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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곰 Apr 11. 2024

역시 곰돌이! 그럴 줄 알았어.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

요즘 자꾸 잊어버린다.

물건도 약속도.


잊지 않으려 메모 해보지만 적어 두고도 보는 것을 잊어버린다. 벌써 그럴 나이는 아닌데, 자꾸만 사라지는 들이 나를 속상하게 한다.


어제는 학원비를 결제하는 날이었는데 깜박했다.

애들이 괜히 학원에서 눈치 보일까 봐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 애들 학원비 결제 좀 부탁해."

남편이 저녁출근이니 낮에는 시간이 있겠지 싶어서 한 부탁이었다.


그런데, 퇴근길 마주한 남편은 "학원비? 결제 안 했는데. 그거 그냥 내일 네가 하면 되지 않아?"


, 내가 내일 해도 되는 거였으면 뭐 하러 부탁을 했을까요. 너무나 태연히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나도 어제 잊어버린걸, 오늘 남편이 안 했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가서 결제하고 오자 싶어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히 아직 문 닫기 전이라 결제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학원비 카드가 없다! 서둘러서 오면서 남편에게 학원비 결제하라고 준 카드를 안 가져왔다.


'아, 집에 다시 가서 가져와야 하나? 언제 갔다가 다시 오지? 그냥 남편한테 내일 다시 부탁해 볼까?'


마음만 급해서 서둘렀지 정작 제대로 챙겨 오질 못한 내가 야속했다. 남편에게 다시 부탁하자니 염치도 없고, 결제를 또 미루기도 학원에 미안해서 그냥 다른 카드로 결제했다.


요즘 자꾸 마음만 앞서서 실수를 하는 것도 같고 나 자신이 살짝 미워지려던 참이었다.

그때 저녁에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까 학원비 결제 못해서 미안. 내가 내일 퇴근하면서 결제하고 갈게."

"아, 나 이미 다른 카드로 결제해버렸어. 학원비 카드가 없는걸 학원에 가서 알았네."

"역시 곰돌이, 그럴 줄 알았어."


'뭐지 이 말은? 내가 깜박할 줄 알았다는 건가? 내 실수를 예견한 건가? 그리도 나에 대해서 잘 알면 날 좀 도와주지. 기억력 좋은 당신이 좀 해주지.'

연애할 때 서로를 부르던 애칭, 불러주면 좋았던 곰돌이라는 말이 오늘은 참 미련한 사람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에 대한 남편의 평가가 너무 서글펐다.

"괜찮아, 내가 내일 다시 결제할게"

이런 따뜻한 말을 기대했던 걸까?


집에 돌아오니 내일 가져갈 준비물이 없다며 짜증 내는 딸.

"역시 엄마야. 그럴 줄 알았어."

'딸, 너마저도?'

연타석으로 같은 말로 평가받으니 자존감이 확 내려간다.

"그래, 엄마가 요즘 좀 자주 깜박하는 것 같다. 미안해."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뾰족한 말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나도 원래 이런 곰돌이, 엄마 아니었어. 이것저것 혼자서 다 챙기고 해결하려니까 머리가 복잡한 것뿐이야.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렇게 쉽게 평가하지 말아 줘.'


소리 내어하고 싶은 말을 오늘도 조용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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