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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토끼 Oct 01. 2024

어느 날 아빠의 귀는 토끼귀가 되었다

10화 오늘도 아빠는 맨발로 걷는다

우리 아빠는 참 성실하고 따뜻한 분이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강한 의지를 가진 분이기도 하다. 나는 부모님이 살아오신 길을 잘 알고 있기에, 그분들을 본받아 나도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 길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빠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 파상풍 주사를 맞고 2주가 지나 동네의 황톳길에서 맨발 걷기를 시작하셨다. 돌발성 난청에 맨발 걷기가 도움이 되느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아빠는 아마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 없어요. 논문이나 데이터도 없죠. 하지만 티브이나 주변 사람들, 의사들이 출판한 책에서 좋다고 하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아빠는 걷기를 시작하셨다.

어싱 양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문도 해보았지만, 아빠는 그마저도 벗어던지고 오롯이 땅과 하나 되어 걷기로 결심하셨다. 어지러움증 때문에 긴 장대우산을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디디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황토의 따뜻한 기운이 작은 돌멩이와 모래 알갱이와 함께 아빠의 발을 자극하듯 지압해 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빠의 청력이 조금이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빠가 하루도 빠짐없이 걷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아빠와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앞서가는 아빠를 뒤따라가기도 하며. 매일매일, 비가 오나  찌는듯한 더위에도 우리는 함께 길을 걸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큰 위로를 주고받았다.

비가 오든, 햇볕이 따가운 날이든, 아빠는 걸으셨다. 그리고 또 걸으셨다.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빠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니, 그때 아빠의 마음은 얼마나 무섭고 황망했을까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직 우리 아빠는 젊으신데,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으실 텐데...

가까운 친구들에게 아빠가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위로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좋은 것을 많이 보여드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그 이야기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듯했다. "보청기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나이 먹으면 다 그런 거지"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그런 말들이 나를 속상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그들에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부모님 건강을 잘 챙겨드리라고 말했다. 나, 조금은 대인배 같지 않나?

아빠는 하루 한 시간씩 열심히 맨발로 걸으시고 나면 땀을 비 오듯 흘리신다. 처음에는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 걱정했지만, 아빠의 혈색도 좋아지셨고, 무엇보다 아빠 스스로 마음이 편안해 보이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아빠가 말씀하셨다.

"가끔은 일찍 일어나기가 싫고, 걸을까 말까 고민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보려고 해."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아빠의 믿음과 노력이 하늘을 감동시킬 거라 믿었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빠가 가는 길, 우리 가족 모두 함께할 테니까요. 천천히, 우리 함께 걸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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