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켠 티브이에 내가 좋아하는 프로가 나온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중간 어디쯤의 정체성으로 살다 보니 한국에 가도 여행처럼 좋고, 중국에 오는 것도 익숙하고 좋다. 한국 여행을 앞둔 이들이 어딜 가면 좋을지 묻는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알려주긴 하나, 아직 있을지는 늘 의문이다. 한국을 처음 와본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정말 어떤 곳일까? 김치가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우지만 그게 진심일지 늘 궁금했다.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다는데, 늘 그런지도 궁금하다.
예전에는 그런 줄 모르다가 최근 이해가 되는 것이 있다. 젊은 세대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기성세대는 잘 들여다보아야 그제야 아차 한다. 굳어진 습관이 진리가 될수록 우리는 꼰대에 가까워진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외국인들이 경악하던 그것,숟가락을 한데 넣고 떠먹는 것이 아닐까.
시간은 약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나이 소녀들에게 소속감은 중요했다. ‘이상한 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무리에든 속해야만 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계획은 내게 1순위였는데, 우리는 종종 일탈을 꿈꾸었다.
먹는 것에 상당히 진심이었던 우리는 학교 교정에서 종종 비빔밥을 비볐다. 양푼, 밥, 고추장, 계란, 김치, 나물, 참기름 등등 재료를 분담하여 준비했고, 총알을 장전한 총을 가슴에 품은 듯 각자의 준비물을 재킷 안쪽에 숨긴 채 4교시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종이 울리자마자 총알이 발사되듯 하나같이교정으로 튀어나간다. 먼지를 일으키며 돗자리를 깔고 조급한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다. 다소 상기된 얼굴들은 준비해 온 음식을 세숫대야만 한 양푼에 모두 부어 넣는다. 입으로 물고 있던, 혹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숟가락을 야무지게 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정없이 비벼 입에 밀어 넣는다. 덜 비벼 진곳도, 양념이 뭉친 곳도 있다. 고추장이 만들어내는 모든 재료의 하모니가 좋았고, 그 시절 우리의 입맛이 좋았다.
대학 시절, 후배 한 명이 모교수와 식사를 함께 했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이 사제는 칼국수 한 그릇과 만두 한 접시를 주문했는데, 식사가 나오자 교수가 칼국수 그릇에 숟가락을 담가 계속 떠먹었다고 한다. 비위가 상한 후배는 칼국수에는 손도 안 대고 만두만 먹고 왔다는 이야기를 내게 게워냈다. 그제야 함께 국을 떠먹는 행위가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애매한 사실이 명확해졌다.
중국에서 친구의 식구들과 식사자리가 있었다. 메뉴는 언제든 누구 와든 어울리는 훠궈다. 쓰던 젓가락으로 탕 속의 고기를 계속 건져먹고 있는데 친구가 묻는다.
"헬리코박터 균 검사 해본 적 있니? 우리 부부는 나왔거든."
질문에 의아했다. 식사 후 집에 돌아와 그 질문에 한참을 묶여있었다.
다른 친구와의 식사 자리다. 공용 젓가락으로 모든 인원수에 맞게 덜어주는 손이 바쁘다. 국물 한 방울까지 서로의 식기가 닿을 가능성이 없다. 무의식적으로 테이블 중앙의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대는 남편의 손을 '탁'하고 쳤다. 공용 젓가락으로 덜어먹어야 맞다.
"우리 끼리니 괜찮아" 하면서도 계속 음식을 분배하는 친구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안다. 상대가 꺼릴 수 있는 부분은 먼저 배려해야 한다. 식사 자리를 해보면 오히려 중국의 음식 위생 문화가 한국보다 선진화된 느낌이다.
올여름, 고향집 근처에서 친구와 망고 빙수를 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같이 비비고 떠먹었을 빙수를 내가 먼저 공용 숟가락으로 덜었다. 먼저 덜고 나니 친구도 공용 숟가락을 들어 자신의 접시에 덜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