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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May 22. 2024

존재의 소중함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 존재

   아~앗!!

순식간이었다.

열심히 잘 드는 참신한 감자칼을 밀며 오이의 껍질을 깎다가

내 손가락을 베었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외마디 비명이 나도 모르게 나오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꽉 누르며 움켜쥐었다.

얼마나 다쳤을까 차마 꽉 쥔 손을 펴기가 주저되었다.

남편이 방에서 졸다가 허둥지둥 나왔다.

살살 손을 펴보았다.

그 크지도 않은 칼이 끼고 있던 니트릴 장갑을 베고 그 안의 지 손톱을 한 번에 날렵하게 베면서 손톱 안의 연한 살도 쓰윽 지나간 것을 보게 된 순간

시시 새어 나오는 붉은 피와 함께 아픔이 찌르듯 배어 나오고 있었다.

상처를 흐르는 물에 얼른  씻고 응급처치로 연고를 듬뿍 올렸다.

처를  치료받을 아이들은 연고자체를 보는  것에서 무서움의 거부를 시작한다. 그때마다 안 아프게 해 주는 것이라 타이르며 내 몸에도 아이 상처 근처 다치지 않은 살에도 발라봐 주며 안심을 시키고자 한다.

맞다! 사실 연고는 쓰라림의 상처를 제일 먼저 부드럽게 차단해 준다.

연고를 처덕 상처 위로 쌓으며 놀라 쪼그라진 맘을 한숨 돌리며 밴드 중 가장 적합할 것을 이리저리 찾아 뭉툭한 손톱을 잔진동으로 떨며 한참을 허둥대는 남편을 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 앓는 이 죽는다라는 옛말이 몇십 년 만에 불현듯 생각나며 그래도  방에서 꼼짝 않는 다 큰 아이들보다는 낫다는 위안이 번갈아 스치며 마음속의 생각이 밖으로 나오지 않음에 감사했다!

결국 아이 방을 노크하여 밴드를 붙였지만 말이다.

밴드를 붙이려 상처를 누르니 아픔이 밀려왔다. 그 위에 반창고를 두르니 이제 삐죽삐죽 올라오던 뇌압도 평정을 찾은 듯했다.


왼손 검지손톱을 다쳤을 뿐인데 불편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평소 검지 손가락이 하는 일이 이리도 많았구나!

손톱이  막아주지 못해 드러난 속살의 세포들은 밴드와 반창고 위의 아주 미세한 스침에도 온몸을 긴장시켰다.

비로소 모든 것들이 나를 이루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몸서리치게 느끼는 순간이다.

그동안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유지시켜 준 내 몸 구석구석의 지체들에게 감사함을 마음깊이 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찌 내 몸뿐이겠냐만 아픔을 통해 감사를 가지게 됨과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다시금 끌어올린다.

손톱 하나도(손톱도 한 겹이 아님) 허투루 만들지 않으신  하나님의 섭리에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존재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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