 첫 만남에 대한 특별하면서도 신기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최단거리 386km 떨어진 곳에서 살다가 그 중간쯤인 곳에서 우연하게 만나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흔한 상황에서 흔하지 않은 선택을 하여 만났던 우리기에 이번 이야기는 좀 더 세세하게 공유해 보기로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남쪽 지방은 남자가 잘나고 북쪽 지방은 여자가 아름답다는 말.
빈과 나는 남쪽 끝에 살던 남자와, 북쪽 끝에 살던 여자가 만난 케이스이다. 빈은 어렸을 때 부산에서 잠시 살아본 것을 제외하고는 창원을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오랜 기간 고양시에서 살다가 당시 경기도 파주에 거주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충남의 한 농촌 지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세부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우리는 인구소멸위기 지역을 살리는 목적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였던 한 사업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농촌 지역에서 한 달간 살아보면서 원하는 점포를 창업해 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창원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를 하던 빈은 인생의 단조로움을 느끼고 대학 후배 한 명과 함께 지원하게 되었으며, 나는 비슷한 창업의 꿈을 가지고 있던 대학동기의 권유로 지원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빈과 함께 지원하였던 대학 후배는 떨어지고 빈만 합격하여 오게 되었고, 나에게 지원을 하자고 했던 대학동기는 지원마감날짜를 착각하고 늦게 지원서를 제출해서 다음 기수로 발탁되는 바람에 내가 먼저 오게 되었다. 그들이 함께 왔다면 우리가 사귀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 만났을 당시 동갑이었던 우리는 큰 접점도 없었고 가끔 즐겨 듣는 노래나 X들과의 썰들을 나누는 군대 옆 생활관 동갑내기 정도의 친밀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후 프로그램이 끝나고 각자 인생에서의 큰 선택을 앞두게 되면서 우리는 가까워지게 되었다. 우리가 놓였던 상황들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공학을 전공했지만 항상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4학년 때 교내활동에 미련이 남아 들어갔던 학생회에서 홍보팀원으로 있으며 필요한 대부분의 디자인을 도맡아 하였다. 팀플 과제가 잦았던 학과에서 나는 주로 다들 피하는 발표자료 제작을 맡았다. ppt 만드는 것은 재밌기도 하고 잘한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발표를 시작하며 첫 장이 화면에 띄워졌을 때, 누군가가 "우와"라고 하는 순간이 매번 기다려질 정도였다.
한 달간의 프로그램을 참여할 당시, 나는 캠핑을 주제로 한 음식점을 운영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팀에는 실제로 조리학과에 재학 중인 두 친구와 해외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한 남자분과 같은 팀이 되었다. 이 구성원 사이에서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SNS 계정 운영과 디자인을 맡았다. 그렇다고 조리에서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의 대부분의 일과는 매장을 정리하고 메뉴를 테스트해 보고 의견을 모으는 데에 쓰였다. 나는 그래서 항상 밤늦게나 새벽시간에 숙소의 공용공간에 나와서 디자인 작업을 마무리하고는 했었다.
전체 프로그램이 끝나갈 당시 프로그램을 주최했던 회사에서 입사제안을 해왔다. 내가 여러 영역에 역량이 있다는 것과 팀원들과 협업을 하면서도 내 할 일을 하는 책임감을 높이 샀다고 한다. 제안을 받고는 이틀 정도를 고민했다. 첫 회사이니만큼 처음으로 생각해 볼 부분들이 많았다.
다음은 내가 회사 입사를 결정하기 전 대표님과의 면담에서 질문했던 내용들이다. 실제로 내가 정리했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봤다.
나의 첫 회사였기에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이 회사에서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회사가 나의 주 생활반경에서 매우 떨어져 있다는 점과 급여가 높지는 않다는 점을 고려해였을 때, 나에게 어떤 메리트가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 분명해야 했다.
여기서 거절을 한다면 동기들처럼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자소서를 쓰며 취업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해야 했다.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진로의 길을 선택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간 길을 따라 하며 꽤나 안정적인 삶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대부분 정보도 없는 회사나 지역에서 나의 청춘을 바치는 것을 반대했었다. 어차피 남의 말은 안 듣던 터라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특별히 가고 싶은 회사가 없었다. 그래서 해당 회사의 입사를 선택한다고 한들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크지 않다고 느꼈다. 게다가 한 달 동안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회사 대부분의 구성원을 만나보았던 터라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업무를 진행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개인에게 결정권이 큰 회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의 진로를 확정하지 않은 이 시점에 여러 가지를 경험하기 적합한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안정적인 길이 아닌 결과를 알 수 없는 도전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수익보다 가치와 의미를 중요시하는 회사의 비전도 마음에 들었고,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도전의 기회를 뿌리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외지에서의 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게 된 결정을 하게 되었다.
빈은 더 나이가 들기 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농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었다. 이미 한 번 큰 마음을 먹고 낯선 곳에 온 그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나와 같이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빈은 나보다 먼저 프로그램을 주최했던 회사의 입사제안을 받았다. 공공기관 중에서도 교육지원청에서 일하며 공기관의 업무 스타일과 행정 서류들과 가까웠던 그의 역량들은 지역에서 큰 빛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히나 윗사람들과 잘 지내며 평판이 좋았던 빈이었기에 농촌의 스타트업 대표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인재였을 것이다.
또 하나의 선택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호형호제하게 된 형의 동업 제안이었다. 소박한 듯 하지만 적당히 센스 있고 멋이라는 게 흐르는 서울토박이 형의 감성 가득한 제안은 현실적인 선택만 해왔던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즐길 만큼 즐겼으니 창원으로 돌아가 다시 취업을 하는 것이 맞겠지만, 한편으로 그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도전해 볼 기회가 지금이 아니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빈은 결국 형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생소한 타지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종합소득세를 내는 이 세계에 발을 딛게 된 그는 멋쟁이 형을 포함하여 총 4명의 팀원들과 함께 카페를 열고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커피 타고 스콘을 굽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우리는 노인인구가 50% 이상인 농촌지역에서 기대감에 부푼 채로 각자의 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른 청년 그 자체였던 빈은 나에게 너무 새로운 존재였다. 내가 빈에게 반했던 포인트 중 하나는 모자를 자주 쓰고 다녔던 그가 그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말을 걸 떼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모자를 벗고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으며 배려와 챙김이 몸에 베여있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다소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그에게 솔직하고 제멋대로인 나의 태도가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과 확연히 다른 모습에서 끌리며 남들 모르게 의식을 하고 있었다.
나는 교통수단이 없다는 점을 빌미로 개인 시간에 빈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려갔고, 빈은 프린트나 기물 사용을 빌미로 내가 일하던 사무실에 자주 찾아오고는 했다.
하루는 코로나 1차 백신을 맞아야 했던 날이 다가오자 나는 컨디션 조절을 빌미로 전 날 일찍 퇴근해 빈에게 굳이 안 해도 되는 쇼핑을 하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많았던 빈은 그날만은 팀원들에게 다른 할 일을 만들어 보내고 나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스케일링해 본 적이 없던 친구에게 스케일링을 권유하며 치과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둘이서만 있을 수 있었다. 초반에는 둘만 있는 공기가 어색해서 뚝딱대기만 했다. 둘 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냐면, 잘 모르고 들어갔던 회전초밥집에서 초밥 한 접시에 8,000원 하는 것을 알고 3 접시씩만 먹고 배부른 척하며 금방 나왔다. 배가 불렀다고는 했지만 대전에 유명하다는 빵집서 빵을 한 바구니 샀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차에서 오랜 시간 서로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밤 12시 정도에 내가 살던 집 앞에 도착했다. 밤새 떠들었지만 서로가 아쉬워서 더 할 일이 없을지 머리만 굴리고 있다가 문득 시내 뒤편에 정자까지 올라가면 야경을 볼 수 있는 작은 언덕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우리는 가본 적도 없는 길을 찾아 나섰지만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가는 길에 불이 다 꺼져있어서 결국 1시간을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헤매던 중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져 옷도 다 젖었고, 나무 계단을 따라가다가 나무에 매달려있던 밧줄을 보게 되어 잠시 오싹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날은 우리에게 가장 설레었고 인상적인 날이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갔고 나는 빗길에 운전하는 빈이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다. 별 얘기는 아니지만 서로만 재밌는 내용의 통화를 하다가 빈이 숙소에 도착하여 끊고 나서 나는 씻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3분 정도가 지났을까. 빈이 다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이 지나기 전에 말을 하고 싶다며 그는 앞으로 더 만나면서 알아가고 싶다고 말을 했다.
첫 만남의 상황은 다시 생각해도 간지럽고 부끄러운 내용들이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빈은 게임을 하면서 방귀를 뀌고 있다. 우리에게 저런 시절도 있었다는 게 너무 까마득하지만 이렇게 남겨두고 가끔은 간지러움을 추억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