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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Apr 23. 2024

앵두

어찌 잊으리오

묵묵부답


내가 앵두 얘기를 꺼낼 때마다 남편은 답이 없다. 



나는 앵두를 좋아한다. 어릴 적 내가 살던 고향 집은 뒤로 산이 둘러싸고 있고 앞으로는 논이 탁트이게 펼쳐져 그 시야의 끝자락에는 저수지가 있었다. 옛사람들은 모두 현인인듯 마을 이름을 어찌 그리 잘 짓는지 우리 동네 이름은 안외골이었다. 번화한 마을들로부터 조금 벗어나 산 밑에 안으로 타원모양으로 쏙 들어간 형상을 띠고 있는 그 모습이 참 아늑한 마을이었다. 

우리 집은 벽이나 울타리가 따로 있지 않았지만 뒤쪽으로는 밭과 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마당의 앞과 옆은 경계를 짓는 듯한 나무들 옆으로 개울이 둘러져 있어 자연스럽게 우리 집의 울타리가 되어 있었다. 

집을 나설 때면 항상 앵두나무 옆을 지나게 된다.

일상의 앵두나무는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였는지 앵두나무에 흰꽃이 피었던 기억도 없고, 앵두를 어떻게 따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앨범 안에 앵두 나무 앞에서 삼촌하고 동생과 찍은 사진과, 동생과 사촌들과 뭐가 재미난지 웃으며 찍은 사진들은 앵두와의 친밀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나의 그 시절을 부럽게 한다. 


성별이 다른 두살 터울의 아이를 가졌을 때, 두 아이 모두 임신기간 내내 똑같이 입덧을 심하게 했다. 한국인의 음식에선 빠져서는 안되는 파, 마늘, 고춧가루 등 각종 양념의 냄새를 수용할 수 없었다. 그 입덧은 출산까지 이어졌다. 그러니 정말 먹을 음식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임신 후 처음 2개월 동안은 몸무게가 2Kg이 빠졌다. 출산까지 평소 몸무게에 8Kg 정도 밖에 찌지 않았으니, 두 아이를 모두 제왕절개로 낳고 맞벌이하며 아이 키우는 것이 녹록치 않아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생각도 못했지만 임신을 하면 만 9달을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예견된 고통이 더욱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 일등공신일 정도였다. 

와중에 먹고 싶은 것이 딱 3개 있었다. 

앵두와 복숭아 그리고 포도

그것은 저장해서 팔 수 있는 과일이 아니어서 제철에 나무에서 밖에는 얻을 수가 없는 과일들이다. 간혹 시장에서 파는 앵두는 너무 불어 있어서 새콤하면서도 입안에서 탁 터지는 찰진 본연의 맛을 느낄수가 없었고, 복숭아 통조림은 색이나 질감으로 평소에도 좋아하지 않아 먹을 수 없었으며 지금처럼 흔하지도 않았지만 외국산 포도에서는 그 육즙 가득하고 달콤한 포도의 맛을 느낄 수 없었으므로 그것들을 먹으려면 제철이 되기만을 기다려야했다. 이것들은 신기하게도 모두가 어릴 적 우리집 마당에서 우리집 뒤뜰에서 그리고 외가댁 마당에서 먹었던 과일들이다.

더우기 요 앵두라는 녀석은 제철 마트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어서 정말 나무에서 직접 따서 먹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퇴근 후 집에 걸어오는 길에 어느 집 앞에 있는 앵두나무를 보았다.  그 집과도 조금 떨어진 길가에 있었던 앵두나무.. 나는 손을 그릇삼아 담을 수 있을만큼 앵두를 따왔다. 조심스레 양손을 모아 집안으로 들어와 앵두를 씻었다.  시어머니께서(결혼후 7년동안 시댁에서 삶) 앵두가 맞냐고 5년만에 임신한 며느리가 잘못된 음식을 먹을까 걱정스레 물으실 때도 "맞다"고 강하고 자신있게 답했다. 

그건 마치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홍시맛이 난다하여 홍시맛이 난다고 했던 주장과도 같고, 문법을 설명할 수 없으나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과도 같으며 엄마를 엄마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내 삶에서 앵두나무란 그런 것이다. 왜 앵두나무인지 설명할 수 없으나 보면 알고 열매를 보면 더욱 확신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자다가도 임신한 부인이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입맛이 변덕을 부려 못먹을지언정 밤에도 새벽에도 달려나가야 하는 남편의 숙명을 저버린 자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남편이다. 물론 잘한것도 분명히 많았으리라. 그러나 평생을 안고 가야하는 임신 중 서운함이 너무 크고 세서 '임신-입덧-앵두' 로 연결되는 이 숙명이 만들어지고 만 것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시간의 깊이와 함께 ······.

처음에 남편은 내가 그만큼 간절히 앵두를 먹고 싶어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내가 길가에서 앵두를 따왔다는 얘기도 가볍게 흘려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째 아이 임신중에도 계속되는 앵두 얘기를, 얼마안되는 기간에만 딸 수 있는 앵두를 흘려보내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나 근무하게 된 학교는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는데 학교에 앵두나무가 화단에 여러 그루가 있었다. 반 아이들과 컵을 들고 나가 앵두를 따서 씻어 먹기도 하고, 하교 후 식구들과도  따서 먹은 기억이 있다. 동네 주민들도 이 앵두를 좋아했기 때문에 앵두는 정말 며칠만에 신기루 처럼 사라졌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만큼이나 나에게 임신 중 입덧으로 앵두를 찾던 일은 시시때때로 반복되었고 비로소 남편은 알았을 것이다. 그 앵두가 보통 앵두가 아니었었다는 것을! 이제는 돌이킬 수도 만회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



산이 몸집을 불리고 봄꽃들이 수줍게 여기 저기서 피어날 때, 남편과 간 나들이에서 앵두나무를 보았다. 

"어 이거 앵두나무네~!" 명랑한 나의 소리에도 남편은 반응이 없다. 한옥들이 봄의 정취를 더욱 드러나게 하는 마을, 이 마을에는 왜 이리 앵두나무가 많은지 또 아는 척을 했다. 

남편은 시큰둥 "어떻게 알아?" 하고 물었으나 "그럼 6월에 다시 와 봐? 앵두가 맞는지?" 하는 나의 명랑한 답을 귓등으로 듣는다. 낮은 산에 올랐는데 거기도 앵두나무가.. 묵묵부답인 남편에게 다시 강조를 한다. 

남편이 고해성사하듯 한마디를 한숨쉬듯 꺼낸다. "앵두는 트라우마야." 무슨 얘기를 해도 자꾸 수렁으로 빠져만 드는 그래서 허우적거릴수록 더 헤어나올수 없는 늪과 같은 그런 것이라고. 평생을 가지고 갈.

"그러니까 왜 그랬어." 하며 웃어넘겼지만 나의 평생 팝콘각이 남편에게는 말할수록 손해만 나는 일이었으니 앵두의 앵자만 나와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남편의 묵묵부답을 이해해 주기로 한다. 

언젠가는 마당 있는 집에 앵두나무를 심고 함께 원없이 앵두를 따 먹으며 옛이야기 하는 날을 그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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