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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May 15. 2024

041 반전의 법칙

Jailbreak

“Be what your customer is interested in and they will view you as the only best option for them.” (Mac Duke)


가게를 오픈하자마자 망할 것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2009년도였다.
LG전자 CTO부문이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서초 캠퍼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실력 있는 연구원들을 유치하는 게 중요했는데
삼성은 수원, 현대차는 남양에 주요 연구소가 있었기 때문에
LG가 강남에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인재 채용 관점에서 지리적인 메리트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서초이긴 한데 뭔가 애매한 느낌.
알고 보니 회사 건물을 지으며 낸 정문 앞 길은 서초구라서 주소는 서초로 되어있지만

실제 회사 건물이 있는 땅은 거의 경기도 과천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당시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해서 출근을 하면

회사 정문을 통과해 들어갈 때는 "과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퇴근해서 정문을 나올 때는 "서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안내 멘트가 나왔다.

어떻게든 '서초캠퍼스'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행정당국과 총무팀이 얼마나 열심히 협상을 했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회사가 들어선 곳의 주변은 원래 한적한 주택가였는데
갑자기 2천 명이 넘는 직장인들이 매일 출근하는 고층 빌딩이 들어서자

근처에 상점들이 들어서며 상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정문 앞 가까운 곳에 카페 한 곳이 새로 오픈을 했는데
막 입주한 회사원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큰맘 먹고 마케팅 이벤트를 진행했다.

간단히 회원가입만 하면 '아메리카노'를 공짜로 나눠줬는데
이벤트를 하는 2주간 매일 점심시간마다 거의 30m 이상씩 줄을 섰다.  

공짜라서 그런가... 커피 향도 좋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근처에 카페가 몇 개 더 있었지만 이게 마케팅의 효과인지
나도 다음부터 커피는 여기를 애용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2주간의 성공적인 마케팅을 끝내고  
이제 다음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려 하는데
아뿔싸...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그 주말에 LG전자 빌딩에 자동 커피머신들이 설치된 것이다.

25층 빌딩이었는데 매층 두 개씩.

아메리카노, 라테, 마키아토, 카푸치노를 선택할 수 있고
무엇보다... 공짜다.

사람들은 믹스 커피를 버리고 수시로 거기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오후쯤 되면 종류별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친구도 있었다.

아... 그 카페 어떡하지?

사업이란 게 타이밍인데 하필 오픈하자마자 공짜 커피머신이라니...

게다가 주변은 거주자도 많지 않은 주택가라서
LG전자 사람들이 아니면 장사가 될 턱이 없는 위치인데...

이러다 오픈하자마자 바로 망하는 거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오지랖...


한편,

곱창이라는 음식이 있다.

이게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음식이기는 한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생 최애 음식으로 꼽을 정도로 마니아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가격도 매우 비싸서 웬만한 한우 등심과 가격을 견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곱창들이 음식 '파동'의 단골 메뉴다.

2000년대 후반 광우병과 구제역이 온 나라를 뒤덮었을 때는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어

곱창 마니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울상이 되었고
곱창가게 주인들도 중간에서 담합해 폭리를 취한다는 오해를 받아
가게엔 파리가 날리고 맘고생은 고생대로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먹거리 X-파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곱창, 대창이 나쁜 음식으로 방송이 되면서 또 한 번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돼지곱창은 분변 곱창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써가며 때리기 바빴고

그리고 마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창 역시
속 안에 들어있는 부드러운 곱이 자연 곱이 아니라
온갖 나쁜 지방을 비위생적으로 끌어 모아 안에 욱여넣어서 파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전국의 모든 대창집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곱창, 대창 전문점인데 마니아들조차 먹지 못할 상황이 되었으니
이대로 버티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망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 카페, 이 곱창집의 사장이라면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뭘 잘 못해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외부 환경 변화 때문에
나름의 전략과 계획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그런 때

나라면 과연 어떻게 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 카페의 생존법을 보고 난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한 1~2주 동안은 우려대로 손님이 뚝 끊기며 파리만 날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3주 정도 지나니 극적으로 회생했다.

점심시간에는 사람이 북적이며 다시 줄을 길게 서야 할 정도가 되었고

2시나 3시쯤의 한가한 오후 시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가게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비결은 생과일 주스였다.

몇 주만에 일반 카페보다 훨씬 더 많은 생과일 주스 메뉴가 생겨났다.

오렌지주스는 기본이고, 딸기 바나나 주스, 자몽 주스, 청포도 주스,

토마토 주스, 키위 주스, 복숭아 주스, 자두 주스...
여름에는 팥빙수 주스, 미숫가루 주스, 수박 주스 등 시즌 메뉴도 제공했다.
출근 후 하루에도 여러 번 회사에서 이미 공짜 커피를 마셨던 회사 사람들은

생과일 주스 메뉴에 열광했다.
여기서 핵심은 생과일주스의 가격을 당시 아메리카노와 거의 비슷하게 
3~4천원 수준으로 맞췄다는 것이다.  

'생과일'이라고 하니 왠지 커피보다는 건강에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고
가격도 부담가지 않는 커피 가격이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처음 공짜 아메리카노 이벤트 때 만들었던 적립 카드는 카운터에 보관되어 있어서

생과일 주스를 먹으며 적립 도장을 받는 재미도 쏠쏠했다.

부서원들 여러 명이 와서 한 잔씩만 마셔도
금세 10번 도장이 다 차서 공짜 주스를 하나 또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게 뭐라고... 다른 카페를 갈 이유가 없었다.

사람의 심리가 그랬다.


먹거리 X-파일이 촉발한 곱창 파동으로
전국의 거의 모든 곱창집들이 폐업의 위기를 맞고 있을 때

왕십리에 있던 한 대창집이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공략 방법은 청결과 정직이었다.

청결과 정직은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불신하는 고객들에게는 뭔가 신뢰할만한 증거를 보여줘야 했다.

일단 음식점 내부를 여느 곱창집들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청소를 해서

고객들이 '어 이 집 깨끗하네...'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그리고 진짜 비결은 대창을 뒤집지 않고 파는 것이었다.

온갖 나쁜 기름들을 뭉쳐서 안에 욱여넣어 팔까 봐 불안해하고 있는 고객들에게

자연 곱이 붙어 있는 대창을 뒤집지 않고
아예 겉으로 눈에 보이게 만들어서 거꾸로 팔기 시작했다.

자연 곱이 겉에 붙어 있어서 불에 구울 때 쉽게 타버리는 단점이 있었지만

신뢰할 수만 있다면 타지 않게 조심히 굽는 수고 정도는
고객들이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대창 마니아라서 자꾸 먹고는 싶은데
어디가 믿을 수 있는 가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사 먹지 못하고 있다가
눈에 보이게 깨끗하게 장사를 하는 가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먼 곳에서 왕십리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몰렸다.

파동 전 주변의 여러 곱창집, 대창집들과 경쟁을 할 때보다
오히려 손님이 더 늘었다고 했다.


이렇듯
예상치 못한 위기가 와도 이를 오히려 기회로 만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을 잘 들여다보면 반전의 법칙 같은 걸 발견하게 된다.

핵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고객의 표면적 니즈에 집중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고객의 궁극적 니즈에 집중하는 것이다.


카페니까 아메리카노를 파는 건 당연했다.

고객은 30m씩 줄을 서가며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좋아했지만

그들이 좋아했던 건 커피 그 자체가 아니라 '공짜'였다.

그들이 오후에 카페에 나와 아메리카노를 마시고자 했던 건

향 좋은 커피 탓도 있겠지만 사실은
나른한 오후 잠시 책상을 벗어나 달콤한 '휴식'을 즐기며 여유를 찾기 위함이었다.   

매일 회사에서 먹는 커피가 아닌 합리적 가격의 생과일 주스는
잠깐의 휴식 시간에 럭셔리를 더해주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고객의 니즈, 아메리카노에만 집착했더라면
휴식이라는 궁극적 고객 니즈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대창집이니 그걸 파는 건 당연했다.
파동이 일어나 다른 집들이 모두 파리가 날리는 그 순간에도
그걸 먹고 싶다는 고객의 궁극적인 니즈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깨끗하지 않다는 불신과 불안 때문에
그 니즈를 만족시킬 기회를 잃고 불만만 쌓여가고 있었다.
맛있는 대창을 먹고 싶다는 니즈는
깨끗하고 맛있는 대창을 먹고 싶다는 니즈로 오히려 더 확대되었다. 
반면 그 확대된 니즈를 만족시켜 줄 가게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그 때 청결하고 믿을 수 있는 대창을 제공하는 왕십리의 이 가게는
대창 마니아들에게는 구원이었다.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고객의 니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답은 늘 고객이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고객 니즈에 집중하면
언젠가는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된다.  
변하지 않는 고객의 궁극적인 니즈에 집중하면

결국엔 선택을 받게 되고 마니아 고객을 만들 수 있다.

당신 고객의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니즈는 무엇인가?
가장 당연한 질문이 가장 위대한 질문이다.


(IMT Cafe,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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