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가득한 봄날 택배가 왔다. 귀농한 분이 보내온 것이다. 서둘러 뜯어보니 머위나물이 나왔다.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머위 싹들이 차곡차곡 상자에 가득했다. 고향 냄새와 봄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내 고향은 함양 안의면에 있는 매각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하늘 아래 청정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마을 어귀에서 풍경화 그리면 딱 좋을 듯한 그림 같은 소박한 곳이다. 층층으로 된 동네 뒷산에는 바위를 깨어 넓은 샘을 만들어 바윗돌 사이사이에서 샘물이 나온다. 새벽이면 양동이로 물을 길어 아침 준비를 한다. 그 흘러나온 물이 모여 동네 사람들의 온갖 먹거리를 해결해 주는 요즘의 약수터보다도 훨씬 더 보물 같은 곳이다.
작은 마을의 집들에서 옹기종기 육 남매 칠 남매를 키우던 때 늘 아이들 소리로 요란했다. 지금은 빈집으로 가득하고 어르신 여덟 분이 동네를 이끌며 살아가고 계신다. 그 빈 자리를 농업 학교를 졸업한 타향 사람이 들어와 동네 농사와 조그만 우리 농사도 지으며 살아간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고 어르신들의 안녕을 늘 살피는 참 고마운 분이다. 거기에 가끔 고향 소식과 먹거리를 보내오니 일거양득의 따뜻함이다.
2년 전 봄날 언니들과 고향을 찾아간 적 있다. 우리 집은 이사를 해 읍내에 있지만 갈 때마다 어릴 때의 고향이 그리워 자주 찾아간다. 집안 어르신들의 주전부리를 차에 싣고 달릴 때의 기분은 늘 소프라노 소리로 들떠있다. 혼자보다는 언니들과 함께라서 더 그러했으리라.
치매를 앓고 계시는 뒷집 아주머니 집에 갔다. 걸음걸이도 옷 입은 맵시도 다 건강을 얘기해 주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저희는 앞집에 살던 태봉오빠 생들이에요.” 생각하는 시간도 없이 바로 우리 이름을 읊으신다. 얼마나 반가우면 손을 잡고 놓지 못한다. 치매는 근래의 기억을 잘 못 하지만 옛날 기억은 더 잘한단다. 그래서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했나 보다. 마당 가득히 머위나물이 얼마나 탐스러운지, 불편한 몸으로 아주머니는 머위를 뜯기 시작했다. 한 보따리 두 보따리 세 개의 보따리, 가득 채우고서야 겨우 허리를 폈다. 머위가 접대용이었을까, 머위만 보면 생각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때의 고마움이 아직도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상자 속 머위를 보니 아주머니 모습과 마음까지도 보는듯해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지런하게 담긴 머위가 아주 많았다. 가까운 지인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데쳐서 쌈으로 먹을 것과 또 들기름과 된장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 저녁 밥상에 올릴 것을 나눴다. 그러고도 남은 것은 간장, 식초, 설탕, 물을 같은 비율로 끓여 부어 장아찌를 만들어 유리병에 담았다. 소중함과 감사함이 유리병 속에서 봄과 함께 익어가고 있다. 내년 봄이 올 때까지 밥상 위에 올려질 먹거리가 아무리 보아도 기쁨을 준다. 저절로 행복해진다.
머위 덕분에 다시 한번 고향 하늘을 떠 올려본다. 저녁밥을 지을 때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마을 전체를 감싸 안는다. 연기는 스멀스멀 땅을 기어다니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담벼락이 없는 집들이라 앞산이 모두 다 그 집의 정원인 집도 있다. 가랑비가 그친 뒤 안개가 자욱하면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머위를 보내 준 분의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농사를 지어준다는 이유로 고향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소식을 다 알 수 있게 전해준다. 산골 지킴이 역할을 아주 잘하는 멋진 농부라는 건 안 봐도 알 일이다. 올여름에는 휴가차 고향에 가고 싶다. 앞산의 소쩍새와 뒷산의 부엉이, 벼 논의 개구리 울음소리를 친구삼는 귀농의 집 마당도 보고 싶어서다. 그날을 기다려 본다.
택배 하나가 마음마저 고향으로 실어다 준 것 같아 끝없이 고마운 날이다.
늘 바쁘게 다니는 택배 아저씨의 발걸음 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게 되었다. 요즘 세상 시도 때도 없이 오는 택배라 놓치기 쉽지만, 감사는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큰 소리로 외쳐야겠다.
“아저씨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