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오픈하고 손님을 초대하는 것은 맘같이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는 그 제스처에는 호스트의 분주함이 필수다. 언제나 손님이 들이닥쳐도 괜찮을 만큼 집안을 티끌 제로의 상태로 유지하는 부지런한 분들에게는 예외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다. 손님이 오기로 한 날의 일주일 전부터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가동한다. 입장부터 퇴장까지 그림 안에 담지 않으면 미숙한 대접이 될까 전전긍긍한다.
종교활동의 소모임으로 매주 금요일 한 가정씩 돌아가며 식사대접을 하던 때가 있었다. 관계 안에서 나눔을 하며 영의 갈급함을 채우고 육식의 배고픔도 채우는 취지와 의도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허나, 그다음 주 순서가 내 차례라도 되면 지금 이 가정에서 먹는 식사조차 편치 않다. 공통으로 돌아가는 기회여서 식사의 퀄리티를 적정선에서 유지하려면 다른 가정이 어떻게 대접을 했는지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눔과 회복을 위해 만난 자리는 어느새 맛 품평회가 되고 요리 대회로 변질된다.
순서에 따른 식사 대접이지만 초대받은 자리에 빈손으로 가기에는 멋쩍다. 부담 없이 '오는 길에 주웠다' 느낌으로 작은 선물을 챙긴다. 초인종을 눌러 현관문이 열리면 "뭘 이런 걸... 다음엔 그냥 와." 하며 주인 손이 나를 마중한다. '안 챙겨 왔음 어쩔뻔했어' 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내가 무엇을 가져다준 것에는 상관없이, 내 순서가 되면 내 집에 오시는 손님이 어떠한 부담도 없이 빈손으로 와주기를 바람이 있다. 그 시간만큼은 우리 집이 그들의 집이 되어 편하게 와서 계시다가면 좋겠다. 휴대폰을 들고 단톡방을 열어 한마디 쓴다. "아무것도 사 오지 마세요.".... 그리고 지운다.
원래부터 사 올 생각 없던 분들에게 괜한 소릴 하는 건가.
사 오시는 분들은 그래도 사 오던데.
설마 사 오라는 말로 들릴 수 있으려나.
훗날, 친구와의 자리에서 이를 주제로 의견 교환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호스트의 말대로 아무것도 안 사가겠다는 부류와 그래도 사가겠다는 부류가 정확히 반반으로 나뉜다.
"사 오지 말래는 데 뭘 걱정해"
"그게 사 오란 이야기인 거 모르겠어?"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이런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밥 먹었는지가 궁금해서 밥 먹었니?를 묻는 게 아니듯, 그냥 오세요 라는 말은 호스트의 인사치레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곧이곧대로 빈손으로 가면, 뭐라도 들고 온 다른 손이 교양 있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빈손은 처량하고 부끄럽다.
비슷한 맥락으로 청첩장에 종종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축의금과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머릿속이 다시 얼어붙는다. 나같이 융통성 없고 단순한 사람에게는 내 손에 들린 축의금 봉투를 어떻게 전달을 할지가 숙제가 되어버린다. 빚진 것 같은 기분으로 신랑 신부에게 다시 연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축의금을 하려는 마음과 마음만 받으려는 마음이 충돌하니, 축하를 어디에 싣어야 할지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돼버린다.