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가족 그리고 친구
늘 함께 출근하던 엄마와 아빠. 이제는 엄마 혼자 출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을 계획이라도 세운 것처럼 척척 해나가고 있다. 아빠도 마음의 안정을 많이 찾으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빠는 설거지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며, 설거지를 하지 못하게 하셨다. 사실 설거지라도 돕고 싶으신 아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처음 아빠가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았을 때, 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단절될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괜한 걱정이었다. 우리가 사는 동네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산도 있고 황톳길도 있는, 하늘 아래의 작은 두 번째 동네. 그리고 그곳에는 참 따뜻하고 좋은 이웃들이 많다. 어쩌면 나보다도 이웃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아빠를 어두운 터널에서 탈출하게 도와주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은 이웃과 인사도 나누지 않고 사는 것이 당연해졌지만, 우리 동네는 여전히 참 따뜻한 곳이다.
새벽마다 우리 집 마당으로 고개를 삐쭉 내미시며
고사장, 잘 잤는가?
인사해 주시는 8호 사장님,
나도 귀 수술했잖아, 걱정 마. 고사장은 딸이 옆에 있으면 얼굴이 활짝 펴!
9호 이사님 "맛있는 두부집이 있는데, 두부 먹으러 가자!" " 고사장! 서울병원가? 내가 기차역까지 태워줄게 기다려 " 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아빠를 대해 주시는 이웃들. 아빠가 변함없이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처음 아빠가 돌발성 난청이 발병했을 때, 아빠는 전화가 오는 것도, 누군가 만나자고 연락이 오는 것도 무척 두려워하셨다. 혹시라도 알아듣지 못해 실수할까 봐 걱정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아빠를 잘 아시는 주위분들은 그런 아빠를 이해하고 기다려주셨다. "괜찮아요,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거예요." 하며 용기를 주셨다.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좋은 사람이셨던 것이 틀림없다. 매일같이 안부를 묻고, 따뜻하게 챙겨주시는 고마운 이웃들 덕분에, 아빠는 그 두려움을 조금씩 이겨내고 계신다.
아빠가 양이 돌발성 난청을 앓게 된 이후, 나는 아빠에 대해, 아니 돌발성 난청으로 인해 토끼귀를 가지신 분들에 대해 많이 배우고 공부하게 되었다. 아빠는 그저 우리 아빠, 엄마의 남편이기 이전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중한 장남이자,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무서움 속에서 때로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병이 그렇겠지만, 돌발성 난청, 특히 노인성 양이 돌발성 난청은 다른 병들보다 가족과 이웃들의 관심과 지지가 더욱 절실한 병이다. 그렇다고 해서 24시간 붙어서 간호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환자의 입장이 되어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떤 불편함이 있을까?"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라는 작은 관심과 배려를 기울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작은 관심과 따뜻한 이해만으로도 환자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음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