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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오늘의 감정: 열받다]

마음 속 열이 차오를 때면 마음 속 교과서를 펼치자

by 세실리아


#20. [오늘의 감정: 열받다] 마음 속 열이 차오를 때면 마음 속 교과서를 펼치자


열받다:

어떤 일에 화가 나거나

흥분을 하여 몸이 달아오르다.


출처: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사람이 감정의 자극을 받거나 격분하다.


출처: 우리말샘



2008년 회사가 합병되며 끊임없는 일과 야근,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겪으며,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갔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의원을 찾아갔다.

진료 후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화가 가득해요.

마음에 화가 빠져나갈 구멍을 좀 마련해줘요.”


그 때 생애 처음으로

‘화’와 ‘분노’는

내 마음을 열 받게 하는 것임을,

누구 때문에가 아니라

나 스스로 그것들을 키워가는 것임을 인지했다.

인지했기에,

그것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화와 분노를 잊기 위한 노력을 했었다.

운동을, 노래를, 요가를, 댄스를 배우며

그것들을 잊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그것들로 해소 될 거란 착각으로

꽤 긴 시간 시행착오를 겪었다.


얼마를 그렇게 헤매었을까.

내 감정과 마음은

돌보아야 하는 것임을, 보살펴야 하는 것임을

내 나이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 바라보기의 첫걸음을 시작했었다.

마음 바라보기의 늦은 첫 걸음,

첫 걸음에 이어 걸음마를 이어가려 하지만

늦은 걸음마는 역시나 결코 쉽지 않았다.

마음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인지.

마음을 바라본다는 것이

막막하고, 막연하고, 어렵고, 힘겨웠다.

그래도 이어갔다.

꾸역꾸역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이어가며 20대를 넘어,

30대를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첫 걸음마를 배울 무렵,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뭉클했다.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 무엇이든 처음은

아이처럼 저렇게 하는 거구나.’


아이는 첫 걸음을 떼고 넘어지기를 수차례,

두 걸음을 떼고 또 넘어지기를 수차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늘려가기 위해 필요한

수백, 수천 번의 넘어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백, 수천 번 넘어지면서도

아이는 계속 해 나갔다.

아이는 짜증도, 화도 내지 않고

그렇게 계속 해 나갔다.


엄마는 또다시 아이를 보며 알아간다.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그렇게 알아간다.

그렇게 아이 덕에 엄마가 된 엄마는

또 아이 덕에 세상을 다시 배워간다.

그렇게 아이의 걸음마 연습은

엄마 마음 속에 교과서로 저장되어 있다.


오늘도 ‘화’와 ‘분노’로 쉽게 열 받곤 하는 엄마는

오늘도 ‘화’와 ‘분노’로

열 받지 않기 위한 연습을 이어간다.

오늘도 ‘화’와 ‘분노’를

보살피는 연습을 이어간다.

오늘도 ‘화’와 ‘분노’를

바라보는 연습이 쉽지 않지만,

그렇게 연습하면서도

한 순간에 ‘화’와 ‘분노’에 휩싸이며

수차례 넘어지지만

오늘도 엄마 마음속에 교과서를 펼치며

선생님인 아이의 걸음마 연습을 따라하며

또다시 일어나

내 안의 ‘화’와 ‘분노’를 마주해간다.

그렇게

마음 속 열이 차오를 때면 마음 속 교과서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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