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시간은 50분

episode 9.

by 상희

"선생님, 잠깐만."


상담 끝나고 나온 나를 팀장님이 찾았다. 시계를 힐끗 보니 12시에 근접한 시간. 그저 밥 먹을 생각에 신이 났지만, 팀장님을 향해 걸어갔다.


"무슨 일이세요?"

"상담 시간 때문에"

"네? 상담 시간이요?"

"상담 시간 11시 50분까진데 자꾸 넘기는 것 같아서. 상담 시간은 상담자에게도, 내담자에게도 지키는 게 좋아.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해 봐, 알겠지?"


그제야 아차 했다. 저번 주도 그렇고, 이번 주도 그렇고. 생각해 보니 상담 시간 50분을 맞추지 못했던 것이다. 팀장님이 눈여겨보셨구나.


"네, 알겠습니다. 주의할게요."


하지만 속으로는 살짝 억울했다. 겨우 몇 분 더 넘긴 거 가지고 괜히 그러신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왜 상담 시간은 45분도 아닌, 55분도 아닌 '50분'일까?

조금 일찍 끝내거나, 조금 늦게 끝내는 게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왜 상담 시간은 50분일까?


기본적으로 상담 시간은 1회당 50분으로 구성된다. 50분 안에 인사하고, 고민도 나누고, 때론 울고 웃고, 마무리를 한다(물론, 트라우마 상담이나 부부 상담처럼, 상담의 성격에 따라 상담 시간이 다르기도 하다). 상담자는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중간중간 시계를 확인하기도 하고, 상담 후반부에 내담자의 말이 길어질 것 같으면 '그 얘기는 다음 주에 이어서 하죠'하고 끊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왜 하필 '50분'일까?

상담을 진행해 봤을 때, 50분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집중은 50분까지, 그 이상은 피로하다

: 사람이 깊은 대화를 하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보통 45분 ~ 60분 사이다. 그런 점에서 50분은 딱 감정의 몰입과 인지적인 피로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많은 상담 기관에선 50분을 표준 상담 시간으로 적용하고 있다.


2. 상담자에게도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 상담은 보통 정각에 시작해서 50분에 끝나고, 상담자는 곧바로 다음 정각에 오는 내담자를 맞이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한 상담이 끝난 뒤 10분 정도는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는 '숨 고르기'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내담자를 더 차분하고 집중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 이 10분은 짧다면 짧지만, 상담자에겐 참 소중한 시간이다(난 이 시간을 참 좋아한다).


3. 50분의 상담 시간은 하나의 틀이 된다

: 상담 시간은 하나의 틀로서의 기능도 있다. '50분'이라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내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어떤 흐름으로 상담이 진행될지를 그려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일정한 상담 시간은 관계의 리듬이 되며, 마음의 안전선이고, 변화의 시작이 되는 단단한 틀이 되어주는 것이다.



왜 상담은 늦게 시작해도, 제시간에 끝날까?


전철이 늦거나,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는 등 내담자가 상담에 지각하는 일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담은 정해진 종료 시간에 맞춰 끝난다. '조금 늦을 수도 있지!' 내담자에게 언짢은 마음이 올라올 수도 있다. 왜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상담자는 상담 시간을 지키는 걸까? 사실, 상담자에겐 시간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일상생활에선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작은 시간 차이가 상담 장면에서는 의외로 큰 파장이 되기도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된다

: 우리 사회에는 중요한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다양한 규칙과 규범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배우며 살아간다. 만일, 규칙을 무시하거나 깨는 행동을 할 경우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는 사람을 상상해 보자. 자기도 모르게 눈이 그 사람을 향하며 '왜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상담에서 '상담 시간'은 이러한 규칙의 역할을 한다. 매주, 정각에 시작해서 50분에 상담이 끝난다는 것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중요한 약속이다. 그런데 내담자가 이 규칙을 계속해서 어긴다면, 이는 단순히 지각의 문제가 아니라 상담에서 다뤄야 할 주제로 떠오를 수 있다. 상담에 대한 저항 때문에 지속적으로 지각하는 것일 수 있고, 지각하는 행동 자체가 내담자가 지닌 심리적 어려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담자는 단순히 용인하기보단, 상담 종료 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내담자와 이를 건설적으로 다뤄 나가려고 노력한다. 물론 나 같은 초보 상담자에겐 이 과정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담자가 늦었더라도 꾸준히 상담 시간을 지켜가다 보면, 오히려 내담자에게 상담 시간을 잘 지키고자 하는 동기가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상담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은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신뢰를 강화하고, 내담자가 더 나은 변화를 위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50분보다 조금 더 상담해 줄 순 없어요?


반대로, 제시간에 시작했지만 조금 더 상담을 하고 싶어질 경우엔 어떨까? 상담이 마무리될 때, 상담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 조금 더 상담을 하면 되지 않을까? 사실 상담자는 그럴 수도 없다.


50분을 지키는 것은 내담자의 변화를 이끄는 열쇠가 된다

: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상담 시간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중요한 규칙이다. 만일 상담자가 시간을 넘겨 진행한다면, 내담자는 그 경험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내담자로 하여금 상담이 끝나는 시간을 예측하기 어렵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정해진 50분의 상담 시간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정해진 시간을 지키는 것은 내담자의 변화로써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담자는 종종 상담 후반부에 감정을 폭발적으로 쏟아내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지 못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상담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경험하다 보면, 내담자는 "정해진 시간 내에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50분의 시간 제한이란 '나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상담이 마무리될 즈음 나의 감정을 조절해 보기', '정해진 시간 안에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기'에 대한 훈련의 토대인 셈이다. 이 훈련은 결국 상담 외적인 상황에서도 도움 될 '자기 조절 능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즉, 내담자는 50분이라는 시간 안에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며, 실제 삶에서도 점차 자신의 핵심적인 감정과 인사이트를 찾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상담 시간은 단순히 이야기하는 시간 그 자체가 아닌, 내담자가 상담자와의 규칙을 지키고, 상담 장면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조절하며, 자신을 관리해 가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 그렇기에 상담자 역시, 그 시간을 지켜나가며 내담자가 변화해 가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억울한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상담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0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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