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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Jun 22. 2024

성룡 (1)

31. 폴리스 스토리

성룡(Jackie Chan)은 홍콩(중국이 절대 아니다. 지금은 중국이라고 하지만)이 낳은 세계적인 액션 스타이다. 심기일전해 제작한 < 홍번구 >가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면서 < 러쉬아워 > 나 < 상하이 나이트 > 시리즈, 그리고 < 턱시도 >< 쿵푸팬터 > 시리즈의 목소리 연기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코믹 액션 배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룡은 젊었을 적인 1980년대에 이미 여러 편을 연출한 훌륭한 감독이기도 했다.

성룡이 연출한 작품은 < 소권괴초 >였다. 그다지 흥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때부터 시작한 그의 연출은 < 폴리스 스토리 >, < 프로젝트 A >, < A 계획 속집 >, < 용형호제 1,2 >, < 폴리스 스토리 2 >, < 미라클 > 많은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대부분이 범아시아적 흥행을 이룬 작품이 된다.


성룡의 이름을 날린 것은 < 사형도수 > 와 < 취권 > 이지만,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당연히 가화삼보 시절일 것이다. 같은 우점원 희극학교 선후배 사이인 홍금보, 원표와 함께 만든 복성시리즈 중 하나인 < 오복성 >이 대흥행을 기록하면서 이 세명의 이름은 홍콩 영화의 한 시대를 대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세명을 합쳐서 가화삼보라고 부르게 된다. 진지하면서도 강력한 한방을 가진 이소룡과 달리 코믹한 캐릭터와 아크로바틱 한 액션으로 무장한 가화삼보는 이후에 각 자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서로의 영화에 세명이 자주 출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중에서 성룡은 가장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화삼보 중 홍금보의 액션은 합을 맞춘 액션이다. 그래서, 특별한 총기 액션이나, 차량 액션이 없어도 기가 막힌 일대일, 일대다수의 대결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쾌감을 증가시킨다.

원표의 액션은 이 것과는 또 틀렸다. 성룡이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가화삼보의 체급은 서로 달랐다. 홍금보가 웰터급이라면 성룡이 미들급, 원표가 페더급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싸움이 되지도 않았다. 그중 가장 약한 원표는 스피드와 발차기 액션에 집중했고, 영화에서도 주로 그의 특기를 살린 액션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셋 중에 가장 연기력이 떨어지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성룡처럼 크게 흥행하는 배우가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성룡은 위의 둘과 다른 액션보여준다. 특히 지형, 지물을 이용하는 그의 계산된 액션은 쿵푸라기보다는 서커스에 가까웠고 이런 액션으로 인해 영화를 찍다가 두개골이 깨지거나,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가화삼보 중에서 가장 큰 부상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성룡이 맨 처음에 작정하고 만든 경찰물이 있었는데, 그게 < 폴리스 스토리 >다.

1980년대에 성룡은 이소룡처럼 미국 진출을 꿈꿨다. 하지만 미국 헐리웃 시스템은 성룡의 현장 액션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80년대의 헐리웃은 뉴헐리웃 세대가 끝나면서 < 죠스 > 이후 터져 나온 블럭버스터급 영화, 즉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획과 대본에 의해 촬영되는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런 시스템에 성룡이 맞을 리가 없었다. 결국 그가 미국 제작사와 손을 잡고 만들었던 < 베틀크릭 > 이나 < 프로텍터 >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 프로텍터 > 같은 경우에는 배우들을 성룡이 자비로 홍콩으로 불러 재촬영을 한 후 다시 재개봉을 할 정도였다.

이후에 성룡이 작심하고 홍콩에서 만든 경찰물이 바로 < 폴리스 스토리 >이고, 이 영화는 성룡의 연출, 주연작으로 이후에 < A 계획 > 과 더불어 성룡의 대표 시리즈로 불리게 된다.


성룡은 헐리웃에서 하지 못했던 액션에 대한 한을 이 영화에서 풀려는 듯 작정하고 몸을 내던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척추 골절, 슬개골 파열, 고관절 탈구 등 수많은 부상을 입으면서 투혼을 불사른 영화도 이 < 폴리스 스토리 >가 처음이었고,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스턴트 장면을 영화 끝에 보여주며 마블보다 먼저 보너스 영상을 선보인다. 물론 이런 영상은 스토리와는 상관없었고 성룡과 스턴트맨들이 액션 장면을 위해 어떤 식으로 셋업을 하고 어떻게 부상을 당하는 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

< 폴리스 스토리 >는 이후에 성룡의 대표작이 되어 꾸준히 여러 이름으로 다시 제작되곤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이 영화를 제작할 정도였으니 성룡의 애착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성룡 영화를 단순히 명절에 개봉하는 오락 영화로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분명 말하는데 그는 홍콩이 반환되기 전까지만 해도 홍콩 영화의 한 세대를 풍미하던 아이콘이었다. 가화삼보의 80년대도 대단했지만, 1995년 작품인 < 홍번구 >부터 시작한 그의 헐리웃 공략은 실패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기획과 액션 투혼으로 이루어낸 세계적인 성공이었다.


< 폴리스 스토리 >는 초반부터 철저히 액션만을 추구하는 영화이다. 언덕에 있는 판자촌들의 가스통들을 터트리며 돌진하는 차들이나 버스에 매달려 가는 성룡의 액션 장면만으로도 초반에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다. 그의 젊었을 적 액션은 빠르고 과감했으며,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이다.

성룡은 이 영화를 위해 모든 캐릭터들을 단순화시킨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뇌하는 캐릭터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고, 오로지 영웅과 빌런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나쁘냐 하면 절대 아니다. 그런 심플함이 오히려 순수하게 성룡의 액션을 탐닉하게 만드니 그의 기획과 연출의 힘이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다.

스토리 자체도 기존에 있던 많은 클리세를 담았다. 영웅이 되지만, 순식간에 누명을 쓰게 되어 빌런을 쫓는 경찰은 많이 나온 스토리들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성룡은 모든 액션을 새롭게 창조해 내며 이게 바로 자신의 액션임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성룡의 액션은 딱 봐도 버스터 키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액션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무성영화 시절에 버스터 키튼은 압도적인 스턴트를 통해 현대 영화의 많은 액션 장면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지금의 곡예 같은 스턴트나 액션은 모두 버스터 키튼에게 빚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광풍에 날아가는 인물 묘사나 계속 달려오는 차들을 피하는 코믹 액션, 차에 우산으로 매달리는 액션들은 전부 그가 처음 시작한 액션이자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이후에 성룡 같은 액션 명장이 나올 수 있었다.

성룡도 인터뷰에서 여러 번 버스터 키튼을 언급하며 자신이 그의 액션을 많이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 폴리스 스토리 >에도 우산으로 버스에 매달리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액션들이 화려하다.


< 폴리스 스토리 >는 이후에 홍콩 영화의 전설적인 영화 중 하나가 되고, 성룡의 주가를 최고치로 올리게 되며 그의 스턴트반인 성가반도 주가를 올리게 된다. 특히 마지막에 스턴트맨들과 서로 백화점 전구를 깨며 떨어지는 장면은 젊은 성룡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에는 CG 도 없었고, 그렇다고 많은 대역을 쓰던 시절도 아니었다. 게다가 성룡은 와이어도 쓰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육체만으로 모든 액션 장면을 만들어 낸다. 자신의 스턴트 기업인 성가반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순수하게 온몸을 던져 만든 액션들은 확실히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며 성룡이 왜 성룡인지를 보여준다.  


< 폴리스 스토리 >가 홍콩 영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이 영화 이후 홍콩 영화는 코믹 쿵푸 액션뿐만 아니라 진지한 스턴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많은 영화들이 스턴트를 통한 폭력적인 장면을 담게 된다. 또한 이 영화의 총격 장면이나 초반에 나온 자동차로 판자촌을 부수는 씬, 버스에 매달리는 씬 등은 계속해서 다른 영화에서 오마쥬 되거나 차용된다. 그럴 정도로 이 영화의 액션은 그야말로 전설급이었다.


한국에서는 재미있는 일화로 더 유명한데, 이 영화는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에 한국에서 개봉되었다는 것이다. 그냥 액션 영화인데 말이다. 당시 수입사가 이 영화를 5 공화국 정권 밑에서 수입하려고 하자 정부에서 경찰이 상관의 명령을 듣지 않는 장면이 많다며 수입 불허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영화에 개입하는 순간도 20세기에는 흔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어떤 영화들에는 그렇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던 당시 성룡은 제작비로 인해 시달려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판자촌 하나를 언덕에 세트로 마련하려니 당연했다. 그래서, 이 당시에 < 복성고조 >, < 하일복성>, < 용적심 > 에 출연하면서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했다고 한다. 제작비를 벌기 위해.


20세기에는 많은 액션 영화들이 젊음과 패기만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CG 도, 대역도, 와이어도 없는 액션이 있었다. 약간의 안전장치 외에는 모든 것이 목숨과 직결되던 시절이었다.

사실 이런 액션 장면은 그가 연출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느 감독이 이런 목숨과 직결되거나 큰 부상을 예측할 수 있는 장면을 지시할 수가 있을까? 현장에서 그런 감독은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 액션을 사랑하고 관객에게 꼭 자신의 버스터 키튼식 액션을 하나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성룡은 그렇게 자신의 진심을 담아 여러 편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그게 성룡이고, < 폴리스 스토리 1 >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성룡의 날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영화이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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