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내가 생각했던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그런 모습이 전부였다. 하지만 상담의 모습은 내가 단편적으로 생각해 왔던 것보다 다양했고, 생각지도 못한 여러 역동과 함께일 때도 많았다. 상담 경력이 점차 쌓여가고, 어려운 사례들을 맡아가며 새삼 체감해 갔다.
때로는, 상담이 상담자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설마 내담자가 날 해할까?
접수면접 일정을 잡을 때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내담자의 목소리가 어딘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잠에 취한 듯 말이 어눌했고, 상담자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접수면접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진짜 접수면접 시간이 되었을 때, 상담실에 들어온 내담자의 모습을 보곤 순간 당황하였다.
180 후반대의 큰 키에, 100킬로가 넘어가는 거구의 남성.
머리는 며칠 째 감지 않은 것 같았고, 계절감에 맞지 않는 옷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상담실을 가득 채운 매쾌한 담배 냄새.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직 라포를 형성하기 전이었으므로 내담자에게 최대한 상담자의 이러한 인상을 전달하지 않으려 애썼다. 우선 내담자를 파악해 가는 게 급선무였다.
"오늘은 접수면접으로, 제가 여러 가지 질문을 드릴 거예요."
"선생님, 수고 많으십니다. 제가 상담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요."
내담자는 나의 말을 무시한 채,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병원을 몇 차례 오갔는지, 부모님은 그런 자신을 얼마나 탐탁지 않게 여겼는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 것 같은지. 세상이 얼마나 밉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지.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삐용삐용하며 내 머릿속에 위험신호가 울렸다. 나를 쳐다보는 내담자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 같은 눈빛이었다. 순간적인 살기를 느꼈고, 거구의 내담자가 갑작스럽게 나를 공격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스쳤다. 상담 공간은 방음도 잘 되어 있고, 오롯하게 상담자와 내담자만 있는 공간인데 이곳에서 내담자가 상담자를 해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상상은 거의 스릴러에서나 나올 법했다.
내담자가 말한 '미운 세상'에 오늘 처음 본 나 역시 이미 포함되어 있을까?
상담자인 나는 분명히 내담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내담자를 이해해야 하지만,
머릿속은 계속 '위험'을 외치며 빨간불이 번쩍거린다.
이거, 나 위험한 걸까?
보여주는 걸 모두 보지 마
위기의식만 느꼈던 내가 처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건, A의 사례를 맡게 되었을 때다. A는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괴롭혔다. A는 대체로 상냥했지만, 가끔씩 나오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내담자도 이를 자각하고 있어서, 상담에서 이러한 부분들을 위주로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 내담자와 관계가 쌓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내담자가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의 사진첩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께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뭔데요?"
물어보면서 순간적으로 직감이 좋지 않았다. 평화로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공포영화 속 한 장면처럼 바뀌었다.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었고, 그 심장박동이 그대로 느껴졌다. 분명히 저 사진첩에는 무언가가 있다.
내담자가 보여준 사진은 끔찍한 시체 사진이었다(영화의 한 장면이었으리라). 난생처음 보는 잔혹함이었다. 평소 공포 영화든, 액션물이든 피가 나오는 장면은 무서워서 잘 보지 못했던 나는 순간적으로 공포에 휩싸였다. 이런 사진을 상담자에게 보여주는 의도가 무엇일까? 상담자의 어떤 반응을 기대한 걸까? 미소 지으며 사진을 설명하는 내담자를 보며 당혹스럽고 무서움을 느꼈다.
그날 상담은 어찌저찌 마무리가 되었지만, 상담이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심장이 쿵쾅거렸다.
눈을 감고 잊어보려고 해도 오히려 선명하게 그 사진이 떠오른다.
한동안은 빨간 것을 볼 때마다 기분 나쁘도록 떠올랐다.
어쩌면 내담자는 그러한 잔혹한 사진이 타인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 상냥하다가도 잔인하고, 배려심 깊으면서도 무자비한 그러한 모습이 내담자의 관계에서 어려움과 닮았다. 이를 다뤘어야 했는데, 상담자가 공포에 질려버린 것이다.
자신을 위험에 몰아넣지 않는 것까지가 안전한 상담이다
"이런, 보여주는 걸 그대로 다 봤구나."
슈퍼바이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착잡한 표정의 나에게 슈퍼바이저는 미소 지었다.
"내담자가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걸요."
"그래도 직감이 좋지 않았잖아요. 내담자가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보여주는 걸 모두 볼 필욘 없어요. 상담자가 충격받으면 제대로 상담 진행하기 어렵잖아?"
제가 지금 그렇게 됐네요, 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상담실에 비상벨 설치하는 거 알죠? 내담자도 상담 장면에서 안전해야 하지만, 상담자도 상담 장면에서 안전함을 느껴야 상담이 진행되지."
그 뒤의 슈퍼바이저 말은 내 마음속에 남았다.
"상담자가 자신을 위험에 몰아넣지 않는 것까지가, 내담자에게도 안전한 상담이에요."
상담자가 자신을 위험에 몰아넣지 않는 것까지가, 내담자에게도 안전한 상담.
그것이 이번 나의 오답노트였다. 상담자이기에 내담자의 모든 면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담자가 던지는 모든 공격적인 언행을 다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모든 공격을 받고도 쓰러지지 않는 상담자가 아닌, 자신을 파괴할 것 같은 공격은 받길 거절하는 상담자.
상담자는 상담에서 굳건히 버텨야 하기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경계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 경계는 내담자가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기보단, 사람과의 관계에선 이러한 경계들을 지켜나가는 게 안전한 관계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이렇게 다가가면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어,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무서움을 느껴. 자, 이게 안전한 관계를 위한 경계야.
그렇기에 상담이 나를 위험에 몰아넣지 않도록 언제나 경계를 잘 살펴야 한다.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이 결국엔 내담자에게도 도움이 되기에.
자신을 위험에 몰아넣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까지가 안전한 상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