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또다시 초보 상담자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하지만 점점 붉어지는 얼굴을 내담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내담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다.
"왜 그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난 잘해줬는데도 왜 그러는 거죠?"
'나도, 나도 네 말이 이해가 안 간다...'
속으로 읊조린다. 하지만 금세 그러한 마음을 털어내려 노력한다. 지금 눈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내담자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난 상담자야, 난 상담자야...
"... 그래요, 한번 같이 얘기해 봅시다. 어떤 점이 이해하기 어려워요?"
'분노'라는 감정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에게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상담자도 사람인데 어떻게 아무런 감정도 안 느끼겠는가? 기쁨도 느끼고, 슬픔도 느끼지만, 상담 중 가장 당황스러운 감정은 아마 분노일 것이다.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담을 시작했지만, 때론 그 내담자가 상담자를 화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상담자가 화가 나는 경우는 다양할 수 있다. 상담자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 때문일 수도 있고, 상담자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서일 수도 있고, 내담자가 상담자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미워지기도 한다. 이러한 분노라는 감정은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표출하느냐가 상담에서 중요한 쟁점이 된다. 감정은 치유적인 관계로 가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보 상담자에게 그런 것이 쉬울 턱이 없다. 분노의 감정은 초보 상담자로서 내가 가장 다루기 힘들어하는 감정이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분노를 대하기 어려웠다. 가족이 나를 화나게 해도, 친구가 나에게 큰 실수를 해도, 모든 일이 잘 안 풀리고 세상이 나를 등져버리는 느낌이 들어 화가 나더라도, 나는 분노란 감정을 주로 회피해 왔다. 큰 불이 이글이글 타오를 때면 재빨리 불길을 피해 달아난다. 혹은 화나지 않은 것처럼 모든 불길을 급하게 집어넣고 너스레를 떤다. 그게 내가 관계에서 '분노'라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화났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기 어려웠다. 상담자로 잘 기능하기 위해선 나의 감정을 명확하게 알아야 했는데, 분노는 늘 구멍이 나있었다.
어느 상담 때, 상담을 중반부까지 진행했는데 어쩐지 잘 풀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자주 찾아가는 슈퍼바이저에게 상담 진행과 관련하여 의논했다. 내 이야기를 쭉 듣던 슈퍼바이저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생님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네? 제가요?"
슈퍼바이저의 말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화? 내가 내담자에게 화가 났다고? 그럴 리가!
"그 내담자에 대해서 설명할 때만 기분이 언짢아 보여. 상담 중에 화나지 않아요?"
"그럴 리가요, 내담자가 가끔 이기적이라는 느낌은 들지만 화나진 않아요."
"그래애? 내 눈엔 화난 것처럼 보이는데. 상담할 때 잘 생각해 봐요."
"그럴 리가..."
읊조리며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정말 내담자에게 화가 났던 걸까?
분노는 피한다고 사그라들지 않는다
또 시작이다. 상담자인 나를 앞에 두고 내담자는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듯 이야기를 쏟아낸다. 상담자와 대화하는 느낌이 아닌, 앞에 포대기처럼 놓인 기분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막막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상담이 반복됨에도 바뀌지 않자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꾹 누르고 누르다 결국엔 내담자에게 하고 싶었던 그 말이 터져 나왔다.
"... 그건 이기적인 것 같아요."
"네?"
그 뒤로 내담자가 오지 않았다. 내가 내뱉은 건 그 한마디뿐이었지만, 한편으로 나 역시 내담자가 오지 않을 것에 대해 직감했던 것 같다. 이렇게 다뤄선 안 됐는데. 왜 화가 난 걸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을까? 상담자가 내담자와 상담하며 느꼈던 무력감, 분노의 감정을 얘기했어야 했는데. 분노가 없는 것처럼 꾹꾹 눌렀지만, 결국엔 사그라들지 않은 분노가 튀어올라 내담자를 송곳으로 찔렀다.
내가 분노를 피하려고 했던 이유는, 그 감정이 너무 불편하고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정 자체엔 좋고 나쁨이 없다만 분노는 늘 안 좋은 감정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사라지길 기다렸지만,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 감정을 피하고 억누르는 것은 결코 상담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분노란 감정은 그렇다. 피한다고 절대 사그라들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어졌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눌리고 눌린 분노는 튀어 오르는 용수철처럼, 언젠가는 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군가에게 표출된다. 그리고 그 표출은 내가 의도한 방향이 아닐 수 있다.
내담자에게 화가 나더라도 그 감정을 인식하고 제대로 다뤄야 한다. 분노의 감정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내가 어떤 부분으로 인해 화가 났는지를 명확히 알아갈 수 있고, 그럼 그 기저에 대해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분노의 감정은 그 자체로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내담자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찌르기보다, 내담자의 말을 들으며 느끼는 감정들을 공유했더라면 좀 더 현명하게 상담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오답노트는 다음과 같다.
분노는 피한다고 사그라들지 않는다.
내담자든 상담자든 상담장면에서 분노를 느끼면 그 감정 자체를 다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