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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Jun 16. 2024

내 무덤가에서 울지 마라.

추모와 제사

결혼 10년, 

지난 해 이맘때 시부가 돌아가셨다. 

시모 돌아가시고 10여 년을 고독하게 사시다가 하늘에서 재회하셨다.


시부는 매사에 철두철미하신 분이었다. 

혼자 사시던 그 집은 먼지 한톨 없이 깨끗했다. 흔히 짐작할 수 있는 노인 냄새나 홀아비 냄새 따위는 없었다. 냉장고에는 흘린 국물 자국 한 방울 없었다. 계란 칸에는 늘 계란이 겹쳐 채워져 있었고, 매일 만들어 드시던 요거트는 딱 선만큼 병에 담겨 이열 종대로 서 있었다. 찬밥은 플라스틱 용기에 소분되어 벽돌처럼 냉동실 벽을 지켰다. 

혼자 먹자고 요리하기 번거로운 처지를 냉장고 안에 그대로 녹여 놓으셨다. 


주방 세제를 한 번 짜서 물에 희석한 후 그 희석액으로 설거지를 하는 것은, 계면활성제가 충분히 씻겨 나가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적용한 생활의 지혜였다. 

아들며느리 침대는 가끔 우리가 한국에 가면 쓸 수 있도록 먼지가 앉지 않게 김장비닐로 크게 덮어두셨다.

삶의 바통을 이어받은 주자들

베란다 벽에는 노끈으로 묶인 조기들이 줄줄이 매달려있었고, 생선 입 안에 소금을 넣어 두어 자연스레 간이 배게 했다. 손자손녀가 오는 날에 맞춰 냉장고 위에 봉지 과자를, 사위를 위해 엑설런트를, 며느리를 위해 홍어회를 준비해 두신다. 손수 만드신 요거트를 세연이나 동환이가 먹으려 하면 혹시 아이들 입맛에 맞지 않을까 다디단 딸기잼을 한 숟가락 얹어주신다. 


그 후, 아버지는 우리 기억에 영원히 꺼내볼 있는 서랍에 자리하고, 그의 지혜를 물려받은 우리는 그의 삶을 이어 살아가고 있다. 


사계절을 수없이 함께 보내온 가족은 계절의 변화와 나무의 잎사귀에서도 그들을 추억할 수 있다. 

초여름 아버지의 옥상 텃밭을 구경한 적이 있다. 본인이 재배한 예쁘장한 케일과 채소를 은근히 자랑하고 싶으신 눈치다. 상추와 부추는 본래 벌레가 덜 생겨 농약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케일은 벌레와 내가 함께 먹어야 한다는 마음이 없으면 쉽게 재배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마트의 온전한 모양의 케일은 농약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 밭 가꿔서 혼자 드시는데 굳이 농약 하실 필요 있어요?" 

"(놀란 표정)아야 어떻게 알았냐, 안그래도 케일에 알을 까 놓아서 약을 좀 쳤다!"

며느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천덕꾸러기로 아셨음이 분명하다. 


삶은 진행 중

한 번은 아들 며느리 사는 곳 좀 보시라고 상하이에 초대했다. 집에 도착한 아버지는 나의 주방 찬장을 조용히 열어보셨다. 탄산음료, 빵, 과자 등을 집에 놓고 먹지 않는 것을 보시고 상당히 흡족해하시기도 하셨다. 

젊은 엄마였던 나는 그 당시 실용적으로 야구잠바에 치렝스를 자주 입었는데, 아버지는 내 차림이 야하다고 하셨다. 돌이켜 보면 아들이 출근하고 나면 남아있을 나와 손녀에게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유혹이나 위험을 우려하고 하신 말씀이었던 것 같다. 

아버님, 그런 저도 벌써 불혹입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우리의 삶은 이어졌고, 아버지는 아직도 서울 댁에 계신 것 같다. 일 년이 흐르니 이례 첫제사라는 것을 앞두게 된다. 아직 살아계신 것 같은데 제사라.. 뭔가 어울리지도 않고 마뜩잖은 기분도 든다. 


시집온 후, 일 년에 두 번, 그리고 설과 추석에 차례까지 총 4번의 제사를 준비하며 지냈다. 사촌 며느리는 오지 않았기에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것은 온전히 나의 일이 되었다. 취미와 일이 다르듯, 뭐든 일이 되면 스트레스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추모와 제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상적인 제사는 그 안에 추모의 성격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곳엔 몸과 마음은 완전히 분리되어 껍데기뿐인 나만 있었을 뿐이다. 


산책을 하다가 문득 스치는 바람과 햇살에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 순간 나는 생각의 꼬리를 이어 충분히, 그리고 하고 싶은 만큼 깊이, 그분을 그린다그립기도, 밉기도 한 양가 감정이다. 


제사 음식과 설거지에 묻혀 기어 나오지 못했던 감정들이 나의 산책 안에서 봄 숲에 죽순 돋듯 땅을 드밀고 나온다. 


죽은 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도, 한 입 베어무는 시원한 수박에도, 이웃의 친절한 눈 인사에도 아버지가 생각난다. 

무덤가에 가서 울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여전히 계시니까. 


이게 나의 추모다. 


오늘도 상하이는 깨끗한 공기와 쾌청한 하늘로 하루를 맞는다. 

오늘도 여기에 계신다. 

며칠 전 아들이 분갈이해 준 토마토 모종이 잘 크고 있나 허리 굽혀 살펴보신다.   




글, 사진 엄민정

상하이 거주 13년.

한국의 김치와 상하이의 샤오롱바오처럼 익숙한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며 의미를 찾는 일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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